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방민호 난중일기] 이제야 경험하는 새 나라 이야기
  • 방민호 교수
  • 등록 2026-03-31 19:36:22
기사수정

“원유가 없단다. 에너지를 절약해야 한단다. 자동차는 닷새에 하루는 꼭 세우란다.” 

이 나라가 선진국이라고 자신했다면 확실히 착각이었다. 서울만 해도 아직 누추한 것을. 가난해서가 아니다. ‘멋’이 부족하다. ‘멋’을 제대로 낼 줄 알아야 한다. 돈의 크기로 되는 게 아니다. 그래도 이 나라는 나아가고 있었고 나아지고 있었다.

 

‘신나라’가 되자 모든 게 달라졌다. 우격다짐. 악법 만능 제조기. 엉터리 지지율. 자다가 소가 웃었다. 중동 전쟁에선 누구 편을 드나. 자국민을 3만 명을 학살한 정권을 밀어줘도 되나?

 

치밀한 간교함으로 민심 얻은 ‘왕망’

 

급기야 파동이 났다. 원유가 없단다. 에너지를 절약해야 한단다. 자동차는 닷새에 하루는 꼭 세우란다. 샤워시간을 줄이란다. (기가 막힌다.) 휴대폰은 낮에 충전하란다. (내 휴대폰은 오래돼서 밤에도 충전해야 한다.) 세탁기와 청소기는 주말에 사용하란다. 쓰레기봉투를 배급제 하듯 판다니, 이거야말로 큰일이다. 집안에 쓰레기 쌓일 판이다. 

 

‘신나라’다. 새로운 나라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신나라’다. 한번 ‘신나라’가 어땠는지 알아볼 때가 됐다. (이하에서는 ‘위키백과’ 왕망 편의 이야기를 간추리고 그밖에 약간의 정보를 더한 것이다. 내가 지어낸 일은 없다.) 

 

그의 이름은 왕망(王莽)이다. 이름처럼 끝내는, 왕, 망했다. 

 

그 집안은 원래 전 씨였던 것을, 성을 바꾸어 왕 씨가 되었다. 알고 보면, 그네들 조상도 강태공의 제나라를 뺏어 먹은 것이었다.

 

왕망은 형제들 가운데 유독히 가난하고 외로웠다. 이 어려움을 오로지 간교한 머릿속 계산 하나로 버텨냈다. 황실 외척 사람이었던 까닭에 궁궐에 들어가자 주도면밀하게 ‘예의’를 지켰다. 힘 있는 이들이면 철저히 굽히고 섬겼다. 큰아버지 왕봉이 세력자였다. 그가 아프자 달포를 옷을 벗고 잠자리에 들지 않고 스스로 약을 달여 맛을 볼 정도였다. 

 

드디어 왕봉이 후견인이 되어 출세길에 오르자 더욱 검소한 척했고, 의복과 물건을 손님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스스로를 단속하는 척, 부지런한 척했다. 

 

그래도 타고난 시기심은 버리지 못했다. 순우장(淳于長)이라는 이가 세상의 인정을 받자, 그가 간통했고, 희롱했으며, 횡령했다고 무고하여 죽음으로 내몰았다. 사람들이 왕망을 충직하다고 칭송했다. 

 

그는 철저했다. 사람들은 그의 아내가 입은 옷만 보고 노비인 줄 알았다가 나중에 신분을 알고 매우 놀랐다. 이건 약과에 불과했다. 그의 아들이 노비를 죽였을 때는 심하게 질책해서 급기야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만들었다. 

 

그 결과 그는 대사마(大司馬≒국방부장관)가 되고, 상서(尙書≒황제의 비서실장) 자리에 오른다. 그리고 아홉 살 어린 나이에 즉위한 평제(平帝)의 외척들을 ‘모두’ 죽이다시피 하고, 자기 딸을 시집보내 황제의 장인이 된다. 그는 황제의 장인에게 내려진 나랏돈을 가난한 이들에게 물 쓰듯 나누어 주었다.

 

평제 독살 후 급기야 황제 자리 꿰차다

 

그다음 대목이 중요하다. 그런 후 그는 몰래 사람을 시켜 자신의 공덕을 칭송하게 한다. 태평성대를 가장하게 한다. “지금은 관청에 송사가 없고 고을에 도적이 없으며, 들에 빈민들이 없고 길가에 떨어진 물건이 있어도 가져가지 않는 태평성대”라고 조작한다. 과연 ‘신나라’를 연 건국자답다. (여론조작, 가짜뉴스의 선구자다.)

 

열네 살짜리 평제를 독살한 그는 겨우 두 살 된 아기 황제를 내세워 섭정을 시작한다. 자신을 섭황제라 칭한다. 그런 뒤 이 아기 황제에게 황제 자리를 선양을 받는 형식으로 황제로 즉위한다. 자신이 천자(天子), 곧 천명을 받는 자라는 거짓 글을 쓰게 해서, 한나라를 없애고 드디어 ‘신나라’를 세운다.

 

천하를 손에 쥐게 된 드는 이제 “대인군자 코스프레”를 걷어치운다. 본격적으로 마각을 드러낸다. 전국의 토지를 ‘국유화’하여 조정 소유로 귀속한다. 사사로운 매매를 금지한다. 술·소금·쇠붙이에 세금을 매긴다. 새 제도는 기존 것보다 훨씬 못했다. 물가가 폭등했다. 사회 혼란이 극심해졌다. 

