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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홍 칼럼] 병적인 집착은 누구의 것인가
  • 정성홍 회장
  • 등록 2026-07-20 00: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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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사옥 [사진=연합뉴스]

지난 토요일 조선일보 강천석 주필은 ‘병적인 집착, 무지한 집착, 불쌍한 집착’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그는 정청래의 보완수사권 폐지 주장, 이재명의 공소취소 문제, 장동혁의 정치적 행보 등을 평가하며 각각 다른 의미의 ‘집착’을 지적했다.

 

그러나 필자는 그 글을 읽으며 다른 생각을 했다. 그 세 가지 표현은 오히려 오늘의 조선일보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 아닌가.

 

필자는 조선일보를 처음부터 비판적으로 바라본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오랫동안 신뢰했던 신문이었다. 권력 앞에서 쉽게 물러서지 않던 신문, 사회의 어두운 곳을 비추던 신문, 독자의 신뢰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던 신문. 내가 기억하는 조선일보는 그런 모습이었다.

 

한때 조선일보가 대한민국 언론의 중심에 설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어느 언론도 완벽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많은 국민이 조선일보를 읽었던 이유는 단순히 특정한 정치 성향 때문만은 아니었다. 권력을 감시하고, 때로는 불편한 진실이라도 말해 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언론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발행 부수인가. 역사인가. 영향력인가. 아니다. 언론의 진정한 힘은 독자의 신뢰에서 나온다. 아무리 오래된 언론이라도 신뢰를 잃는 순간 권위는 서서히 무너진다.

 

최근 조선일보를 바라보며 많은 독자들이 묻고 있다. 과거 권력을 감시하던 언론의 모습은 어디로 갔는가. 언론이 권력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권력의 움직임을 먼저 계산하는 것은 아닌가.

 

물론 시대가 변하면 언론도 변한다. 그러나 변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바로 언론의 본령이다. 언론은 권력과 가까워지는 것을 목표로 해서는 안 된다. 언론은 권력을 불편하게 만드는 존재여야 한다. 그러나 하필이면 세무조사 사건을 필두로 좌파권력과 언론의 경계는 느슨해져 버렸다. 

 

최근 조선일보를 바라보며 많은 독자들이 묻고 있다. 과거 권력을 감시하던 언론의 모습은 어디로 갔는가. 

1999년 이른바 언론이 앞장선 ‘옷로비 사건’을 시작으로 2001년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 동아일보 김병관 회장, 국민일보 조희준 회장 등이 전격 구속된다.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주요 신문사 사주들이 동시에 구속된 사례는 매우 드물었으며, 이는 언론과 권력의 관계를 둘러싼 가장 큰 사건 가운데 하나로 기록된다.

 

언론사가 앞장섰던 옷로비 사건은 허위로 판명되었지만 김태정 법무부장관은 옷을 벗었고, 그것은 안정남 국세청장이 단행한 언론사 세무조사 사건과 함께 언론의 책임과 권력과의 관계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옷을 벗은 김태정 장관은 그 여파로 건강이 악화되었고, 안정남 청장은 언론으로부터 거센 비판과 함께 조선일보가 취재한 재산형성 과정을 파헤친 장편 드라마 같은 단독 기사로 엄청난 고통을 받고 얼마 뒤 세상을 떠났다. 향년 68세.

 

변화는 구속된 사주들로부터 발생하였다. 3개월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들에게는 길었다. 조세포탈, 불법증여 등의 혐의로 언론사의 수장들이 구속된 사건에 대하여 언론사라 하여 조세형평의 법칙이 어긋나면 안 된다는 주장과 언론탄압이라는 반대 입장으로 사회는 양분되었다. 국정원 수뇌부도 간과할 문제는 아니었다. 

 

그 해법을 찾기 위해 언론사 사주들과 밀접한 협력관계를 유지함으로써 국정 유지에 공헌을 했다는 레전드급 평판을 받았던 전직 인사와 동급의 현직 인사 그리고 필자 3인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김병관 회장이 깊은 신뢰를 해 해외여행 때마다 함께 동반했던 전직 인사는 말했다. 

 

“김병관 회장은 노회한 흉물이다. 지금이 추석 전이니 그는 정부가 언론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추석 전에 석방해 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절대 풀어주면 안 된다. 추석 후는 괜찮다. 그러면 정부에 허위 사실로 딴지 거는 짓은 안 할 것이다.” 

 

그는 사적인 관계에 앞서 국익을 생각한 것이다.

 

전직 인사의 생각은 옳았다. 추석 이후 석방된 언론사는 조심했다. 월간조선 조갑제가 김대중 대통령의 사생활에 얽힌 진승현게이트 사건의 내막을 기사화하려 하자 이를 막아달라는 정부 측의 요청을 받고 방상훈이 직접 자제를 당부했지만 조갑제는 이미 기사를 썼다며 완강히 거부했다. 결국 방상훈은 아끼던 조갑제를 잘라 버렸다. 

