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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집권 7개월 만에 닥친 피로감, 무엇이 정권을 흔드나
  • 관리자 관리자
  • 등록 2025-12-26 11:3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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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민주·청렴·법치가 동시에 흔들릴 때 민심은 떠난다

 

이재명 정권이 출범한 지 이제 겨우 7개월 지났지만, 국민이 체감하는 피로감은 정권 말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통상 정권 초반은 기대와 관망이 교차하는 시기다. 그러나 지금 분위기는 다르다. 불신과 경계심, 그리고 조용한 거리두기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이례적인 조기 피로감의 원인은 단순한 정책 실패가 아니라, 기존 질서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정권의 운영 방식에 있다.

 

좌파 정권이 스스로 내세워 온 핵심 가치는 ‘민주’와 ‘청렴’이다. 그러나 최근 국정 흐름을 바라보는 국민은 이 두 가지 모두가 동시에 흔들리고 있음을 본다. 정권이 주장해 온 최우선 가치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원인은 세 가지다.

 

첫째, 특검을 앞세운 이른바 ‘청산 정치’다.

 

이재명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를 제거하려는 위헌적 입법 시도, 표현의 자유를 제약할 수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법 추진 등은 입법 권력이 견제 없이 행사되고 있다는 인상을 남겼다. 이것이 민심 이반의 첫 번째 원인이다.

 

둘째, 국정 최고 책임자의 인식 수준에 대한 의문이다.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결정은 사법 판단의 최종적 정리를 넘어 정치적 고려가 앞섰다는 논란을 낳았다. 통일교에 대한 ‘해산’ 발언 역시 복잡한 사회·종교 문제를 지나치게 단선적으로 바라본 것 아니냐는 지적을 불러왔다. 

 

대통령의 언어와 판단은 그 자체로 국정의 방향을 규정한다. 그 무게에 비해 설명과 숙고가 부족하다는 인식이 쌓이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정책적 오류보다 더 치명적인 타격은 따로 있다. 바로 법과 윤리라는 잣대가 권력층과 서민에게 다르게 적용된다는 불신이다.

 

국민은 더 이상 정권을 법률적 잣대로만 평가하지 않는다.

 

고급 식사와 기업 접대 논란, 그리고 권력 내부의 ‘문제 없다’는 안일한 인식이 반복될수록 국민은 정치가 자신들과는 다른 규칙 위에서 작동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최근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쿠팡 고가 식사 논란과 대한항공 접대 의혹이 거센 비판을 받는 이유도 바로 이 지점, 정치가 상실한 공정의 원칙에 있다.

 

통일교 논란 이후 그토록 단단하던 호남 민심이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 역시 이 지점과 맞닿아 있다. 

 

이는 특정 정책이나 인물 하나 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믿어 온 기준이 더 이상 지켜지지 않는다’는 감각이 누적된 결과다. 이 감각은 분노보다 냉소를, 저항보다 체념을 낳는다. 한 번 생긴 거리감은 설명으로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한국 현대사를 돌아봐도 민주, 청렴, 법치에 대한 신뢰가 동시에 흔들린 사례는 드물다. 

 

더 큰 문제는 이 정권이 그 균열을 인정하고 시정하려 하기보다, 정당성과 숫자에 기대 밀어붙이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오류를 범하고도 반성과 사과가 없는 권력은 스스로를 절대다수로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재명 정권은 출범부터 ‘반쪽의 지지’ 위에 서 있었다. 그 사실을 망각한 채 독주할수록, 남은 반쪽의 민심은 조용히 손을 놓는다. 그리고 이제 그 남은 또 하나의 반쪽마저 손 놓을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김병기 논란은 한 정치인의 처신 문제가 아니라, 도덕을 대하는 권력의 감각이 국민의 일상과 얼마나 멀어졌는지를 보여준 사건이다.

 

법보다 빠른 것이 민심이다. 이재명 정권이 민심의 괴리감을 인정하고 기준을 다시 맞추지 않는다면, 정권을 향한 피로감은 더 빠르게 누적될 것이다. 

 

민심은 거창한 구호보다 잣대의 일관성을 요구한다. 


물은 아래로 흐른다. 민심의 향배 또한 같은 이치로 순리를 따르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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