 

북방 서역 나라들과 평화롭게 지내던 것을 깨고 전쟁을 시작한다. 흉노를 자극해서 전쟁으로 국력을 탕진시켰다. 이번에는 고구려 차례. 고구려(高句麗)를 제멋대로 “하구려(下句麗)”라 칭했다. 고구려 사람들이 모두 분노했다. 왕을 후(侯)로 낮추었다. 고구려가 ‘신나라’ 변방을 공격해댔다. 

 

특별히 이렇게 써 있다. “결국 왕망의 이러한 정책들은 국내와 국외 모두 적을 만들고 결국 자신을 파멸로 몰아가는 자충수였다.” 그렇다. 잘하는 것처럼 아무리 꾸며도 결국 자기 파멸의 자충수들이었다. 

 

신선과 귀신을 신봉했다 한다. 잘못된 믿음, 잘못된 사상. 오늘날의 ‘ㅈㅊ사상’ 같은 것이었나? 대규모 건축공사로 몇만 명 군사·죄수들이 죽어 나간다. 국고가 소모된다. 

 

명예욕이 지나치게 강했다. 스스로 감정을 자제하지 못했다. 주술을 믿었고 시기심 과다한 소인배였다. 자신에게 순종하는 자에게는 벼슬자리를 주고 그렇지 않은 자는 죽였다. 자기 가족·친척도 가리지 않았다. 자신이 황제가 되는 게 부당하다고 한 친척들도 다 죽였다.(오늘날에도 그런 경우가 있다는 풍문이 많다.) 자다가 꿈속에서 한 고조 유방의 꾸짖음을 받자 고조의 사당을 부수어 버렸다. 

 

민심 잃은 황제의 말로 


“결국 참다못한 각지의 백성이 들고 일어났다.” 눈썹에 붉은 물감을 들인 적미군(赤眉軍) 등 군벌이 들고 일어났다. 왕망은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너무 걱정돼 머리와 수염이 하얗게 세어 버렸다. 근심 걱정으로 잠을 못 자고 병서를 읽고 술을 마시고 베개도 없이 책상에 엎드려서 잤다. 

 

“아무리 세상의 여론을 호도해도 본질은 속일 수 없는 법이다. 반란군이 물밀듯이 밀려올 때면, 또는 ‘신나라’를 압도하는 막강한 힘 앞에서는 굴복할 수밖에 없다.”

한나라 황족이 유현이 들고 일어나 장안으로 진격하자, 울어서 하늘에 구원을 청하자는 건의를 받아들여 문무대신들과 함께 아침저녁으로 통곡했다. 백성 중에서 잘 우는 3000여 명을 뽑아 통곡하며 기도하게 했다. 잘 우는 자들에게 벼슬을 주어 그 숫자가 5000여 명에 이르렀다. (이게 무슨 자꾸 울고 을르는 친위부대 같은 건가? 예나 지금이나 그런 벼슬자리가 아주 흔하다.) 

 

결국 반란군이 장안 궁궐로 밀려들었다. 이 와중에도 왕망은 하늘이 자기에게 은덕을 베풀었으니, 한나라 병사들이 자기를 어쩌지 못할 것이라 했다. 궁궐 안 높은 누각에 올라 마지막까지 저항했지만 끝내 반란군에 의해 죽음을 당한다. 

 

“상인 출신 두오(杜吳)가 왕망을 살해한 다음 교위 공빈취(公賓就)가 왕망의 목을 자르고, 그 옆에 있던 군사 수천 명이 왕망의 몸뚱이를 난도질하여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이것이 왕망의 허망한 ‘신나라’ 이야기다. 이 ‘신나라’의 ‘신’은 ‘새 신(新)’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새롭지 않은가. 왕망은 자신이 마치 유교의 화신인 것처럼 꾸몄지만 금방 본색이 세상에 알려졌다. 탄로 나 버렸다. 그다음에는 백성들 눈치도 안보았다. 그냥 ‘제멋대로’였다. 세상을 평등하게 만들 이상을 품고 있는 것처럼 꾸몄지만, 결국 자신의 영화(榮華)를 추구했을 뿐이었다. 

 

아무리 세상의 여론을 호도해도 본질은 속일 수 없는 법이다. 반란군이 물밀듯이 밀려올 때면, 또는 ‘신나라’를 압도하는 막강한 힘 앞에서는 굴복할 수밖에 없다. 숱한 시종들이 따르는 것 같아도 결국은 몇 없다. 같이 나쁜 운명에 걸린 가련한 사람들. 

 

진짜 새 나라가 와야 한다. 바로 서야 한다. 멋있는 세상 이루어야 한다. 사람이 사람답게 서로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는 세상. 그 첫걸음이 부정선거 몰아내 전체주의 독재가 뿌리내릴 기반을 허무는 것이다. 





◆ 방민호 교수

 

문학박사, 서울대 국문과 교수. 계간문학잡지 ‘맥’ 편집주간(2022년~)이자 시인, 소설가, 문학평론가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저서로 ‘연인 심청’(2015), ‘통증의 언어’(2019), ‘한국비평에 다시 묻는다’(2021), 서울문학기행(2024) 등이 있다.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0
좋아요
0
감동이에요
0
정기구독배너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