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김문수의 행보는 다수의 우파 국민을 실망시키는 정도를 넘어 국민을 배신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병준 자유와정의를실천하는교수모임(자교모) 공동대표 한국의 대표적 노동운동가, 청렴한 공직자, 사심 없는 정치 행보, 우파 내 개혁주의자….
이런 수식어가 김문수를 이제껏 대표하지 않았나 싶다. 그의 좌파 운동권 경력에도 불구하고 우파를 지지하는 대다수 국민은 그의 이러한 양심적 발자취와 소신에 큰 기대를 걸었다. 그래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이후 국민의힘에서 시급하게 치러진 대선 경선에서도 비상계엄에 대한 확실한 지지 소신을 보이지 못했던 한덕수 후보 대신 김문수 후보를 선택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사실 필자를 비롯한 여러 우파 단체에서도 김문수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자당 내 탄핵 협조 세력들을 물리치고 부정선거를 규명하는 데 온 힘을 기울여 달라는 뜻을 모아 그에 대한 조건부 지지 선언을 한 것도 사실이다.
실망을 넘어 배신감 안겨 준 김문수의 행보
그러나 이후 김문수의 행보는 다수의 우파 국민을 실망시키는 정도를 넘어 국민을 배신하는 행태를 보였다.
올해 6월3일 치러진 대선에서도 과거와 다름없이 판박이로 사전투표 결과가 조작되었다. 이는 구태여 설명할 필요도 없이 당일 투표 결과와는 상극적으로 전국 선거구에서 일률적으로 나타난 이재명의 압도적 사전투표 득표수 결과에 기인한다.
2022년 코로나19 확진자의 부정투표지 발각에 따른 확진자의 대리투표 방지 조치로 인해 윤석열 후보가 25만 표라는 아슬아슬한 차이로 대선에서 승리한 바 있다. 당시에도 엄밀하게 봐서는 사전투표 득표 결과가 당일 투표와는 정반대의 결과로 나타난 부정 조작의 흔적이 분명하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선관위 데이터에서 발견된 CCP의 암호문
VON이 누차 지적했듯이, 2020년 총선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 데이터에서 ‘중국공산당을 따르라(follow the party)’라는 암호문이 발견되었다. 이는 단순한 당락 조작을 넘어 세부 투표자 수까지 치밀하게 설계되었음을 방증한다. 결국 우리 선거 제도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중국공산당의 의도대로 유린당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라 할 수 있다.
사실 이러한 그들의 오만 덕분에 2022년 대선에서 그들이 보기 좋게 패한 결과가 나타났음은 분명해 보인다. 문재인의 종중 매국 행보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 대다수 국민은 ‘더 이상 중국공산당에 지배되는 좌파 정부는 안 된다’는 신념이 강해졌다.
이에 따라 대선에서도 5% 이상의 큰 격차로 좌파가 승리하도록 부정 조작을 해 놓을 경우 국민의 부정선거에 대한 분노가 하늘을 찌를 기세였다. 그래서 중국공산당은 치밀하게 이를 감안했고,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인 점을 이용해 정교하게 1% 정도의 소폭 승리 조작을 미리 설정해 놓은 것으로 추정된다.
20대 대선 승리는 설계된 조작이 빗나간 결과
그러나 하늘이 도우사 은평구에서의 확진자 투표지에서 좌파 후보에 선(先)기표된 부정투표지들이 발견됨으로써 당시 질병관리청의 공식 통계로 25만 명의 확진자 부정투표가 물거품이 되었다. 이런 사유로 20대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중국공산당은 국민의 반중·반좌파 정서와 코로나19 상황까지 치밀하게 계산하여, 이재명 후보가 약 1% 차이로 승리하도록 득표수를 사전 조작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부정 투표지 물증이 잇따라 발견되면서 설계된 조작은 빗나갔고, 윤석열 후보가 0.7%p 차이로 신승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러한 분석은 필자가 이미 한미일보 논설(2025년 12월18일자)에서 밝힌 바와 같다.
좌파의 20대 대선에서의 실책, 어거지 탄핵으로 이어져
좌파 세력의 뼈아픈 ‘자만에 따른 실책’은 오히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어거지 탄핵 시도와 함께, 이번 6·3 대선에서 더욱 거리낌 없는 조직적 조작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선거 조작이 확대된 배경에 대해서는 필자의 다음 논평에서 상세히 다룰 예정이다.
