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공군기지. 연합뉴스 자료 사진
최인식 칼럼니스트주한미군이 경기도 오산 공군기지의 출입 통제권을 한국군으로부터 회수하기로 한 결정은 단순한 보안 조치가 아니다.
이는 한미동맹의 작동 원리를 경시한 정부와 수사기관의 무지와 월권이 초래한 결과이며, 대한민국의 안보 역량과 동맹 관리 능력을 스스로 훼손한 사건이다.
문제는 지난 7월, 이른바 ‘내란’ 수사를 담당한 특검이 주한미군과의 사전 협의 없이 한국군을 인솔해서 주한미군 기지에 진입해 핵심 안보시설인 중앙방공통제소(MCRC)를 압수 수색한 데서 시작됐다.
주한미군은 이와 같은 행위를 주둔군지위협정(SOFA)에 대한 명백한 위반으로 판단하고 즉각 항의했다. 주한미군 기지는 한국이 제공한 시설이라 하더라도 치안·경비·출입 통제에 관한 권한은 전적으로 주한미군에게 있다는 것은 SOFA에 명시된 동맹의 기본 질서에 속하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는 주한미군의 문제 제기에 대해 즉각적이고 명확한 해명을 내놓지 못했고, 외교 당국의 공식 답변은 두 달이 지나도록 지연됐다. 9월에 이르러서야 후속 논의가 오갔다는 점에서, 사태의 심각성에 비해 정부의 대응이 지나치게 안일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특검과 정부의 인식이다. 특검은 한국군의 출입 승인을 받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취지로 해명했지만, 이는 SOFA의 기본 구조를 이해하지 못했거나 의도적으로 외면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주한미군 기지 출입에 관한 최종 권한은 주한미군에 있으며, 한국군의 승인만으로 핵심 시설에 대한 강제 수사가 가능하다는 발상 자체가 동맹의 법적·군사적 질서를 무너뜨린다. 법치와 절차를 강조해야 할 수사기관이 오히려 국제적 약속을 가볍게 취급한 셈이다.
오산기지 내 MCRC는 한·미 양국의 방공 정보가 통합·운용되는 연합방위체계의 중추다. 이곳에서 생성·처리되는 정보는 최고 수준의 군사기밀로 분류되며, 유출될 경우 즉각적인 안보 위협으로 직결될 수 있다.
북한을 비롯한 적대 세력이 가장 탐내는 정보가 집적된 시설이라는 점에서, 주한미군이 이번 사안을 ‘보안 강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동맹 간 신뢰의 문제로 받아들인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판단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수사기관은 해당 시설을 일반 행정기관처럼 취급했고, 정부는 이를 제어하지 않았다.
이번 사태로 주한미군은 오산기지의 모든 출입 게이트를 통합 관리하기로 결정했다. 한국군의 신분증은 더 이상 출입 수단으로 인정되지 않으며, 주한미군이 발급한 국방 생체 인식 시스템(DBIDS) 카드 소지자만 출입이 가능해졌다.
한·미가 공동으로 관리하던 출입 체계가 사실상 주한미군 단독 통제로 전환된 것이다. 이는 동맹의 역사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조치로, 한국 정부와 수사기관에 대한 신뢰가 그만큼 크게 훼손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정치적 목적의 수사가 국가 안보의 기본 질서를 침범했다는 데 있다.
이재명정부와 특검은 정치적 명분을 앞세운 나머지 한·미 군사협력 구조와 SOFA 체계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
안보 시설과 동맹의 규범은 정권의 성향이나 정치적 상황에 따라 자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이를 무시한 대가는 곧바로 동맹 관리 실패라는 형태로 돌아왔다.
이제라도 정부는 사태의 심각성을 직시해야 한다. 우선 미국 측에 공식적이고 책임 있는 해명을 통해 SOFA 준수 의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동시에 군과 검찰·수사기관을 대상으로 주한미군 기지 출입과 동맹 규범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국회 역시 정치적 목적의 수사가 핵심 안보 시설로 확장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법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훼손된 한·미 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실질적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동맹은 선언이나 수사가 아니라 신뢰와 규범 위에서 유지된다. 법과 절차, 국제적 약속을 경시한 채 권한을 행사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안보 불안으로 돌아온다.
2025년 오산기지 사태는 단발성 논란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동맹을 어떻게 관리하고 국가 안보의 기본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를 묻는 중대한 경고로 기록될 것이다.
한미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