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20일 충남 계룡대에서 열린 육·해·공군 사관학교 통합 임관식에서 기수가 입장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육·해·공군 사관학교를 폐교하고 ‘국군사관학교’를 창설하겠다는 구상이 편가르기와 극한 갈등과 진영 대립으로 비화하고 있다.
정부는 ‘미래전 대비를 위한 합동성 강화’와 ‘특정 군맥 카르텔 타파와 쿠데타 예방’을 사관학교 통합 명분으로 포장한다.
그러나 역사가 증명하듯, 물리적인 그릇을 통째로 갈아엎는 방식은 종종 본질적인 문제 해결은 외면한 채 전체주의 획일주의와 관료적 통제만을 강화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중국공산당이 야전군의 다원성을 해체하고 인민해방군을 철저한 ‘당군의 옥죄기’ 아래 두었던 역사적 경로와 사관학교 폐교와 사관학교 통합안이 묘하게 겹쳐 보인다. 독선과 아집의 망령인 모택동 냄새도 난다.
군사 전문성의 핵심은 다양성과 자율성에 있다. 지상전의 섬멸전 맥락, 해양전의 지배력, 공중·우주전의 기술적 지향점은 저마다 판이하다.
현대전 양상에서 전장 영역의 구분이 사라졌다고 사관학교를 합치려는 통합 발상은 양자역학이 나왔다고 기초 과학을 모두 폐지하고 양자역학만 배우라는 독선이다.
초급 장교 양성 시기부터 이들을 하나의 용광로에 집어넣어 단일한 가치관과 교리로 묶는 것은 합동성이 아니라 ‘사고의 획일화와 편협한 동질성’을 낳을 뿐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장교단은 정권의 방침을 무비판적으로 이행하는 기계적 관료가 아니다.
안보의 최전선에서 전문성에 기반해 부당한 정치적 정책에 소신발언을 할 수 있는 자율적 군사 전문가여야 한다.
안보정책과 안보 관련 입안을 사전에 검토하고 정치적 간섭을 차단할 수 있는 전문적 군사 기구를 만들고 헌법에 반영하는 제도적 대안도 필요하다.
아집적 역사해석으로 일부 집단의 불가피했던 했던 행위를 쿠데타로 뒤집어씌워 사관학교 전체를 정치적 연좌제의 틀에 가두고 단일 통제망을 구축하려는 발상은 자유민주적 견제와 문민통제의 원리를 정치가 무너뜨리는 위험한 시도다.
그렇다면 진정한 대안은 무엇인가.
굳이 70-80년간 다져온 각 군의 역사적 터전과 고유한 정체성을 지닌 사관학교의 물리적 뼈대를 부수지 않고도 개혁은 가능하다.
가장 이상적인 해법은 현 교육 시스템의 틀은 유지하되, 교육 내용과 문화적 소프트웨어를 대수술하는 것이다.
무기체계의 발전으로 군별 영역이 사라진다고 하면 모든 초급 장교 양성 과정부터 ‘합동성’을 체질화할 수 있도록 ‘통합무기체계’를 공통과목으로 해야 한다.
지금처럼 사관학교 순회 교육을 통해서 타군의 전술을 배우고, 3군 입체전과 합동작전의 메커니즘을 토론하는 공동 화상 강의와 연합 실습, 교환 학생 프로그램을 상설화하면 된다.
물리적 통합 없이도 교육 프로그램의 유기적 결합을 통해 각 군의 독자성은 살리면서도 상호 이해를 높이는 ‘화학적 합동성’은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
동시에 사관학교 내부의 낡은 온정주의와 폐쇄성은 입시와 인사 공개, 교육예산 증액과 평가 제도의 공정성 강화로 해결할 수 있다. 문제는 사관학교라는 ‘학교’ 그 자체가 아니라, 그곳에서 파생된 특권적 문화와 밀실 인사 구조다.
교육의 내용은 실전적 미래전의 요구에 맞춰 인공지능, 사이버전, 무인체계 등 첨단 과학기술 중심으로 혁신하고, 헌법과 자유민주적 시민의식에 대한 소양을 대폭 강화하여 정치적 중립성과 전문성의 가치를 내면화하도록 만들고, 생도 시절부터 전문성을 위한 소신 발언은 정치적 중립 위반이 아님을 교육해야 한다.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국가 안보는 권력의 통제 편의를 위해 맞춤형으로 재단하는 실험대상도 소모품도 아니다.
지금의 사관학교 통합은 거창한 정치적 구호를 앞세워 군별 다양성을 말살하고 군을 정권의 입맛에 길들여 관료 집단으로 전락시키는 폭거다.
껍데기를 부수는 요란한 정치쇼보다, 교육의 내실을 다지는 진짜 개혁이 절실한 시점이다.
지금 북한과 국제정세를 통찰한다면 사관학교 통합안을 놓고 국론을 분열시킬 때가 아니다. 안보 파탄 정책과 국군사관학교 창설안을 바로 폐기하고 군사대비태세부터 강구해야 한다.

◆ 박필규 위원
한미일보 편집위원
육군사관학교 40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