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곳을 가리키는 전두환(왼쪽) 대통령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흑백사진을 컬러로 바꿈.
삼성전자 노조는 올해 예상되는 연간 영업이익 300조 원의 15%인 45조 원을 성과급으로 지급하라고 요구하고 이를 회사에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내달부터 파업에 들어가겠다고 위협한다.
45조 원은 지난해 삼성전자 R&D 투자 37조7000억 원, 주주 배당금 2조2000억 원을 훨씬 웃도는 수준이다. 삼성전자 노조 요구의 직접적 원인은 SK하이닉스가 작년부터 영업이익 10%를 성과급으로 지급하겠다고 노조와 합의한 것이다.
좌파 정부의 ‘귀족노조’가 초래한 반도체 위기
하이닉스는 작년 영업이익 47조 원의 10%인 일 인당 1억4000만, 총 4조7000억 원의 성과급을 지급한 바 있으며 이는 주주 배당금 2조1000억 원의 두 배가 넘는다. 하이닉스의 내년 성과급은 1인당 7억 원이 예상된다.
하이닉스는 반도체 시장의 경기 악화로 수조 원의 적자를 기록할 때조차 노조의 압력에 굴복해서 격려금을 지급하며 시장경제 원칙을 무너뜨린 노조와의 담합 행태를 보임으로써 노사 협상에서 삼성전자 등 다른 기업이 감당하기 힘든 위험한 선례를 남긴다.
이는 대한민국 최고 수준인 억대 연봉과 성과급을 받는 하이닉스 노조의 도덕적 해이를 보여준다. 1997년 IMF 경제 위기 극복 과정에서 국민의 세금인 3조5000억 원의 공적자금 투입으로 겨우 살아난 기업이 하이닉스다.
문제는 성과급의 규모가 아니라 균등 지급이다. 기업의 지속적인 발전에 동기 부여가 되는 개인의 성과에 따른 차등 지급이 아닌 균등 지급은 좌파적 방식을 넘어 공산주의적 행태이며 이는 기업의 몰락을 초래한다.
초격차 기술이 생존을 좌우하는 반도체 업계에서 기술 개발 분야가 아닌 생산직 사원에게 나눠먹기 식의 과도한 성과급을 균등 지급하는 경우는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으며 이는 기업의 운명을 좌우하는 연구원들과 기술개발자들의 상대적 박탈감과 이탈, 그리고 R&D와 대규모 설비 투자 자금 부족을 초래하는 자멸의 길이다.
HBM에 집중하는 하이닉스와 달리 HBM 기술 개발과 생산뿐 아니라 파운드리 분야에서도 대만의 TSMC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삼성전자의 경우 우수 인재 확보와 대규모 설비 투자, 그리고 R&D를 위한 막대한 자금을 확보하지 못하면 국제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상황을 이렇게 만든 건 좌파 정부의 친노조 반기업 정책이다. 온갖 사안에 시시콜콜 간섭하는 이재명 대통령은 반도체 산업뿐 아니라 대한민국 경제의 명운이 걸린 삼성전자 파업에 묵묵부답이다. 현재 대한민국 경제를 받치는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선전은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의한 단기적 반사이익이며 이로 인한 코스피 주가지수 상승과 경제 성장은 일시적 착시 현상이다.
자동차를 포함해서 반도체 이외의 다른 산업은 마이너스 이거나 저성장이며 반도체 슈퍼사이클 종료 시 대한민국 경제를 옥죄는 상법 개정, 노랑봉투법, 중대재해처벌법, 과도한 상속세 부담으로 인한 지배구조 리스크 그리고 귀족노조의 철밥통을 보장하고 청년 실업을 외면하는 좌파 정부의 반기업 악법과 규제는 기업의 성장을 막고 실업자 양산과 경제 몰락을 필연적으로 가져온다.
