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서 트레이더가 업무를 보는 가운데, 스크린에는 케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기자회견이 생중계되고 있다.[TKWLS=로이터·연합뉴스]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그러나 금융시장은 이를 완화 신호가 아닌 ‘매파적 동결’로 받아들였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29일(현지시간) 기준금리 목표 범위를 연 3.50~3.75%로 유지했다. 표결 결과는 9대 3이었다.
베스 해맥 클리블랜드연방준비은행 총재와 닐 카시카리 미니애폴리스연은 총재, 로리 로건 댈러스연은 총재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해야 한다며 반대표를 던졌다.
연준은 미국 경제가 중동 분쟁에 따른 높은 불확실성에도 견조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으며 고용도 안정적인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반면 에너지 등 일부 분야의 공급 충격으로 물가상승률은 여전히 연준의 목표인 2%를 웃돌고 있다고 진단했다.
금리를 올리지 않았는데 왜 ‘매파적’인가
금리 동결 자체는 시장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문제는 금리 인상을 주장한 위원이 12명 가운데 3명에 달했다는 점이다.
연준 내부의 긴축 요구가 일시적인 소수 의견을 넘어 향후 정책 방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준으로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 배경이다.
워시 의장도 추가 인상 가능성을 차단하지 않았다. 그는 물가 압력이 완화되지 않을 경우 필요한 시점에 행동하는 데 주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2% 물가 목표에 대해서도 타협하거나 완화할 수 없다는 취지로 물가 안정 의지를 강조했다.
다만 9월 회의에서 어떤 조건이 충족돼야 금리를 올릴지, 금리 인상 외에 어떤 정책 수단을 고려하는지는 분명히 밝히지 않았다. 매파적인 표결 결과와 방향성이 불분명한 기자회견이 동시에 나온 셈이다.
FOMC 직후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반영된 9월 금리 인상 확률은 한때 77%까지 뛰었다가 29일 미 동부시간 늦은 오후 약 57%로 내려왔다. 시장은 연말까지 약 0.35%포인트의 추가 인상 가능성을 가격에 반영했다.
29일(현지시간) 기자회견 하는 케빈 워시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사진=AFP·연합뉴스]
연준은 멈췄지만 시장금리는 뛰었다
이번 FOMC에서 더 주목할 부분은 정책금리가 아니라 장기 국채금리의 움직임이다.
미국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4.68%로 전날의 4.61%보다 약 0.07%포인트 올랐다. 물가 전망에 민감한 30년물 금리는 5.20%를 넘어 2007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에 진입했다.
워시 의장도 기자회견에서 직전 FOMC 이후 42일 동안 미국 국채의 명목·실질 금리가 만기 전반에서 큰 폭으로 상승했다고 지적했다. 일부 시장금리의 상승 폭은 최근 20년 가운데 상위 10%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연준이 정책금리를 올리지 않았는데도 경제지표와 시장의 판단에 따라 금리가 움직였다며 선제안내 축소가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연준이 금리 방향을 미리 알려주기보다 시장이 물가와 경기지표를 직접 해석하도록 하겠다는 의미다.
다만 장기금리 상승을 9월 금리 인상 전망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정책금리에 민감한 2년물 금리는 하락한 반면 10년물과 30년물 금리는 상승했다.
당장 기준금리가 큰 폭으로 오를 것이라는 전망보다는 장기 인플레이션과 연준의 물가 통제력에 대한 불안이 장기채 금리에 추가로 반영됐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연준은 기준금리를 동결했지만 채권시장이 대신 금융여건을 긴축한 것이다.
美 증시 하락에 AI 투자 불안 겹쳐
뉴욕증시는 FOMC 발표 이후 약세로 마감했다.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2.19%,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1.52%, 나스닥종합지수는 1.74% 하락했다.
엔비디아는 3.6%, AMD는 5.5%, 브로드컴은 2.8% 떨어졌다. 나스닥100지수도 2.1% 하락하며 6월 사상 최고치보다 11% 낮아졌다.
그러나 미국 증시 하락을 모두 FOMC 탓으로 돌리는 것은 과장이다.
