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북한을 향해 이중신호를 보내고 있다. 한편으로는 김정은 위원장과의 과거 사진을 공유하며 ‘성공적인 협상가’로서의 향수를 자극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을 ‘핵 세력’으로 명명하며 기존의 비핵화 원칙을 흔들고 있다. 솥뚜껑을 보고 놀란 자라의 심정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는 이재명 정부가 꾸준히 보내고 있는 대화 신호와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현 정부는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 민간단체의 전단 살포 금지, 그리고 ‘흡수통일 배제’라는 3원칙을 내세우며 북한에 끊임없이 대화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심지어는 한-EU 공동성명서엔 북러 군사협력 규탄, 북한 핵보유국 지위 불인정, 북한 인권 개선 촉구를 핵심 의제로 담았지만, 국내 발표문에서는 북한에 자극을 주지 않으려고 북한 관련 내용을 삭제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은 침묵으로 일관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바로 ‘전략적 우회’다. 북한은 우리 정부와의 직접 대화보다 트럼프라는 변수를 활용해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는 것이 체제 생존과 협상력 측면에서 훨씬 유리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즉, 이재명 정부의 대화 제안은 북한의 계산기 속에서 ‘트럼프와의 빅딜’을 위한 후 순위로 밀려나 있는 형국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신호와 대화의 불균형 속에서, 정보가 차단된 지금 우리는 길을 잃지 말아야 한다. 안보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눈’에서 시작된다. 적의 의도를 읽고, 그들이 숨긴 창끝의 방향을 미리 가늠하는 것, 그것이 정보의 본질이다. 그러나 2026년 오늘, 우리가 마주한 한반도 안보 환경은 불확실한 전장을 볼 수 없는 ‘정보의 안개’ 그 자체다.
북한이라는 폐쇄 체제는 우리의 인간 정보의 붕괴와 함께 더욱 단단한 흑색 박스가 되었고, 동맹인 미국조차 자국의 정치적 셈법에 따라 우리에게 북한 정보를 ‘제한적으로’ 공유하거나, 때로는 우리의 의지와 무관한 국면으로 정세를 몰아가고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뼈아픈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는 과연 평화를 주창하고 우리 안보의 운전대를 스스로 잡고 있는가?”
1. 북한 내부 정보망이 와해되어 국방의 가장 취약한 고리가 드러났다
휴민트는 적의 내밀한 의도를 파악하는 최후의 인간정보 자산이다. 하지만 휴민트가 차단된 상황에서도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 한 때는 북한 고위층의 아침 식사 메뉴까지 점심 때면 알 수 있었지만 고위층의 동선이 단절되었다면, 이제는 차가운 데이터의 영역인 기술 정보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
현대 정보전은 물리적 접촉보다 데이터의 흐름 속에 답이 있다. 위성과 고고도 무인기, 그리고 AI 기반의 신호 정보는 북한의 거대한 체제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미세한 노이즈를 읽어낼 수 있는 강력한 도구다.
진정한 정보 역량은 그 데이터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라는 통찰에서 나온다. 인공지능이 분석한 방대한 데이터 위에서, 한반도의 역사적 맥락과 적의 심리적 기제를 꿰뚫어 보는 전문가들의 ‘북한 정보분석’이 결합할 때 비로소 정보는 단순한 수치가 아닌 전략적 지혜가 된다.
2. 트럼프 행정부의 파격적인 대북 접근법은 우리에게 거대한 시험대다
미국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며 성급한 평화의 이벤트를 연출할 때, 우리는 과연 그 시나리오의 방관자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원거리 감시 및 조정자로 설 것인가?
과거 우리는 미국의 정보 자산에 과도하게 의존한 나머지, 우리 안보의 핵심적 이익이 훼손되는 순간에도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우를 범하곤 했다. 정보의 공유가 단순히 ‘자료 전달’에 그쳐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보의 자주성은 정보 자산 확보를 위한 고도의 투자를 의미한다. 북한 오물풍선 7,000회에 대해 평양 무인기를 보낸 것을 외환죄로 처벌하는 나라에서 정보의 자주성은 지난(持難)해 보인다.
우리 군이 독자적인 정찰 자산을 고도화하고, 한미 간의 정보 공유 체계를 일방적 수혜에서 ‘대등한 분석적 파트너십’으로 전환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3. 정보의 안개가 짙을수록 국방의 원칙은 더욱 선명해야 한다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한 상시적 대비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화려한 퍼포먼스 뒤에 숨겨진 핵 무력 고도화의 본질을 직시해야 한다. ‘현장 중심의 통합 방위’다. 휴민트가 막혔다면 접경지에서부터 사이버 공간까지, 전 영역에서 실시간으로 생성되는 전술 정보를 통합하여 적의 의도를 즉각적으로 확인하는 다층적 감시망을 완성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 사회 내부의 ‘안보 피로감’과 ‘정치적 무관심’을 경계해야 한다. 안보는 특정 정권의 전유물이 아니며, 특정 정치 세력의 도구로 전락해서도 안 된다. 정보가 차단된 위기의 시대일수록 국민적 합의라는 강력한 국방의 기초 체력이 필요하다.
안개 속을 걷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그러나 목적지를 알고 발을 내딛는 자는 길을 잃지 않는다. 북한의 폐쇄성도, 미국의 불확실성도 우리가 스스로 정보를 분석하고 판단할 힘을 갖춘다면 더 이상 통제 불가능한 변수가 아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비밀’이 아니다. 기술과 인문학적 통찰, 그리고 안보를 향한 초당적인 단결로 정보의 안개를 걷어 내야 하다. 우리는 다시금 스스로 묻고 대답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미국의 북한 관련 의도와 북한의 실체를 보고 있는가? 아니면 그들이 보여주고 싶어 하는 허상만 보고 있는가?


◆ 박필규 위원
한미일보 편집위원
육군사관학교 40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