 

수사 과정에 참여한 관계자들에 의하면 방상훈 사장은 검찰이 제시한 혐의를 인정하고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받았다. 검찰과의 유대관계가 형성된 이후 본인 부담 성격의 고급 파티였다. 자백을 권유하는 검찰 부담의 연어파티 같은 건 검찰 사전에는 없다.

 

감옥에서 사회적 영향력이 큰 수용자는 ‘범털’로 불린다. 그에게는 1평짜리 독방이 제공된다. 이 독방은 어떤 수감자도 감당이 힘들어 재범율이 낮다는 이야기가 있다. 경험하면 권력에 맞서기가 두렵다. 난생처음 접해보는 감옥은 그들에게는 치가 떨릴 지옥이었다. 항상 그래왔듯이 우파 권력에게는 뭐든 마음 내키는 대로 했지만 좌파 권력에는 조심하게 된 사연이다.

 

필자는 한때 조선일보를 신뢰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오늘의 조선일보를 바라보는 마음은 단순한 비판이나 적대감이 아니다. 오히려 아쉬움에 가깝다. 기대가 없었다면 실망도 없었을 것이다.

 

과거 조선일보가 많은 독자의 신뢰를 얻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단순히 보수적인 논조 때문만은 아니었다. 권력 앞에서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언론은 어느 정권의 편이 되어서는 안 된다. 보수 정권이든 진보 정권이든 권력은 언제나 감시의 대상이다. 때로는 자신과 가까운 세력을 향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언론의 존재 이유다. 최근 언론을 바라보는 국민의 불신이 커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많은 국민은 특정 기사 하나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는 기준이라고 느낀다. 같은 사안을 놓고 누구에게는 엄격하고 누구에게는 관대한 모습을 보일 때 독자는 묻는다.

 

“언론의 기준은 무엇인가.”

 

그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언론은 아무리 오래된 역사와 영향력을 가지고 있어도 신뢰를 유지하기 어렵다.

 

언론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외부의 압력만이 아니다. 스스로 옳다고 믿는 순간 생기는 자기 확신이다. 자신의 판단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순간, 언론은 국민의 목소리보다 자신의 시각을 앞세우게 된다.

 

강천석 주필은 ‘병적인 집착’ ‘무지한 집착’ ‘불쌍한 집착’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정치인을 향한 비판이었다. 그러나 언론 역시 같은 질문 앞에 서야 한다. 

 

혹시 과거의 영향력에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혹시 불편한 현실을 외면하고 자신이 보고 싶은 모습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혹시 독자의 목소리보다 정치적 계산을 먼저 살피고 있는 것은 아닌가. 언론은 다른 사람을 평가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돌아볼 용기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언론이 가진 마지막 자존심이다.

 

나는 조선일보가 사라지기를 바라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다시 신뢰받는 언론으로 돌아오기를 바란다. 권력보다 국민을 두려워하는 신문. 진영보다 사실을 앞세우는 신문. 불편한 진실이라도 외면하지 않는 신문. 그것이 한때 조선일보가 국민에게 보여주었던 모습이었다.

 

언론은 영원한 권력이 아니다. 언론이 가진 힘은 국민이 잠시 맡긴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은 오직 신뢰 위에서만 유지된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묻고 싶다. 병적인 집착은 과연 누구의 것인가. 어쩌면 그 질문에 가장 먼저 답해야 할 자는 오늘의 조선일보 자신인지도 모른다.





◆ 정성홍

 

한미일보 회장

前 국가정보원 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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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2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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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nultns2026-07-20 11:32:04

    지난 10년간 박대통령 탄핵에 앞장선 이유가 최순실 국정농단이며 태블릿 pc수정이라는 가짜뉴스 였다. 그럼에도 단 한번도 그들은 지난 10년간 턱믿에서 외치는 부정선거와 국민 저항권에 대한 명쾌한 해석조차 뒤로 하고 조갑제 같은 이중인격자들 편에서서 좌파들에게 나라를 갖다바치고도 윤통을 또 조리돌림하는데 앞장선 자다. 과연 좌파정권의 입법독재에 동조한 자들이 무슨 언론이라 할 수 있을까?? 재래식 충견들의 무덤만이 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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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ndy5262026-07-20 09:47:57

    이미 네거시 언론들은 신뢰가 잃은지 오래되었다.  뉴미디어가 리얼이고 진실이다. 이대로가면 머지않아 네거시 언론들은 문을 닫아야 할 것이다. 존재자체의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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