사법부의 압박에 의한 이재용의 무노조 경영 폐기
대한민국에 무소불위의 강력한 노조가 존재하는 이유는 기업에 노동의 유연성을 허락하지 않는 노동법 때문이다. 긴급한 경영상 사유가 아니면 해고할 수 없도록 한 현재의 노동법은 대한민국 전체 근로자의 10%에 불과한 종북좌파 민노총이 지휘하는 대기업 귀족노조만 살찌울 뿐이며 나머지 대다수 근로자와 청년 구직자들은 소외된다.
노동의 유연성을 보장하는 입법과 각종 규제 철폐로 기업이 고용과 해고를 자유롭게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귀족노조의 철밥통을 깨부수고 기술 혁신을 통해 반도체를 비롯한 대한민국 기업이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미국이 초강대국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노동조합의 권한을 제한하는 1947년 태프트 하틀리 법과 기업이 특별한 사유 없이 고용과 해고를 가능하게 한 노동법이 있다. “1930년대의 지식인 사회는 노동계급과 노동조합을 동의어로 받아들였다. 노동조합의 순결과 미덕에 대한 믿음은 가정과 모성애에 대한 믿음과 견줄만한 것이었다.
노동조합을 편들고 공정한 노사관계를 조성한다며 광범위한 입법 조치가 이루어졌다. 노동조합의 힘은 날로 강대해졌다. 그러나 1950년대에 이르러 노동조합이라는 말은 욕이 되어버렸다. 그것은 더는 노동계급과 동의어도 아니었고 자동으로 정의의 편으로 간주되지도 않았다.” (심준보, 변동열 역 밀턴 프리드먼 ‘자본주의와 자유’)
최근의 반도체 슈퍼사이클로 기사회생했으나 삼성전자는 지난 몇 년간 이재용 회장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관련 주식 가치 산정에서 배임과 자본시장법을 위반한 시세조종 혐의로 기소되고 투옥되어 재판을 받는 동안 경영에 관한 주요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사이 경쟁에서 뒤처지고 하이닉스와 TSMC가 반사이익을 얻는다.
반기업 성향의 문재인 좌파 정권에 부역하는 한동훈과 정치 검사들 소행이며 이재용은 대법원에서 19건 혐의 모두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는다. 이재용의 합병 결정이 국제관례에 따른 적정한 가치 산정이라는 대법원판결에도 문재인과 한동훈 등 좌파 정치 검사들은 반성이 없다.
이재용뿐 아니라 양승태 대법원장과 고위 법관들, 박근혜 정권 국정원장 세 명 등 국정농단 혐의로 수사하고 기소한 사람들 대부분이 무죄 판결을 받아도 한동훈은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 수사를 자신의 화양연화라고 떠드는 후안무치를 보여준다.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끊임없는 재판과 투옥을 반복하던 이재용은 계열사 합병 과정의 부당행위와 배임 혐의 재판에서 구속을 피하고자 재판부의 요구에 굴복하고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에서 전례가 없는 공산주의식 인민위원회 같은 준법감시위원회를 만들고 준법감시위원회는 오랜 기간 반복된 재판과 투옥으로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에서 사법 위기 대응에 전전하는 이재용에게 무노조 경영 폐기와 4세 경영 승계 포기 등 기업의 자율성과 경영권을 침범하는 조치를 주문한다.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으로서 최고 대우를 보장하고 대학생 취업 선호도 부동의 1위와 무노조 경영을 수십 년간 성공적으로 유지한 삼성전자의 무노조 원칙을 무너뜨린 건 이재용 재판부 판사들과 준법감시위원회다. 이들이 현재 삼성전자 노조 파업 위기의 원인이다.
대만의 TSMC를 따라잡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시기에 벌어지는 삼성전자의 파업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붕괴와 수천 개 협력사의 납품 중단 등 국내 반도체 산업 생태계를 파괴하고 신뢰 손상으로 인한 삼성전자 국제 경쟁력의 치명적인 약화로 이어지며 국내 반도체 산업과 경제 전반에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초래한다.
