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5일(현지시간) 공개한 미국의 최상위 외교 및 안보 정책 지침 문서인 국가안보전략(NSS) 보고서. NSS 보고서 표지 부분
[목차]
① NSS로 읽는 트럼프-바이든-트럼프의 연속성
② 트럼프 2기 안보 전략이 보내는 정책 신호들
③ 위기 관리형 억제 전략의 종착역은 어딘가
④ 한반도에 적용되면 무엇이 달라지나
미국 국가안보전략(NSS) 문서로 읽는 트럼프→바이든→트럼프의 연속성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은 정권 교체 때마다 새로 쓰이는 문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권 교체에 따른 단절보다는 연속성이 강한 영역이다.
특히 2017년 이후 발표된 국가안보전략보고서(National Security Strategy·NSS)를 연속해서 읽어 보면, 최근 동북아시아와 한반도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즉흥적 정책 변화의 결과가 아니라 단계적으로 축적된 구조의 산물임이 드러난다.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시작된 전략적 전환은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제도와 동맹의 언어로 고정됐고, 트럼프 2기에 이르러서는 그 비용을 동맹에 전가하는 국면으로 넘어가고 있다.
◇ 방향 전환의 선언: 트럼프 1기 NSS(2017)
2017년 트럼프 정부가 발표한 국가안보전략은 미국 외교·안보 정책의 기본 전제를 바꾼 문서였다. 트럼프 2기 보고서가 총론이라면 이 문서는 각론을 전망할 수 있는 근거 서류다.
이 보고서는 냉전 이후 유지돼 온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관리자’라는 미국의 역할에 대한 사실상의 종료 선언이며, 국제정치의 기본 구도를 ‘강대국 경쟁(Great Power Competition)’으로 재정의한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더 이상 협력과 통합의 대상이 아니라, 미국의 이익과 가치에 구조적으로 도전하는 전략적 경쟁자로 명시됐다.
특히 주목할 대목은 동맹에 대한 인식 변화다.
트럼프 1기의 NSS에선 동맹을 부정하지 않았지만, 동맹을 미국이 일방적으로 보호해야 할 도덕적 책임의 대상으로 간주하지도 않았다. 동맹은 미국의 힘을 증폭시키는 수단이며, 그 효과를 유지하기 위해 동맹국은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가 분명히 제시됐다. 이는 방위비 분담이나 역할 확대를 넘어, 전쟁 등 유사시 자동 개입이라는 냉전 시대적 발상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신호였다.
이 문서는 전쟁을 전제로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복적으로 강조된 것은 ‘억제’ ‘우위 유지’ ‘경쟁에서의 승리’였다. 미국은 질서를 유지하되, 그 비용을 무조건적으로 떠안을 의사는 없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트럼프 1기 NSS의 본질은 정책의 세부 내용이 아니라 방향의 전환에 있었다.
◇ 제도화와 동맹화: 바이든 NSS(2022)
2022년 바이든 정부가 발표한 국가안보전략은 언어와 형식에서 트럼프 시기와 뚜렷한 대비를 이뤘다.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의 대결 구도를 전면에 내세우며 민주적 가치, 규칙 중심의 질서, 동맹 회복을 핵심 기조로 삼았다. 이는 겉보기에 트럼프 정부 시절의 일방통행식 외교를 바로잡고 국제사회를 정상 궤도로 돌려놓으려는 시도로 읽혔다.
하지만 실질적인 내용을 뜯어보면, 바이든 행정부의 안보 전략도 트럼프 1기에 시작된 큰 틀의 변화를 되돌리지는 않았다.
중국은 ‘유일한 체계적 도전자(the only competitor with both the intent and the capability)’로 규정되며 여전히 경쟁의 중심축이었고, 러시아는 즉각적 위협으로 분류됐다. 군사적 충돌은 억제하되, 국가 간 경쟁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점은 기정사실로 전제됐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동맹에 대한 약속의 성격이다.