빅테크 기업들의 막대한 AI 설비투자가 실제 현금흐름과 수익으로 회수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과 SK하이닉스 실적에 대한 시장의 실망, 중국 AI 기업과의 경쟁 우려가 동시에 작용했다.
워시 의장도 AI 관련 첨단장비와 소프트웨어 투자가 최근 4개 분기 동안 약 20% 증가했다고 밝혔다. 동시에 AI 설비투자가 메모리·시스템반도체와 관련 인프라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으며, 이것이 보다 광범위한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지를 FOMC에서 논의했다고 설명했다.
AI 투자가 미국 경제의 성장 동력이면서 연준의 금리 인하를 어렵게 만드는 물가 변수로도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코스피가 28일 미국 반도체주의 급락 등의 여파에 장 초반 5% 넘게 하락하며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이날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원/달러 환율, 코스피, 코스닥이 표시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코스피 하락 원인은 따로 있었다
30일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1.2% 내린 5593.56으로 마감했다. 앞서 28일과 29일 이틀 동안 16% 넘게 급락한 데 이어 하락세가 이어졌다.
삼성전자는 0.7%, SK하이닉스는 5.6% 떨어졌다. SK하이닉스는 분기 영업이익이 크게 늘었지만 높아진 시장 기대를 충족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 증시의 급락은 FOMC 발표 전에 이미 시작됐다. AI 설비투자의 수익성 논란과 반도체주 고평가 부담,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의 청산, 개인투자자의 투매가 직접적인 원인에 가깝다.
시장 전문가들도 이번 하락을 기업의 펀더멘털이 갑자기 악화한 결과라기보다 레버리지 상품의 강제 청산과 투자심리 위축이 만든 유동성 충격으로 진단했다.
다만 FOMC는 한국 증시가 반등하기 위해 넘어야 할 문턱을 더 높였다.
미국 장기금리가 오르면 미래 이익을 현재 가치로 환산하는 할인율도 상승한다. 성장 기대가 주가에 많이 반영된 반도체와 AI 관련주의 적정 주가수익비율(PER)은 그만큼 낮아질 수밖에 없다.
미국 국채 수익률이 높아질수록 외국인 투자자가 위험을 감수하면서 한국 주식을 보유할 유인도 약해질 수 있다. 반도체 실적 전망이 하향 조정되는 상황에서 적정 PER까지 낮아진다면 한국 증시는 기업이익과 밸류에이션이 동시에 내려가는 이중 압력에 놓인다.
한국은행 정책 선택지도 좁아져
한국은행은 지난 16일 기준금리를 2.50%에서 2.75%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수출과 투자를 중심으로 성장세가 강화되고, 물가가 상당 기간 목표 수준을 웃돌 것으로 전망된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현재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차는 상단 기준 1.00%포인트다.
연준이 9월 추가 인상에 나설 경우 환율과 외국인 자금 흐름에 대한 부담이 커지면서 한국은행의 정책 선택지는 더 좁아질 수 있다. 그렇다고 국내 경기와 가계부채, 부동산시장의 이자 부담을 무시한 채 미국을 따라 금리를 올리기도 쉽지 않다.
한국은행이 전한 시장 평가도 이번 FOMC의 양면성을 보여준다. 인상 소수의견만 보면 매파적이지만, 워시 의장이 금리 인상 의지를 분명하게 밝히지 않아 기자회견 자체는 비둘기파적으로 해석됐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연준이 인플레이션 대응 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하면서 통화정책에 대한 신뢰가 약해지고 시장의 불확실성은 더 커졌다는 평가다.
한국 증시가 확인해야 할 변수는 미국 10년물 금리가 4.7% 선을 넘어서는지, 국제유가 상승이 미국 물가에 다시 반영되는지, 외국인이 반도체주 순매수로 돌아서는지다.
연준은 금리를 올리지 않았다. 그러나 채권시장은 이미 금리를 올리고 있다. AI와 반도체 이익에 대한 기대까지 흔들리는 상황에서 할인율 상승은 한국 증시의 반등을 늦추는 또 하나의 먹구름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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