한동훈의 화양연화 운운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듯 대한민국을 망치는 일등 공신이 정치 판사와 정치 검사 등 법조인이다. 생산적인 일이라곤 해본 일이 없는 책상물림 법조인들, 법조문 달달 외운 거 외에는 도무지 아는 것이라곤 없는 무능 무지한 자들, 권력에 빌붙어 자리를 탐하는 그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헌법 절차에 따른 계엄 선포를 내란으로 판결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정당한 직무 집행을 직권남용과 뇌물 수수로 판결한다.
검사와 판사는 법과 양심에 따라 수사하고 판결해야 함에도 자신의 출세와 이념을 위해 범죄적 수법으로 편향적 수사와 판결을 한다. 그리곤 국회의원 자리를 꿰차고 대한민국을 망가뜨리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형사 소추 과정은 종북 좌파의 선전 선동에 의한 전형적인 여론재판이며 마녀사냥이다. 법치주의는 사라지고 중세 유럽의 마녀사냥을 통한 화형과 종교재판 그리고 조선 시대의 원님 재판과 같은 미개한 야만의 시대의 재현이다.
국회와 마찬가지로 부패한 범죄 집단으로 전락한 법원과 헌법재판소는 더는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하는 곳이 아니다. 박근혜 탄핵 당시에도 보수 성향 재판관이 절반이었으나 판결 결과는 소수 의견 하나 없는 담합에 의한 만장일치 탄핵안 가결이다.
국론 분열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란 궤변도 서슴지 않는다. 궤변과 갖은 절차상 위법행위를 통해 박근혜 탄핵을 인용한 곳이 헌법재판소이다. 보수 성향 재판관 한 명이 광화문 촛불이 헌재까지 번져 자신이 타 죽을 수도 있겠다는 공포감이 있었다고 후에 자백한다.
윤석열 탄핵을 인용한 헌법재판소도 만장일치 판결이며 보수 성향 재판관 정형식이 아들 관련 비리로 협박을 받고 굴복했으며 나머지 두 명의 보수 성향 재판관도 정형식의 변심으로 윤석열 탄핵이 이미 가능해졌으므로 자신들의 반대가 의미가 없어 투항했다는 언론 보도도 있다.
재판관에 대한 회유나 협박은 재심 사유이다. 법과 양심에 따른 판결이 아닌 자신의 직위를 자신의 이해관계나 좌파적 이념을 실행하는 도구로 삼거나 종북좌파의 선전 선동에 편승하는 기회주의적인 행태를 보여주는 재판관들로 가득한 자정 기능이 없는 헌법재판소는 존재 이유가 없다. 대한민국 사법부도 마찬가지다.
헌법재판소 폐지와 미국식 배심원 제도 도입으로 무능 무지하며 부패한 판사들의 역할을 최소화하는 것이 그나마 사법 정의 실현을 위한 유일한 길이다.
종북좌파 숙주 김영삼의 전두환 대통령 악마화 작업에 충견 노릇을 한 자들도 권력에 빌붙은 정치 검사와 판사들이다. 1993년 김영삼 정권 출범 직후 검찰은 전두환과 노태우의 12.12 사건에 대한 반란죄 수사를 하나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사건을 종결한다.
그러나 2년 뒤 노태우 비자금 사건이 터지자 김영삼은 자신이 노태우로부터 받은 3000억 원의 불법 정치자금 의혹을 덮기 위해 느닷없이 5.18 특별법을 만들고 전두환과 노태우를 반란죄와 뇌물죄로 처벌한다. 권력에 기생하는 정치 검사와 판사들의 충견 역할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전두환 대통령의 혜안으로 반도체 강국을 설계하다
김영삼과 종북좌파가 선전 선동과 조작을 통해 악마화한 전두환이 대한민국 최대 먹거리 반도체 산업 성장의 중심에 있다. 박정희 대통령이 반도체 산업의 기초를 닦고 전두환이 궤도에 올려놓는다. 박정희는 전자 산업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1969년 전자공업진흥법을 제정한다.
