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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필규 안보칼럼] 1975년 월남 패망이 2026년 대한민국에 던지는 최후통첩
  • 박필규 편집위원
  • 등록 2026-04-30 06: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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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남(남베트남)과 구한말 패망은 지도층의 자멸이 부른 종말
  •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 오래된 격언 기억할 것

월남(남베트남)을 장악한 베트콩들. 1975년 4월30일 자유 월남(남베트남) 대통령 즈엉 반민(1916~2001)이 월맹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 30년에 걸친 베트남전쟁이 종결됐다. 흑백사진을 컬러로 바꿈.

51년 전 오늘, 1975년 4월30일. 세계 4위의 공군력을 자랑하던 자유월남의 대통령궁 철문이 북베트남 군의 탱크 앞에 허망하게 무너졌다. 

 

지도상에서 한 국가가 영원히 지워진 패망의 그날을 놓고, 누군가는 이를 ‘민족 해방’이라고 했고, 희열을 느낀다고 했으며, 누군가는 평화주의가 만든 패망사(敗亡史)이자 ‘먼 나라의 비극’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나 2026년,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월남 패망의 유령이 한반도를 배회하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역사적으로 국가의 패망은 외부의 침략보다 ‘위정자와 지도층의 도덕적·지적 자멸’에서 시작되었다. 500년 사직의 조선이 일제에 국권을 찬탈당한 과정이 그러했다. 

 

구한말 조선의 지도층은 급변하는 국제 정세를 외면했고 내부의 기득권을 지키려고 부패한 당파 싸움에 몰두했다. 백성들의 삶은 도탄에 빠졌고, 지도층에 대한 신뢰가 바닥난 상황에서 국가는 외핌에 저항할 최소한의 면역력조차 잃고 적이 총을 쏘기도 전에 이미 안에서부터 무너졌다. 

 

1. 평화협정이라는 이름의 ‘안보 마취제’

 

월남 패망의 도화선은 총칼이 아닌 ‘파리 평화협정(1973)’이라는 종이 한 장이었다. 노벨 평화상의 환호와 함께 미군은 철수했고, 월남은 무장을 해제당했다. 평화는 힘의 균형이 무너질 때 가장 먼저 파괴된다. 당시 월남의 ‘평화주의자’들은 “우리 민족끼리”라는 감성적 구호 아래 안보의 빗장을 스스로 풀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붕괴 직전의 월남과 구한말 조선의 무능과 소름 끼치도록 닮아있다. 북핵 위협 속에서도 전작권 환수 조기 추진을 외치고, 우리 군의 감시 능력을 제한하는 ‘9·19 군사합의’ 복원을 주장한다. 

 

안보를 해체한 월남의 패망 전조가 2026년의 ‘반미 선동’과 ‘비대칭적 평화론’으로 재현되는 셈이다. 이는 구한말 위정자들이 ‘사대’와 ‘명분’이라는 교조적 틀에 갇혀 근대화의 기회를 걷어차던 모습의 현대적 변주다.

 

2. ‘이념적 뇌사’를 부추긴 내부의 적들

 

월남 패망의 주범은 내부의 적들이었다. 정치, 종교, 사회, 군대 곳곳에 침투한 간첩들의 ‘평화 타령’은 남침의 통로가 되었다. 현재 대한민국 역시 휴전 상태임에도 최전방 경계병력을 1/4로 줄이겠다고 하고, 어느 국가도 온전한 자주국방을 이룰 수 없는 연결된 동맹 시대에 홀로 자주국방을 주장하며, 국가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개헌을 추진하고 북핵 위협을 두둔하는 목소리가 민주주의라는 미명 아래 보호받고 있다. 

 

월남 패망 직전 내부의 평화주의자들과 북베트남 간첩들이 시민들을 현혹하기 위해 퍼뜨린 가장 치명적인 구호는 “전쟁보다는 항복을, 자유보다는 평화를”이었다. 이는 “가장 나쁜 평화도 전쟁보다 낫다”는 궤변을 연상시킨다. 이들은 패배주의의 연주자들이었다. 전쟁을 대비하지 않는 나라에는 평화가 아니라 굴종과 학살이 찾아온다는 진리를 그들은 망각했다. 