우파 국민은 2022년 대선 조작 사례가 반복될지 모른다는 우려 속에 김문수를 2025년 대통령 후보로 선택했다.[사진=연합뉴스]
부정선거는 이제 전 국민적 관심사가 되었다. 우파 국민은 2022년 대선의 조작 사례가 반복될지 모른다는 우려 속에 김문수 후보를 선택했다. 이는 윤 대통령의 뒤를 이어 부정선거를 뿌리뽑아 달라는 강력한 지지이자 염원이었다.
그런데 김문수는 예전보다 더 노골적으로 드러난 사전투표와 당일투표의 격차에 따른 자신의 패배 결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온 국민의 열화와 같은 염원을 무시한 채 선거 다음 날 새벽 6시가 채 되기도 전에 앞장서서 선거 결과에 승복한다는 뜻을 밝혔다.
김문수의 대선 승복은 국민에 대한 배신행위
선거 후보 당사자가 이 같은 부정선거의 확실한 가능성을 뒤로 한 채 판결의 유불리를 떠나 선거무효 소송에 대한 언급이나 실행도 없이 가장 먼저 승복 선언을 한 것은 국민에 대한 배신행위로 볼 수 있다. 김문수는 지지자들의 등 뒤에서 칼을 꽂은 것이다.
김문수는 이후 뻔뻔스럽게도 자신이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을 뒤집고 국민의 힘 당대표 선거에도 나섰다. 물론 제도권 언론을 비롯한 여러 매체들에서 김문수의 당선 가능성을 높게 보도하였으나 성난 민심은 김문수의 이런 행보를 용서하지 않았다. 결국 민심은 좀 더 참신성을 보인 장동혁 후보를 지지했고, 김문수는 당대표 선거에서 보기 좋게 낙선했다.
사실 여론조사 자체는 선관위에서 내보낸 조작된 모집단을 근거로 실시하는 것인 만큼 필자는 절대로 신뢰하지 않는다. 즉, 김문수는 각종 여론조사에서의 거짓된 우세를 지키지 못하고 확실한 국민의 심판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탄핵에 앞장선 한동훈을 지지한다고 밝힌 김문수
그런데 김문수는 여기에서 머물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가 최근에는 자당에서 배출한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하는 데 앞장섰던 한동훈을 지지하는 성명서까지 발표했다. 실로 국민을 우롱하는 과거 우파 반역 세력들의 행보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에 대해 보수우파 국민은 이제는 김문수에게 실망을 넘어 분노감까지 표출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을 짚어 보자면 과연 김문수는 부정선거의 실체를 몰랐을까 하는 점이다. 설사 아무리 몰랐다 하더라도 자당을 지지하는 다수 우파 국민의 열렬한 외침을 어떻게 무시할 수 있었을까 싶다. 이에 대해 필자는 아래와 같은 논거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김문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도대체 김문수는 어떤 정체성을 가진 사람인가? 이를 살펴보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올해 6·3 대선의 국민의힘 예비선거가 한창 진행되던 무렵 필자는 우연히 지인의 저녁식사 초대 자리에서 그를 우연히 잠깐 대면할 기회를 가졌다. 필자는 그 자리에서 단도직입적으로 그에게 물었다.
“김 후보는 왜 부정선거, 중공의 패악질 개입 및 5·18 광주사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피력하지 않는가.” 이것이 필자가 김문수 후보에게 던진 돌직구 질문이다. 이에 대해 김문수는 바쁜 일정상 자리를 떠야 했던 상황은 이해되나, 필자의 질문에 가타부타 확답을 피한 채 서둘러 현장을 떠났다.
김문수는 1994년 김영삼 정권에 재야 민주화운동 인사로 영입되었다. 이후 국회의원, 경기도지사를 역임하며 합리적이고 소신 있는 행보로 우파 정당 내에서 개혁주의자로서의 면모를 가감 없이 발휘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초기 막스·레닌주의자에서 출발한 그의 사회주의 정치 이념이 완전히 탈색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문의 여지가 있다. 특히 중국공산당이 주도하는 부정선거에 관한 조사 및 근절 방안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확실한 자신의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다.