이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을 만들고 해외에서 과학자들을 불러 파격적인 고임금과 아파트를 제공하며 전자 입국의 기초를 닦는다. 삼성전자의 시작에 관한 김종필의 증언이다.
“1967년 말 어느 날 중화학공업 쪽에 관심을 쏟던 박정희 대통령이 내게 말했다. ‘이병철 회장한테 이제 중화학공업을 좀 해보라고 해. 임자가 가서 좀 물어봐.’ 이 회장을 만나 대통령 말씀을 전했다. 그는 한참을 앉아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더니 결심이 섰는지 ‘대통령 뵈러 갑시다’라며 일어섰다. 함께 청와대로 들어갔다.
박 대통령은 내게 말했던 대로 이 회장에게 ‘중화학공업에 손대면 어떻겠습니까’라고 했다. 이 회장이 ‘중화학공업이라면, 어떤 것을 말씀하십니까’라고 묻자 박 대통령은 ‘조선이나 자동차, 전자공업 중 하나를 해보십시오’라고 제안했다. 이 만남이 계기가 돼서 이 회장은 전자공업을 채택했다. 그것이 바로 오늘의 삼성전자다. 1969년 수원에 삼성전자의 첫 공장이 들어섰다.” (‘김종필 증언록: 소이부답’ 2023.12.11. 중앙일보)
박정희에 이어 전두환은 본격적인 반도체 산업 설계에 들어간다. 1981년 전두환의 지시로 청와대 경제수석실은 관련 부처와 산업계, 연구소 등 전문가들과 함께 ‘반도체공업육성계획’을 만든다. 오명 당시 경제비서관의 회고록 내용이다.
“당시 반도체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우리는 처음부터 대통령이 반도체에 대해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반도체에 관한 내용을 아예 만화로 만들어서 그것을 보고서로 올렸다. 심지어 반도체 모델을 일본에서 공수해 실물을 가지고 대통령에게 설명하기도 했다. 전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두 번이나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될 수 있느냐 없느냐는 반도체 기술을 얼마나 빨리 발전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모든 국무위원은 반도체 공업 육성에 적극 협력하라’고 지시했다.”
‘반도체공업육성계획’에 따라 반도체 기술인력 해외연수, 해외 우수인력 유치, 생산설비 현대화와 기술 개발 자금 지원, 세제지원 확대가 진행된다.
“전 대통령의 반도체 공업 육성 의지는 확고했다. 반도체공업육성추진위원회는 1983년 들어 대통령 비서실장이 위원장인 정보산업육성위원회로 확대, 운영했다. 정부의 야심 찬 반도체 육성계획은 국내 대기업의 반도체 사업 진출 발걸음을 빠르게 했다.” (전자신문 ‘[과학기술이 미래다] 〈94〉 반도체 강국 담대한 도전’ 2023-07-05)
대구공고 출신인 전두환은 기계와 설비 제작에 관심이 많았으며 반도체가 산업의 쌀이며 국가의 명운이 걸린 사업이란 점을 인지하고 1983년 삼성반도체 기흥 공장 건설 현장을 찾아 농지에 공장을 세울 수 있게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전력과 용수 공급을 독려하고 반도체 산업에 해외 차관의 우선순위 투자를 한다.
반도체는 국가적 결실, 노조는 공동체적 책임 가져야
일본산 반도체 장비 수입 관세를 0%로 내리는 등 전두환의 전폭적 지원으로 기흥 반도체 공장은 착공 6개월 만에 초고속으로 준공된다. 전두환은 이천의 농지에 하이닉스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기 위한 계획이 농림부의 반대에 부딪히자 “농사짓는 쌀과 산업의 쌀 중 무엇이 더 큰 국익인가”라며 공사를 가능하게 한다.
