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월 부산에서 만난 트럼프·시진핑 [연합뉴스 자료사진]
중동 정세 불안으로 한 차례 연기됐던 미중 정상회담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오는 14∼15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중을 계기로 성사될 전망이다.
미국 대통령의 중국 방문은 트럼프 대통령 집권 1기 때인 2017년 11월 이후 9년 만이고, 미중 정상회담은 작년 10월 30일 부산 회담 이후 약 반년만이다.
무역 갈등이 주된 전선이었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미국·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글로벌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만큼 두 정상의 회담에서는 중동·대만 등 지정학적 이슈가 우선순위를 차지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회담장에 나온 미중 정상 [UPI 연합뉴스 자료사진]
◇ 작년 부산서 관세전쟁 '임시 휴전'…이란 전쟁에 미뤄진 트럼프 방중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100분가량의 부산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2기 출범 이후 반년 넘게 이어졌던 무역 갈등을 잠정 봉합하고, 보복 관세·희토류·펜타닐 등 주요 의제에 관해 1년 시한의 '휴전' 합의를 했다.
그런데 양국의 후속 논의는 부산 회담 이후 뜸해졌다.
작년 4월 관세 전쟁 본격화 이후 스위스 제네바(5월), 영국 런던(6월), 스웨덴 스톡홀름(7월), 스페인 마드리드(9월)로 장소를 바꿔가며 거의 매달 열린 고위급 무역 회담은 올해 들어선 3월 프랑스 파리 회담 외엔 개최되지 않았다.
올해 2월 말 미국·이란 전쟁이 발발한 뒤로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은 중동으로 옮겨갔고, 당초 3월 말∼4월 초로 거론됐던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은 이달 14∼15일로 한 달 넘게 연기됐다.
지난해만 해도 중국을 겨냥한 무역 제재와 거친 언사로 거침없이 공격하던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뒷전'으로 미뤄둔 모양새가 됐다는 관측도 나왔다.
휴전을 맞은 이란 전쟁이 다시 격화하면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과 미중 정상회담이 또 미뤄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으나 미국과 이란의 협상이 진전을 보이면서 미중 회담 성사는 가시권에 들어왔다.
미국은 최근 중국 업체에 대한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나 이란과 원유 거래가 의심되는 중국 업체 제재 등으로 정상회담 전 기싸움에 나섰고, 중국은 지난달 말 희토류 통제 수위를 끌어올리는 규정을 발표하며 신경전에 응수했다.
지난달 11일(현지시간) 미국과 이란의 첫 종전 협상을 앞두고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 마련된 프레스 센터에 기자들이 모여 있다. [연합뉴스]
◇ '이란 중재' 요구하는 美…'대만 불개입' 내세우는 中
우여곡절 끝에 다시 마주 앉은 두 정상의 최대 현안은 '이란 문제'다.
트럼프 대통령은 개전 초반부터 중국과 이번 전쟁을 연관 지으려는 제스처를 보여왔고, 이후에도 중국에 대한 호르무즈 해협의 중요성을 부각하거나 중국의 이란 지원 정황을 언급하며 시 주석을 압박했다. 이달 들어선 이란의 석유 제품 수입 창구로 지목된 중국 기업들을 제재하기도 했다.
미국이 중국을 끌어들이는 것은 이란 최고 지도부가 확고하게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이란 간 합의의 안정성을 담보해줄 '보증인'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제기된다.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은 중국의 대(對)이란 영향력 행사를 부쩍 명확히 요구하고 있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지난 4일(현지시간)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사태 해결을 위해 중국의 역할을 촉구했고,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은 이튿날 기자회견에서 중국이 이란에 '당신들은 악당이며 글로벌 경제를 인질로 잡지 말라'고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란 역시 아바스 아라그치 외무장관을 6일 베이징에 파견하며 중국을 끌어들이는 듯한 모양새의 대미 협상 구도 구축에 힘을 실었다.