이는 과거 자당을 흠집 내고 부정선거 주장을 근거 없는 모함으로 폄하하는 이준석을 옹호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 또한 현재 보수 대통합을 명분 삼아 대통령 탄핵에 결정적 역할을 한 한동훈까지 지지하고 나선 행보에서도 그 본질을 엿볼 수 있다.
사회주의 가치체계 버리지 못한 김문수
그는 또한 2008년 비록 중국의 패악질이 가시화되기 이전이긴 하나 경제적 번영을 위한다는 목적으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에게 한중 해저터널의 건설도 주장한 바 있다.
노동운동가 시절의 김문수. [사진=연합뉴스]
김문수는 좌파에서 우파로 방향 전환을 꾀했다고 알려졌으나 필자가 보기에 그의 신념 체계는 아직도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자유경쟁 체제를 조절해야 한다는 사회주의적 가치체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는 해방 이전, 공산주의자에서 온건 사회주의자로의 변모를 추구한 죽산 조봉암의 경우와 비견될 만하다고 평가된다.
김문수와 흡사한 죽산 조봉암의 행보
죽산 조봉암(1898~1959)은 청년 시절 중국·일본·소련 등지에서 유학하며 공산주의 사상에 심취된 정통파 공산주의자이다.
그는 박헌영과의 교류를 통해 1925년부터 조선공산당 활동을 주도하다가 1932년 상해에서 공산주의자 퇴치 작업으로 투옥되어 7년 동안 수감생활을 했다. 이후 해방이 되자 여운형이 주도하는 건국준비위원회의 인천지부장으로 활동한 바 있다.
조봉암은 1946년 주한미군 CIC(방첩대)가 그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박헌영을 비판한 내밀한 서신이 유출되며 그와 정면으로 충돌하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둘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반목으로 치달았고, 조봉암은 1946년 5월 조선공산당을 탈당했다. 그리고 공산주의 노선과 완전히 선을 긋고 사회민주주의의 길을 걷겠다는 전향 선언을 발표했다.
이승만 초대 내각의 농림부 장관… 북한식 농지개혁 시도
이후 1948년 5·10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초대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 농지개혁을 위한 목적으로 초대 내각의 농림부 장관으로 임명된 바 있다.
그러나 그는 북한식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농지개혁과 거의 차이가 없는 과격한 개혁안을 들고나와 당시 지주계급이 다수를 점하고 있던 한국민주당(한민당)의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결국 그는 1949년 2월에 농림부 장관직을 사퇴했다.
이후 한민당 주도로 당시 대한민국 최대 지주의 후손이었던 인촌 김성수의 적극적 양보책으로 세계적 모범사례로도 손꼽히는 유상매수·유상분배로의 농지개혁이 성공리에 입법화된 바 있다.
평화주의자 자처하며 사회민주주의자로서 활동
죽산은 이후 여당인 대한국민당에 입당하여 국회의원 재선에 성공한 이후 본격적인 사회민주주의자로서 활동을 개시했다. 조봉암은 평화주의자를 자처했으나, 실상은 김일성이 내세운 남북 평화통일 노선을 추종했다. 이러한 행적의 실체는 노태우정부 시절 소련과의 수교 이후 공개된 극비 문서를 통해 명확히 드러났다. 해당 문서에 따르면, 그는 김일성으로부터 답신 형식으로 “남한에서 온건 사회주의 노선을 견지하라”는 지령과 함께 소정의 공작지원금을 받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승만정부 당시 진보당 사건 수사 과정에서 조봉암의 북한 연계 자금 수수 사실이 드러났다. 북한 간첩 양이섭의 구체적인 진술에 따르면, 당시 조봉암은 북한으로부터 2만3000달러를 수령했다. 이는 현재 원화 가치로 약 4억5000만 원에 달하는 거액이다.
온건 사회주의 표방해도 이념적 본질은 공산주의자
조봉암이 추구한 평화통일 노선은 결국 북한의 주장과 궤를 같이하는 공산주의 노선임이 드러났다. 이에 따라 그는 1959년 이승만정부에 의해 사형에 처해졌다.
흥미로운 점은 현재 죽산기념사업회에서 활동하는 인사 상당수가 국민의힘 내 배반 세력으로 지목되는 한동훈계를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조봉암이 한때 이승만의 여당에 몸담고 온건 사회주의를 표방했다 하더라도, 그의 이념적 본질이 공산주의자였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김문수와 조봉암의 유사점
그런데 김문수는 조봉암과 어떤 점이 닮았고, 어떤 점이 차이가 있을까?
