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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 한미칼럼] RE100 특별법 추진, 원전 폐기 데자뷔인가
  • 김영 기자
  • 등록 2025-12-23 08:5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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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할 수 있는데, 왜 덮어쓰나
  • 전력정책은 국가 주권을 다루는 문제

RE100과 한국형 소형원자로(SMR). [그래픽 합성=한미일보]

이 글은 ‘국가정책이 오작동 되면 장기적인 손실을 남길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12월21일 고위 당정대협의회(당·정부·대통령실)는 기업의 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목표로 하는 캠페인의 일종인 RE100을 적용한 산업단지 건설을 국가 전략 과제로 추진하고, 관련 특별법 제정을 서두르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발표는 국가가 어떤 산업 기준을 받아들이고, 그 비용과 책임을 누구에게 전가할 것인지를 결정했다는 점에서 충격을 준다. 문재인 정권의 ‘원전 폐기 정책’으로 인한 폐해를 연상시킨다.

 

그동안 RE100 국가 산단 조성과 관련해 야당은 물론 산업계 전반이 전력비 상승에 대한 우려를 표해왔으며, 원자력발전이란 대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재명 정권이 특별법이란 강제 수단을 통해 밀어붙이기 때문이다.

 

RE100은 국제조약도, 정부 간 합의도 아니다. 영국의 민간 환경단체인 기후그룹(The Climate Group)과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가 주도한 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캠페인이다. 법적 구속력도 없고, 국가 정책 도구로 설계된 기준도 아니다. 

 

여기서 공급망이란 완제품 기업을 중심으로 부품·원자재·에너지 조달까지 이어지는 거래 관계 전체를 뜻한다. 평가 기준 하나가 계약과 투자를 좌우하는 구조다.

 

글로벌 기업들이 이를 공급망 평가 기준으로 활용하면서 사실상 거래 조건처럼 작동하고 있다.

 

심각한 봐야 할 대목은 이런 시스템들이 모순을 보인다는 점이다.

 

글로벌 환경·사회·지배구조를 평가하는 ESG는 이미 원전을 조건부 친환경으로 포함시켰다. ESG는 ‘환경·사회·지배구조’를 기준으로 기업을 평가하는 비재무적 기준이며, 법은 아니지만 자본시장에서는 사실상의 규칙처럼 작동한다.

 

유럽연합(EU)의 지속가능성 판단 지표인 택소노미(Taxonomy) 역시 탄소 감축이라는 목적 아래 원전을 인정한다. 즉, ‘무탄소’라는 목표에 대한 국제적 합의는 존재한다. 

 

이들은 RE100이 활용하는 CDP를 평가에 광범위하게 활용하고 있다. 그런데 RE100만 유독 원전을 배제한다. 이로 인해 같은 기업이 ESG 기준에서는 친환경으로 평가받으면서도, RE100 기준에서는 부적합 판정을 받는 충돌이 발생한다.

 

이런 충돌 상황이 생기면 정부는 조정과 중재에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이재명 정권은 이를 국가 기준으로 적용하려 하고 있다. 

 

미국과 비교해보면 문제는 더욱 분명해진다. 미국은 RE100을 국가 기준으로 채택하지 않는다. 대신 무탄소(Carbon-Free Energy) 기준을 사용하며, 원전과 소형모듈원전(SMR)을 산업·안보 전략의 핵심 전원으로 다룬다. 

 

RE100은 미국과 EU에는 선택으로 남지만, 한국 같은 제조국과 수출국에는 거래의 조건으로 작동한다. 이 비대칭 구조가 문제의 본질이다.

 

외환위기 직전에도 사람들은 “환율이 왜 문제냐”고 말했다. 숫자는 복잡했고, 일상은 평온해 보였다. 그러나 환율이 무너진 뒤에야 그 위험성이 드러났다. 

 

전력산업과 산업 기준의 문제도 다르지 않다. 지금은 체감되지 않을 수 있지만, 한 번 구조로 고정되면 되돌릴 수 없고 그 파장은 특정 산업을 넘어 국가 전체로 확산된다. 

 

RE100을 국가 전략으로 고정하는 선택은 오늘의 정책이 아니라, 내일의 재난이 될 수 있다.

 

이 기준이 힘을 갖게 된 배경에는 글로벌 자본의 평가 구조가 있다. 

 

글로벌 자본은 ESG를 도덕적 가치가 아니라 리스크 관리 도구로 활용해 왔다. 

 

RE100은 측정과 공시가 쉬운 ‘편리한 지표’다. 복잡한 기술 논쟁보다 단순한 기준을 선호한 결과, 민간 캠페인이 글로벌 평가 언어가 됐다. 

 

우리에게 있어 문제는 그 언어가 국가 정책으로 역류했다는 점이다.

 

정부는 글로벌 시장에서 기업의 탈락을 막기 위한 선택이라고 설명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보호가 아니다. 비용과 책임은 민간에 넘기고, 국가가 해야 할 기준 검증을 생략한 결정이라 할 수 있다.

 

특별법으로 이 기준이 정책으로 고정되면 나중에 잘못이 드러나도 되돌리기 어렵다. 그에 따른 정책 실패 비용은 늘 국민과 기업이 떠안아 왔다. 원전 폐기 정책으로 얼마나 큰 손해를 봤는지 돌아보면 알 수 있다.

 

RE100이 가진 가장 위험한 구조적 문제는 환경이 아니라 전력 가격이다. 

 

원전과 무탄소 전원을 배제한 채 재생에너지로만 전력 조달을 요구하는 기준은 기술 중립이 아니다. 이는 전력 선택권을 제한하는 산업 규제다. 

 

간헐성이 높은 전원의 비중이 늘어나면 계통 안정화 비용, 백업 전원 비용, 송배전 비용이 함께 상승할 수밖에 없다. 전력 단가는 정책 선언이 아니라 물리와 시장의 결과로 결정기 때문이다. 

 

RE100은 전력값 상승을 구조적으로 내포한 기준이며, 그 부담은 예외 없이 제조업 전반에 전가된다.

 

전력값이 오르면 반도체·철강·화학·배터리 같은 에너지 집약 산업부터 경쟁력을 잃는다. 수익성이 흔들리면 투자는 멈추고, 신규 공장은 해외로 이동한다. 

 

이 과정은 선언이나 애국심으로 막을 수 없다. 

 

산업 공동화는 하루아침에 오지 않지만, 전력 비용과 안정성이 무너질 때 조용히 시작된다. 

 

이런 가능성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채 RE100을 특별법으로 고정한다면, 질문은 하나로 수렴된다. 

 

“누굴 위한 특별법인가.”

 

환경은 중요하다. 탄소 감축은 피할 수 없는 과제다. 그러나 기준은 검증돼야 하고, 선택지는 열려 있어야 한다. 

 

원전을 포함한 무탄소 기준이라는 대안이 존재하는데도, 왜 우리는 철지난 RE100을 국가 전략으로 채택했는가. 

 

국민적 합의도, 대안 비교도 없이 속도부터 내는 정책은 개혁이 아니다. 개악이다. AI 시대, 전력산업은 국가 주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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