중국으로서도 이란의 불안이 지속되거나 전후 미국에 더 유리한 중동 질서가 구축될 경우 발생할 전략적 이익 훼손을 막아야 할 필요가 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6일 아라그치 장관과 회담에서 "지역 국가에 의한 공동 참여 구축과 공동 이익 수호, 공동 발전 실현의 지역 평화·안보 프레임을 지지한다"며 향후 중동 질서에서 영향력 확대를 노리려는 의도를 드러내기도 했다.
중화권 전문가 중에는 시 주석이 미국산 원유·농산품 수입 확대와 희토류 공급 보장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체면'을 세워주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현재 정권을 퇴출하지 않고 전쟁을 끝내는 교환을 해법으로 제시하는 의견도 나온다.
이 때문에 이번 회담에서 '이란 문제'는 '대만 문제'와 맞물린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왕 부장은 정상회담 전초전 격이었던 지난달 30일 루비오 장관과 통화에서 "대만 문제는 중국의 핵심 이익이자 중미 관계의 최대 리스크다. 미국은 약속을 지키고 올바른 결정을 함으로써 중미 협력에 새로운 공간을 열고 세계 평화를 위해 마땅히 해야 할 노력을 해야 한다"며 대만 문제를 최우선 의제로 올릴 것임을 예고했다.
미중의 주요 전선 중 하나인 대만 문제는 작년 10월 부산 정상회담에서 거론되지 않았다.
대만 통일을 공언해온 중국은 미국의 대만해협 문제 개입에 민감하게 반응해왔지만 관세 전쟁 휴전이 최대 과제였던 지난 회담에선 대만 문제가 테이블 바깥으로 밀려났다.
외교가에선 시 주석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란 중재를 지렛대로 협상력을 높이려고 시도하는 만큼, 대만 무기 판매 중단 등 미국을 향한 요구 목소리가 더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루비오 장관은 5일 회견에서 "우리는 대만이나 인도·태평양의 어느 지역과 관련해서도 안정을 해치는 사건이 일어나기를 원치 않고 이는 미중 모두에 상호 이익이라고 본다"며 선을 그었다.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 美 AI·반도체 vs 中 희토류…"무역 갈등 다시 임시 봉합" 관측도
첨단 기술 통제 등 미중 글로벌 경쟁 분야 역시 이번 미중 정상회담 관전 포인트다.
특히 미국은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등 첨단 분야에서의 협력과 중국에 대한 경쟁 우위를 확보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4일 백악관 행사에서 "우리가 AI에서 중국을 앞서고 있다"며 "(미국과 중국은) 매우 우호적인 경쟁자다. 그렇지만 사실 (이번 방중은) 아주 중요한 여행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 기업들이 미국의 AI 기술을 탈취한 정황을 확보했다고 밝히며 반도체 수출 통제 등을 포함한 추가 쟁점화 가능성을 열어뒀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재무부 당국자들을 인용, 이번 정상회담에서 세계 양강 지도자들이 AI를 공식 의제로 처음 논의하는 '역사적 장면'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작년 관세 전쟁을 통해 희토류가 위력적인 대미 공격 카드임을 확인한 중국은 이를 무기로 미국의 양보를 최대한 끌어내려 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이 자국산 첨단 기술 확보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고, 미국 빅테크 메타의 중국계 AI 스타트업 '마누스' 인수 불허 사례에서 볼 수 있듯 기술 자신감이 한층 커진 점도 변수로 지목된다.
다만 다음 주 정상회담을 통해 현재 '휴전' 상태인 양국 간 관세 전쟁 구도에 근본적인 변화가 나타날지는 미지수라는 시각도 있다.
연이은 고위급 회담으로 회담 의제를 장기간 준비했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이란 전쟁 때문에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점이 근거로 제시된다.
100%가 넘는 초고율 관세로 미중 무역이 사실상 중단됐던 작년과 휴전으로 중대한 걸림돌이 잠정 해소된 현재 상황에는 시급성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분석도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양국이 올해 들어 주고받은 무역 조사 등 제재 조치를 보류하거나 관세 전쟁 휴전 연장 공감대를 확인하는 수준에서 베이징 정상회담을 종결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연내 방미 초청에 시진핑 주석이 입장을 표명하는 등 형태로 후일을 기약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