비록 53년이라는 긴 세월의 간극이 있으나, 두 사람이 정통파 공산주의에 이념적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공통점이다. 이는 새까만 후세들의 모임인 죽산기념사업회와 한동훈과의 관계, 그리고 한동훈을 엄호하는 김문수의 행태를 보면 그리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또한 당시 조봉암은 결국 북한의 김일성 정권에 의지하는 태도를 취했는데, 김문수는 중국공산당을 정면 비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고 중국에 친화적인 한동훈·이준석을 옹호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즉, 김문수의 대선 승복 발언이나 한동훈 지지 발언은 자신의 신념을 바꾼 배신 행위라기보다 오히려 자신의 신념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한 수단적 측면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김문수와 조봉암의 차이점은 문화·경제적 변천에 따른 것
조봉암과 김문수의 차이점은 시대 변천에 따른 문화·경제적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조봉암은 자신의 정치적 입지 확보를 위해 박헌영과 단절했고 결국은 좌파의 통일전선 전술의 일환으로 온건 사회주의자로서의 전환을 추구했다.
김문수는 6·25 전쟁 이후 뿌리 깊이 형성된 반(反)공산주의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당시의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세력들로 직접 흡수되는 전략을 택했다고 할 수 있다.
즉 두 사람의 차이점은 조봉암은 이승만과 대치하며 진보당을 창당하며 그래도 사회주의자로서의 면모를 유지한 반면, 김문수는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온전한 자유주의자로 전환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진지론·초한전 상황에서 더욱 경계해야 할 인물
지금은 소위 안토니오 그람시의 진지론(War of Position), 중국공산당의 초한전(Hybrid War) 등의 전략에 의해 공산주의가 겉의 허물을 감추고 은밀하게 침략해 오고 있는 상황이다. 다시 말해 세계의 모든 자유주의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이와 같은 혼돈 속에서는 자유민주주의자를 자처한다 해도 절대로 액면 그대로 평가해 줘서는 안 된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필자는 소위 지금 자유주의 정당이라고 하기도 어색한 제1 야당, 국민의힘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절대로 보수를 결국 궤멸의 길로 이끄는 흑색 세력인 한동훈·이준석 같은 부류의 인간들을 솎아내지 않고는 절대로 지속가능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허울 좋은 세 부풀리기나 중도통합론 같은 썩어빠진 구호로는 이미 기울어진 우리나라를 되살릴 수 없다. 또한 이미 73세가 된 김문수의 정치적 이념 성향을 바꾸라고 주문하기에도 때가 늦었다.
특히나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부정선거의 명백한 흔적과 증거 앞에서도 침묵으로 일관하는 김문수의 태도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그가 스스로를 아무리 우파라고 강변한들, 핵심 가치를 외면한 시점에서 그에 대한 평가는 이미 엎질러진 물과 같다.
우파 국민들께는 김문수의 정체성을 재차 면밀하게 파악하고 대처해 주실 것을 강력히 요청드린다.
자유와정의를실천하는교수모임(자교모) 공동대표
이 기사에 3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문수행님도 감이 많이 떨어진거같아요. 대선때 그 지지율은 당신의 지지율이라니라 윤어게인하는줄알고 뽑아줬단걸 몰라서 배신자 한동훈이랑 같이가려고 발악하는건가? 한동훈한테 이용 그만 당하시고 정신 차리시던가 계속 몰락의 길로 가시던가요.
옛 로마제국의 줄리어스 씨저가 "부루투스,너마저?"라는 죽기전의 절규는 유명하다,
"너마저?"는 믿었던 양아들한테 배신당한 씨저의 심경을 잘 표현한 말이다, 그런데
이 여기서도 "김문수,너마저?"라는 말이 나왔다,설마가 사람잡는다는 속담이있다,
이재명 일당을 척결하라고 온 국민이 성원한 선거에서 부정선거로? 지고는 재빨리
승복해 버렸다,꼿꼿해서 믿었던 국민에게 한순간에 배신한 김문수가 치매끼가 보인다고
최근 면담했던 관계자가 밝혔다,설마?
배신자 매국노 김문수는 자결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