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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학의 전라도에서] 자신의 노로 물을 저어라
  • 정재학 시인
  • 등록 2026-03-08 07:4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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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한 나날이다. 봄빛이 밀고 들어온 들 언덕 밑에 제비꽃이 피고 있다. 바람 아직 싸늘하지만, 저 작은 것들도 온몸을 흔들면서 살고 있구나.


어느날 지인(知人)이 문자를 보내왔다. 현 대한민국 상황에 절망적인 분노를 나타내는 그분의 글은, 겨울나무숲을 두드리는 둔탁한 저음의 울음이었다. 토목공학을 전공한 이공계 출신으로 솔직한 그분의 심정은 분노와 울음이었다. 


"12개 범죄혐의와 5개 재판을 받고 있는 범죄자가 대통령이 되어, 국민 머리 위에서 국민을 호령하는 상황. 국방과 안보를 무너뜨리고, 한미동맹을 위태롭게 하고,  심지어 표현의 자유를 짓밟으면서 고소고발을 남발하고 있는 상황이 저는 두렵기만 합니다. 


저는 지금 무도함과 불법이 판을 치는, 상식이 무너진 대한민국을 보면서 분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할 바를 모르고 있습니다. 이런 무력한 제 자신을 보면서, 넋을 놓고 살고 있습니다. 저 자신을 향해 이렇게 한탄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과학과 기술은 허구의 산물일 수 없다. 과학은 거짓말을 허용하지 않는다. 공학 역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속이거나 부실공사를 한 즉시 그 세계에서 축출된다.


거짓말은 대부분 인문계 출신 놈들이 저지른다. 특히 법대 출신 놈들이 양심과 논리를 빙자하여 사람을 속인다. 아주 상습적이다. 게다가 법대 출신에다 정치계에 발을 딛고 있는 놈들은 상식으로 살아가는 우리와는 별개의 인종들이다. 


나는 내 후손들에게 인문계로 진학하지 말 것을 당부하는 사람이다. 반드시 이공계로 가서 우리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될 것을 부탁하고 있다.


다리나 철도 하나를 놓더라도, 건물 세울 철근 하나를 세우더라도, 시멘트 배합 하나에도 진실을 다해 주었으면 한다. 지반을 닦으면서도 튼튼한 기초를 닦는데 정성을 다하며, 자신이 만든 것들이 오래도록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주기를 기원하는 사람이었으면 싶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영광을 만든 이는 전부 이공계 출신 인물들의 공(功)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머리 좋은 놈들 법대 나와서 만들어 놓은 세상이 지금과 같은 상식이 무너진 사회다. 우리 사회를 저질사회로 퇴보시켜 놓은 것이다.


나의 지인은 이공계 인생을 수십년 살아온 분이다. 그분은 거짓말이 난무히는 정치계를 보면서, 선배들이 지키고 가꾼 대한민국이 붕괴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탄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 무력하기만 한 자신이 밉다고도 하였다. 그것은 초봄 싸늘한 바람 부는 길가에 흔들리는 아주 작은 제비꽃의 흔들림 같은 것이었다.


슬프고 심통(心痛)이 일어나는 날이면, 나는 손바닥을 보는 습관이 있다. 그리고 새끼손가락 밑 점을 유심히 들여다 본다. 전생의 누군가 다시 태어났다는 환생점이다. 나는 누구였을까.


무엇을 하면서 무엇을 남기고 떠나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가 허락없이 가슴을 열어젖힐 때마다, 나는 손바닥 점을 들여다 보곤 한다.


분노는 크지만 할 수 있는 일은 글쓰는 것뿐이라는 무력감. 전한길처럼 온몸으로 부딪치며 싸우고 싶지만, 나는 전한길일 수 없었다. 


운명, 아니 능력이라는 한계. 그 한계를 수없이 뛰어넘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지금을 살펴볼 때, 전생으로부터 이어온 나의 이승에서의 삶은 초라할 뿐이다. 전생에서 나라를 구하는 일은 없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초라하더라도 부여받은 능력과 하늘의 천명은 소중한 나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오직 펜 하나로 세상을 향해 노(櫓)를 젓고 있었다. 남의 노로 물길을 저어갈 수 없는 일이기에 오직 글을 쓸 뿐이다. 


운명을 저어가는 것은 남의 노가 아니라 나의 노이다.  나의 의지와 주어진 능력과 이상(理想)이라는 천부(天賦)의 노(櫓)일 것이니, 절대 무력해 하지도 비열하지도 말자. 내 능력만큼, 내 몫만큼, 나의 분노만큼 저어가면 되리라.


그러므로 사람들아, 각자의 노로 세상을 저어가자. 거리로 나갈 수 없으면 글을 쓰고, 글을 못쓰겠으면 글을 옮겨주고, 그것도 못할 것 같으면 소리라도 모아보자. 


나는 전한길일 수 없고, 너는 장동혁일 수 없다. 사람도 사랑도, 돈도 명예도 없는 삶일지라도 강물 노 저어 가는 것은 아름다운 나의 인생이다. 친지와 친구들이 떠나간 고독한 삶이 나의 전부일지라도, 나는 웃을 수 있다.


오늘도 손바닥 새끼손가락 밑 점을 본다. 세월이 지나고 농삿일을 하다보니 많이 희미해져 있다. 다시 태어나면, 그때도 환생점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를 생각해 본다. 다시 나는 무엇으로 태어나는 것일까.





◆ 정재학 시인

 

시인, 국가유공자, 칼럼니스트, 박정희 대통령 홍보위원, 전라도에서 36년 교직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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