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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은식 칼럼] 국제동맹 나몰라라 민주당 편드는 통일부
  • 주은식 편집위원
  • 등록 2025-12-20 10:3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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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는 냉전이 낳은 비극의 산실이자 잘 보존된 자연의 보고다. 고성 DMZ박물관 전시물. 임요희 기자Ⓒ한미일보

주은식 편집위원·한국전략연구소 소장최근 비무장지대(DMZ) 출입 절차를 둘러싸고 대한민국 정부와 유엔군사령부 사이에 발생한 갈등은 단순한 행정 마찰이나 주권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이 사안은 국제법적 의무와 동맹 질서가 국내 정치 논리에 밀려 후순위로 취급되고 있다는 구조적 위험을 드러내고 있으며,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서 쌓아온 신뢰 자산을 잠식할 수 있는 중대한 경고로 읽혀야 한다. DMZ 관할권 논쟁은 그 자체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유엔군 장교 비자 발급이라는 외교·동맹 차원의 사안과 맞물리며 한국의 국제적 신뢰도를 잠식하고 있다.


논란의 직접적 계기는 최근 안보실 차장의 백마고지 유해발굴 현장 출입신청을 유엔사가 불허한 데서 비롯됐다. 이에 대해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주권국가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라며 공개적으로 강한 불만을 표시했고, DMZ 출입 시 유엔사 승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정부 허가만으로 가능하도록 하는 입법 조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국회에서는 이와 관련된 법률안 공청회까지 열리며 사안은 단순한 행정 협의를 넘어 정치 쟁점으로 비화됐다.


그러나 국제조약 위에 국내법이 군림한다는 착각을 하면 이 사안의 본질은 흐려진다. DMZ는 헌법상 대한민국 영토임이 분명하지만, 동시에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한국전쟁 정전협정에 의해 설정된 국제법적 특수지대다. 정전협정은 정치적 합의문이 아니라 국제법적 구속력을 지닌 조약이며, 이 조약에 따라 DMZ의 군사적·행정적 관리 권한은 유엔군사령관에게 부여돼 있다. 이는 어느 한 정부의 정책 선택이나 해석에 따라 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 체결 당사국이 준수해야 할 법적 의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법을 통해 유엔사 승인 절차를 무력화하거나 우회하려는 발상은 국제법 질서에 대한 근본적 무지함을 보여준다. 국내 입법이 국제조약 위에 군림할 수 있다는 착각은 단기적으로는 정치적 박수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대한민국을 ‘조약을 존중하지 않는 국가’라고 전세계에 선포하는 것과 같다. 


더 우려되는 대목은 이러한 움직임이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그간 군사정전위원회 무력화, 중립국감독위원회 추방, 정전협정 무효 주장 등으로 정전체제를 일관되게 흔들어 왔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마저 정전협정의 핵심 조항을 국내 정치 논리로 훼손하려 한다면, 이는 북한의 기존 주장에 외교적 명분을 제공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정전협정을 존중한다고 말하면서 실제 행동은 이를 약화시키는 모순을 국제사회가 어떻게 평가할지는 자명하다.


문제의 심각성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국제법보다 국내 행정 편의가 우선되는 관행은 외교부의 유엔군 장교 비자 발급 문제에서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유엔군 소속으로 한국에 파견되는 외국군 장교들에게 외교·공무 비자가 아닌 단기 노동비자를 발급하고, 이들이 출입국·외국인청을 반복적으로 오가며 체류 연장을 해야 하는 현실은 단순한 행정 착오를 넘어 제도적 무능에 가깝다. 유엔군 장교는 한국에 취업하러 온 근로자가 아니라, 정전협정에 근거해 임무를 수행하는 국제군 인원이다. 이들에게 노동비자를 적용하는 국가는 찾아보기 어렵다.


일각에서는 미국 역시 한국 기업 근로자에게 엄격한 노동비자를 요구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문제의 핵심이다. 타국의 제도를 비판해 왔다면, 최소한 우리는 동맹국과 유엔군 인사에게 국제 관행에 부합하는 예우를 보여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는 상호주의가 아니라 자기모순일 뿐이며, 동맹 관리 능력에 대한 의문만 키울 뿐이다.


동맹은 선언이나 수사로 유지되지 않는다. 국제법 존중, 제도의 일관성, 동맹 인사에 대한 예우라는 사소해 보이지만 누적되는 디테일이 신뢰를 지탱한다. DMZ 관할권 문제에서 국제조약을 경시하고, 유엔군 장교를 사실상 노동 행정의 대상으로 취급하는 일이 반복된다면 동맹의 균열은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진행될 것이다.


특히 우리는 현재 캐나다를 상대로 한국형 잠수함 수출을 추진하며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한국에서 근무 중인 캐나다 육군 중장 데릭 앨런 맥컬리(Derek Allen Macaulay) 유엔사 부사령관에게 노동청을 전전하며 노동비자를 발급받으라고 홀대하면서 “한국형 잠수함이 우수하니 도입해 달라”고 설득한다면 그 말이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 수 있겠는가? 국제 방산 거래에서 기술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신뢰와 예우이며, 상대국이 체감하는 태도다.


K-방산은 더 이상 개별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총력을 다해야 하는 영역이다. 국제 거래의 승부는 무기체계의 성능표만으로 갈리지 않는다. 디테일과 프로토콜, 그리고 상대국 인사에 대한 존중이 누적돼 최종 결정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수없이 경험해 왔다. 이를 외면한 채 국내 정치 논리와 행정 편의만을 앞세운다면, 외교·안보·산업 전반에서 치러야 할 비용은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감정적 주권 담론이 아니라 국제법과 동맹 질서 속에서 국익을 극대화하는 성숙한 국가 운영이다. 정전협정을 경시하는 입법 시도와 유엔군 소속 장교를 노동자로 취급하는 행정 관행이 지속된다면, 대한민국의 외교·안보 자산을 직접적으로 잠식할 것이다. DMZ 관할권 논쟁과 유엔군 비자 문제는 한국이 지금 어느 길에 서 있는지를 묻는 경고등이다. 방향을 바로잡아야 할 시간은 이미 충분히 지났다.


한미일보 편집위원·한국전략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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