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5월18일 오전 태평로에서 육사생도 800여 명이 5·16을 지지하는 시가행진을 벌이고 있다.
몇 해 전 ‘초한전(超限戰)’이라는 글을 처음 접했을 때만 해도 필자는 이를 장기판에서 초(楚)나라 항우와 한(漢)나라 유방이 벌인 싸움의 전법 쯤으로 생각했다. 한자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은 탓이었다.
그러나 ‘초한전’의 책장을 넘길수록 생각이 달라졌다. 초한전이란 단순히 군사력으로 싸우는 전쟁이 아니다. 군사·경제·외교·정보·기술·여론 등 전통적인 전쟁의 경계를 넘어 상대의 국가 시스템 자체를 흔드는 개념이었다.
그제야 뒤늦게 깨달았다. 우리는 지금까지 전선이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르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총성이 들리지 않는다고 전쟁이 아닌 것이 아니다.
국민이 전쟁이라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국가의 제도와 사회의 신뢰, 안보의 기반이 조금씩 흔들리다가 대한민국 체제가 송두리째 공산사회주의로 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모른 채 살아왔음을 알게 되었다. 박근혜 정부에 이어 윤석열 정부가 무너질 때까지 말이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신뢰마저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권을 둘러싼 각종 의혹과 갈등, 선거를 둘러싼 불신, 사법부와 검찰을 둘러싼 충돌, 군의 정체성과 전력에 대한 논쟁까지 모든 것이 한꺼번에 뒤엉켜 있다. 사실 여부가 엄격하게 가려져야 할 사안들까지 진영 논리 속에서 소비되면서 국민의 불신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초한전의 전선은 끝없이 길고 집요하다. 중국을 수시로 오가며 수작을 배우더니 대장동에서 자금을 조달하고 전산 기기를 사들였으며, 부정선거로 세력을 대거 확장했다. 그것도 모자라 윤상현 등 부류의 야당 의원들까지 목줄을 매듯 끌고 다닐 정도이니, 그야말로 한계를 초월한 전법이다.
상황이 이러하자 저들의 오만함은 더욱 커졌다. ‘논두렁 시계’ 사건으로 자살한 노무현을 영웅으로 신격화할 때부터 검찰 무력화는 ‘노란봉투법’과 함께 최우선 과제였다. 이토록 수족을 묶어버리니 누구도 손쓸 수 없는 모습에 저들은 신이 났다.
급기야 군(軍)에 손을 대기 시작하여 휴전선 경계망을 무방비 상태로 만들고 탱크 저지선마저 없애버렸다. 나아가 육군사관학교가 과거 세 차례 쿠데타를 일으키고도 처벌받지 않았다며, 육사 폐교 수순까지 밟기에 이르렀다.
어떤 비상 상황에서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체제와 국민의 안위를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인 육사. 그 존재를 ‘3차례 쿠데타의 주역’이라는 황당한 구실을 내세워 말살하려 하자, 군과 이에 호응한 부역자들을 제외한 대다수 국민이 들고일어났다.
특히 육군사관학교를 둘러싼 논란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사관학교는 단순히 장교 몇 명을 배출하는 교육기관이 아니다. 대한민국 국군의 역사와 전통, 장교단의 가치관과 리더십을 계승하는 상징적인 기관이다.
물론 인구 감소와 국방환경 변화에 따라 군 교육체계를 어떻게 개편할 것인지는 충분히 논의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논의가 정치적 목적이나 특정한 역사관에 의해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 더구나 육사를 비롯한 군 교육기관의 존재 이유를 부정적으로만 규정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6·25전쟁 당시 불암산 전투에서 육사 생도들이 보여준 희생을 생각해보라. 제대로 된 전투 경험조차 없던 생도들이 조국을 지키기 위해 전장으로 나갔고, 수많은 젊은이가 돌아오지 못했다.
육사 1기 졸업생들. [국가보훈처]
그들이 싸운 이유는 정치적 야망 때문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이것이 우리가 육사와 국군의 역사를 바라보아야 할 출발점이다.
이는 먼 과거의 이야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까지 우리의 생존이 걸린 엄혹한 현실이다. 우리 가슴속에 ‘체제 붕괴와 공산화만은 절대로 안 된다’는 단호한 집단적 기억이 자리 잡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현대사는 숱한 위기의 연속이었다. 4·19혁명, 5·16, 10월유신, 5·18과 12·12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격랑 속에서 국가적 결단이 내려졌다.
그 결단들이 훗날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중요한 것은 당시의 행위가 어떤 명분과 절차를 내세웠으며,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의 헌정질서와 자유민주주의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역사 앞에서 냉정하게 따지는 일이다.
본래 민주국가에서 법치와 절차는 반드시 준수해야 할 최우선의 가치다. 평시라면 당연히 민간의 통제와 사법·정치적 절차에 따라 국가 위기를 해결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국가의 존망 자체가 위협받는 비상 상황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국가가 붕괴한 뒤에는 법치도, 민주주의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 월남의 비극이 이를 증명한다.
물론 군의 역할과 국가적 결단이 정당성을 얻기 위해서는 단단한 전제가 필요하다. 군이 스스로 나서는 방식은 그 자체로 막중한 책임과 위험을 동반하며, 자칫 사회적 갈등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는 배수진(背水陣)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는 극단적 선택에 이르기 전 살펴야 할 헌법과 법률이 부여한 정당한 공권력, 그리고 국가 기관의 기능이 ‘오만한 이재명 권력의 독주’에 의해 이미 완전히 마비된 상태다.
이재명이 주도하여 끌고 가는 이 거대한 파국과 붕괴의 흐름을 이대로 방치한다면,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는 미래는 국가체제의 근간이 흔들리는 치명적인 비극뿐이다.
사관학교 통폐합 추진은 이러한 우려가 결코 ‘우려’가 아님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국방 효율화’와 ‘인구 감소 대응’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 저의는 명확하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안보의 마지막 보루인 호국 간부 양성 기틀을 무력화하고, 군의 역사성과 정통성을 약화시키려는 국가 해체 공작과 다름없다.
안보의 뿌리를 뒤흔드는 이러한 조치는 결국 이 땅의 방어벽을 스스로 허물겠다는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돌아보면 우리 현대사의 결정적 순간마다 내려졌던 중대한 결단들 역시 극심한 사회적 혼란과 안보 위기 속에서 국가와 국민을 구하기 위해 내렸던 배수의 진이었다.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국가의 붕괴를 막아내고 안보를 다잡았던 과거의 역사적 결단들은, 오직 이 땅의 자유와 체제를 수호하기 위한 결단이었다.
지금 우리에게 다가온 위기 역시 과거의 엄혹했던 순간들과 다르지 않다. 역사의 비난이나 정치적 파장을 두려워하여 눈앞에서 벌어지는 안보 무력화와 체제 붕괴 위협을 좌시하는 것은 국가와 국민에 대한 배임이자 방관이다.
이전의 역사적 결단들이 그러했듯,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판을 뒤엎어서라도 나라를 구하겠다는 비상한 결의다. ‘제4의 비상결단’을 주도하는 최후의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이 땅이 공산화되는 것만큼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드시 막아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거대한 위기 앞에서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소명이자 최후의 과제다. 군(軍)이 결코 위축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정성홍
한미일보 회장
前 스카이데일리 민간5·18진상규명조사위원장
前 국가정보원 간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