바이든 NSS는 동맹을 복원한다고 선언했지만, 유사시 자동 개입이나 무조건적 방어를 명문화하지 않았다. 대신 동맹은 공동 대응의 주체이자 부담을 분담해야 할 파트너로 정의됐다. 동맹을 강조하는 수사는 늘었지만, 실질적인 결정권은 여전히 미국에 있었다. 개입 시점·방식·강도 등 모든 판단은 미국의 몫이었으며, 동맹국들은 그 결정에 따라 역할을 수행하는 구조에 편입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반도의 전략적 위상도 재정의되었다.
트럼프 1기에서 한반도가 북핵 협상과 거래가 가능한 ‘전략적 전장’이었다면, 바이든 시기에는 인도·태평양 전략에 통합된 ‘관리의 대상’으로 변모했다. 한반도의 긴장은 억제되었으나 한국의 전략적 자율성이 확대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한반도 문제가 미국의 광범위한 지역 전략에 흡수되면서, 미국의 결정에 종속되는 구조는 더욱 심화되었다.
◇ 거래화와 비용 전가: 트럼프 2기 NSS(2025)
‘미국 전략이란 무엇인가’라는 서론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보고서는 역설적으로 전략적 공백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트럼프 1기 국가안보전략(NSS)을 분석의 기준으로 제시한다. 답은 거기에 있다는 얘기다.
트럼프 2기 들어 미국의 전략적 수사는 다시금 노골적이고 직설적인 방식으로 회귀하고 있다.
방위비 분담, 동맹의 역할 확대, 관세와 안보의 연계, 기여도의 수치화가 전면에 등장한다. 그러나 이는 방향 전환이라기보다 이미 고정된 구조의 다음 단계로 보는 편이 정확하다. 방향은 1기에서 바뀌었고, 제도는 바이든 시기에 완성됐다. 이제 남은 문제는 비용이다.
트럼프 2기의 특징은 전략 논쟁의 축소다.
무엇을 할 것인가는 이미 정해졌고, 이제는 누가 얼마나 부담할 것인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동맹에 대한 설득은 줄어들고, 거래와 청구의 언어가 늘어나는 이유다. 이는 동맹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동맹을 비용과 성과의 관점에서 재정렬하는 과정에 가깝다.
◇ 세 개의 시기를 관통하는 구조
좀 더 상세히 들여다보면 이 세 단계를 관통하는 하나의 구조적 공식이 드러난다.
트럼프 1기는 미국 안보전략의 방향 전환을 선언했고, 바이든은 그 전환을 제도와 동맹의 언어로 고정시켰으며, 트럼프 2기는 그 비용을 동맹에 전가하는 국면으로 진입했다.
표현 방식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미국의 전략적 핵심 축은 일관되게 유지되었다. 유사시 자동으로 개입하겠다는 약속은 복원되지 않았고, 선택권은 여전히 미국 손에 남아 있다
◇ 한국의 시차와 착시
미국의 이런 전략적 속내를 읽지 못한 대가는 한국이 고스란히 치러야 했다.
문재인 정부는 트럼프 행정부를 일시적이고 예외적인 경우로 해석해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으며, 바이든 시기에는 ‘가치와 동맹 복원’이라는 수사를 실제 전략의 변화로 착각했다.
이재명 정권 들어서도 미국의 전략을 관리 가능한 변수로 인식하는 경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의 전략은 이미 다음 단계로 이동해 있었고, 한국의 인식은 항상 한 박자씩 늦었다.
이는 정권의 성향 문제라기보다, 미국 안보 전략의 단계성을 읽지 못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미국은 변덕스럽게 움직이지 않았다. 먼저 방향을 바꾸고, 그 방향을 제도화한 뒤, 비용을 청구하는 순서로 움직였다.
◇ 왜 지금 ‘해설’이 필요한가
이 분석의 목적은 처방이 아니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즉각적인 결단보다 정확한 독해다. 미국 국가안보전략 문서는 선언문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축적된 설계도에 가깝다. 동의하거나 반대하기에 앞서, 이 문서가 무엇을 못 박았고 어떤 여백을 남겼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충분한 이해 없는 선택은 결국 더 큰 비용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미국 국가안보전략 보고서 원문 링크>
트럼프 1기 NSS (2017, PDF)
바이든 행정부 NSS (2022, PDF)
트럼프 2기 NSS (2025, PDF)
https://www.whitehouse.gov/wp-content/uploads/2025/12/2025-National-Security-Strategy.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