삼성전자 노동조합이 23일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에서 대규모 투쟁 결의에 들어가면서 노사 간의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용갑 전 청와대 민정수석 월간조선 인터뷰 내용이다.
“전 대통령은 임기 초기에 반도체 산업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며 삼성 이병철(李秉喆) 회장을 불렀어요. 삼성이 1970년도에 국내 최초의 반도체 회사인 한국반도체를 인수해서 이름을 바꾼 삼성반도체라는 회사를 보유하고 있었거든요. 근데 이병철 회장이 반도체에 대해 잘 모르더라는 겁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반도체 회사를 인수한 건 이건희의 판단이었고 인수금도 이건희 사재로 했다고 합니다. 삼성그룹에서는 큰 관심이 없었던 거죠. 그래도 대통령은 이병철 회장에게 어떻게든 반도체에 대해 알아보라고 해서 이병철 회장이 실리콘밸리에 가서 알아보고 왔는데, 실리콘밸리도 그때 반도체는 정말 초기 수준이어서 큰 성과는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전 대통령은 계속 삼성을 향해 반도체 산업을 하라고 요구했고, 1981년 반도체 공업 육성계획 수립 후 1982년 청와대에 반도체공업육성 추진위원회를 만들어 기업 지원에 나섰습니다.”
1983년 삼성 이병철 회장이 64KD램 반도체 개발에 착수한다는 동경선언을 발표하고 반도체 산업에 뛰어든 이후 삼성은 1984년 256KD램 개발에 성공하고 금성 반도체의 1985년 1MD램 개발 성공에 이어 삼성도 이듬해 1MD램 반도체 개발에 성공한다.
그러나 일본이 한국 반도체를 견제하기 위해 덤핑 공세를 취하고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급락해 한국 반도체기업의 적자 폭이 커지고 다음 단계인 4MD램 개발을 위한 설비와 기술 개발 투자에 필요한 막대한 자금 수요로 기업들이 주춤한다.
전두환은 삼성 이병철, 현대 정주영, LG 구자경 회장을 불러 한국통신연구소 주관하에 반도체 공동 연구를 제안하고 400억 원의 개발비 중 300억 원을 정부가 지원하도록 한다. 한국의 반도체 산업 투자와 전망에 대한 경제기획원 등 정부 부처의 반대와 국내외 학계와 산업계의 비판적 시각에도 전두환은 반도체 산업에 대한 전폭적 지지를 계속한다.
전두환 퇴임 직전인 1988년 2월 한국은 4MD램 개발에 성공하고 일본과의 기술 격차를 6개월 차이로 좁힌다. 전두환 퇴임 4년 후인 1992년 한국은 미국과 일본보다 먼저 64MD램을 개발하고 이후 세계 반도체 시장을 주도한다.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은 개별 기업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진 성과가 아니며 국가적 차원 사업의 결실이다. 성과급은 급여가 아니며 근로자의 권리도 아니다. 삼성전자 귀족노조의 과도한 성과급 요구는 지속 가능한 요구가 아니며 과거의 헌신을 망각하고 미래의 성장을 갉아먹는 파렴치한 먹튀 행위다.
삼성전자와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성장은 지난 수십 년에 걸친 정부와 지자체, 정부 연구소, 투자자, 그리고 삼성전자 내의 가전사업부와 모바일 사업부의 희생, 그리고 수많은 협력업체와 관련 산업의 노력이 합쳐져 이루어진 결과이다.
반도체 기술 개발 과정에서 삼성전자는 해마다 수십조 원의 투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가전사업부와 휴대전화 사업부의 이익을 투자해 왔다. 삼성전자 노조는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역사를 알아야 하며 탐욕을 버리고 감사하는 마음, 겸허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 황두형
前 연합뉴스 워싱턴 특파원
前 연합뉴스 편집국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