 

안보 갈등을 노선 투쟁으로 치부하며 본질을 흐리고 있다. 각군의 정체성 말살을 노린 사관학교 통합, 비무장지대 안보 공백을 노린 ‘DMZ 평화이용 법안’, 대북 정보력의 자발적 거세인 ‘9·19 군사합의’와 ‘국정원법 개정’, 한미동맹의 균열을 부추기는 ‘전작권 환수’ 강행 등은 나라가 위기에 처했음에도 정파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인지? 무지해서 위기를 조성하는 것인지? 그 망령을 알 수 없다.

 

3. 월남 패망 이후 평화주의자부터 숙청했다

 

월남 패망 후 찾아온 것은 평화가 아닌 거대한 피의 숙청이었다. 자유를 찾아 바다로 뛰어든 100만 명의 보트피플 중 상당수는 차가운 바다에서 원혼이 되었다. 패망 후 약 100만~250만 명이 ‘재교육 수용소’에 강제 수용되었고, 그중 5만~16만 명이 처형·질병 등으로 사망했다. 평화협정에 찬성하며 민족을 외쳤던 평화주의자들은 ‘기회주의자’로 분류되어 가장 먼저 처형당하거나 수용소로 끌려갔다.

 

우리는 이제 질문해야 한다. 

 

만약 월남의 위장 평화 시나리오가 한반도에서 현실화된다면, 지금 안보의 칼날을 무디게 만드는 위정자와 지도층은 숙청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담보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평화와 홀로 자주국방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21세기판 보트피플’로 내모는 무책임한 자들은 누구인가? 

 

나라를 팔아 사익을 챙겼던 구한말 매국노들의 끝이 비참했듯, 안보를 정쟁의 도구로 삼는 자들의 처절한 각성과 전향이 없다면 그들의 미래 또한 비극적일 것이다.

 

4. 평화는 약자의 구걸이 아닌 강자의 ‘결기’로 쟁취하는 것

 

평화에 속은 패망의 역사는 반복된다. 적의 선의에 기대는 평화는 자살 행위다. 평화는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압도적인 힘과 지도층의 헌신과 책임감으로 쟁취하는 것이다. 평화의 이름으로 안보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반역과 어리석음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감상적 평화주의가 아니다. 냉혹한 현실을 꿰뚫어 보는 혜안과 나라를 지키겠다는 서리발 같은 결기다. 월남과 구한말 패망은 지도층의 자멸이 부른 종말이었음을 기억하자. 그 비극들은 박제(剝製)된 과거가 아니다. 우리가 깨어나지 않을 때 박두(迫頭)할 대한민국의 미래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 이 오래된 격언을 위정자와 지도층부터 상기하고 안보 정책에 반영하며 국민이 단결할 때, 월남 패망의 유령은 사라질 것이다. 우리의 자유와 생명을 위해 이제 안보의 겨울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 박필규 위원

 

한미일보 편집위원

육군사관학교 40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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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obyun2026-04-30 09:00:24

    문재인, 이재명 정권, 그리고 그 추종자들은 조국을 중국에 팔아넘겨서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 걸까요?

    국민들은 나만 잘먹고 잘살면 된다는 생각에 함몰하여 아무런 관심이 없고 몇몇 애국자들만이 나서고 소수의 애국시민들이 태극기를 들지만 자유 대한민국을 지키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실질적인 자유 대한민국 지키기 결사체를 만들어야 합니다. 실제 반대한민국 세력에 대항하여 그들과 싸워 이길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실행해야 합니다. 전략조직이 필요하고 그 조직을 통해 전략을 세우고 전술을 만들고 작전을 수행해야 합니다.

    이대로 거리에서 방송에서 언론에서 주장하고 말하고 글써서는 아무것도 안됩니다. 한줌도 안되는 애국시민들도 태극기 들기 지쳐갑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현상유지는 대한민국의 몰락만 가져올 뿐이고 훗날 우리도 부역자로 불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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