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국공내전에서 활약한 중공간첩 3인방
국공내전에서 중국 공산당이 승리한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그중 하나가 중공이 국민당에 심어놓은 간첩들의 활약이었다. 그 중 대표적 3인방에 대해서 알아보자.
① 기조정
기조정은 1903년 산성 태원에서 태어났다. 1924년 미국 유학을 간 기조정은 1926년 미국 공산당에 입당했고, 1927년 중국 공산당에 입당했다. 그는 1928년 6차 코민테른에서 주은래의 통역을 맡았다. 주은래는 기조정에게 미국에서 중국 공산당을 돕는 여론 공작을 하라고 지시했다. 기조정은 미국으로 돌아와 미국 공산당이 발간하는 신문과 잡지에 국민당을 비판하고 중공을 옹호하는 글을 많이 썼다.
1939년 중국 최대무역회사인 환구무역공사 사장 진광보의 비서가 되었다. 진광보는 중화민국 육군 중장 계급을 지닌 중국 금융계의 거물이었다. 기조정을 진광보의 비서로 추천한 인물은 미국 재무부 차관보 해리 화이트였다. 해리 화이트는 소련 첩보기관이 미국에 심어놓은 간첩이었다. 1941년 기조정은 귀국하여 국민당 정부의 재정, 금융 분야 특히 화폐와 환율에 대한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업무를 수행했다.
1945년 9월 26일 국민당 정부의 재정부는 포고문을 발표했다. 법폐와 일본 점령지에서 사용하던 화폐의 교환 비율을 1대 200으로 하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물가로 볼 때 교환 비율을 1대 50으로 하는 것이 마땅했다. 이 조치로 점령지 중국인들의 재산은 4분의 1로 줄어들게 되었다. 일본 점령지에 살던 중국인들이 장개석에게 등을 돌리는 것은 당연했다. 이러한 나쁜정책의 배후가 기조정이었다.
기조정은 중공 집권후 승승장구 하다가 1963년 세상을 떠났다. 그는 잘못된 경제정책을 실행시켜 국민당 정부와 국민들 사이를 이간질 시킨 중공의 간첩이었다.
② 심안나
장개석의 속기사 였던 심안나는 중국 공산당이 심어놓은 간첩이었다. 왕학문은 심안나에게 속기사가 되어 국민당 기관에 들어가 중국 공산당을 위해 정보를 수집하라고 했고, 심안나는 그대로 행동했다. 심안나는 1935년 1월 국민당 절강성 비서처 의정과 전담 속기원이 되었다. 그는 남편 화명지에게 자신이 빼돌린 기밀 서류를 1주일에 한번씩 주었다.
심안나가 중공에 제공한 정보 가운데 중요한 몇가지를 꼽으면 다음과 같다.
1) 1935년 절강성 성 정부의 홍군 유격대 토벌 정보 : 심안나는 복건성, 절강성, 강서성 접경지에서 활동 중인 유격대 소탕 작전 문서를 모아 중국 공산당에 전달했다.
2) 1946년 장개석 - 모택동 담판에서 국민당 협상 전략 입수 : 1946년 1월 국민당과 공산당 사이에서 정치협상회의가 시작되었는데 국민당의 협상 작전을 짜는 비밀회의에 속기사로 참석한 심안나는 그 내용을 매일 밤 공산당에 넘겼다.
3) 1946-49 국공 내전에서 국민당 군사전략 입수 : 1947년 3월 국민당 정부 총참모장 진성은 비밀회의에서 전쟁 상황에 대한 분석 및 향후 군사전략 등을 장개석에게 보고했다. 9월 국방부장 백상희는 비밀회의에서 각 전장의 상황을 소개하고 다음 단계의 전략 계획을 발표했다. 심안나는 이를 공산당에 전달했다.
③ 곽여괴
곽여괴는 국민당 장교 양성 기관인 황포군관학교 5기로 입학했다. 그러나 1929년 황포군관학교 동기인 원경명의 소개로 중국 공산당에 입당했다. 곽여괴는 1945년 5월 부터 1949년 중국 공산당 승리까지 100여건이 넘는 주요 군사정보를 넘겼다.
1947년 5월 국민당 기계과 74사단이 산동성에서 전멸했다. 이는 곽여괴가 제공해준 정보 덕에 산동성을 지키던 공산당 화동야전군이 국민당 부대의 작전을 훤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은 1948년 9월부터 1949년 1월까지 동북(만주), 화북 및 화동지역에서 수십만 대군을 이끌고 공세를 펼쳐 국민당군 150만명을 궤멸시켰다. 이 전역에서 국민당 군의 군사작전을 수립한 사람이 곽여괴였다. 곽여괴는 세부적인 부대 이동, 공격 목표, 공격 개시일 등을 공산당 동북야전군에게 전달해 공산당군의 승리에 기여했다.
1948년 11월 6일부터 시작된 화해전역에서 곽역되는 국민당군이 패전에 이르게 하는 작전을 제안했고, 같은 공산당 간첩이었떤 장극협을 서주 방어 사령관에 임명해 중공군이 서주로 쉽게 들어올 수 있게 했다. 화홰전투에서 패하면서 최고 지휘관 두율명은 포로가 되었다가 1959년 석방되었다. 세월이 흘러 곽여괴는 1980년 두율명을 찾았다.
"두 장군, 예전에 제가 공산당과 관련이 있었다고 말씀하셨죠. 추측이었습니까? 아니면 근거가 있어 하셨던 말씀인가요?"
"산동에서 온사람이 말해줬다."
"그 사람이 누구입니까?"
"말할 수 없다."
2. 국민당 내에 간첩이 우글거렸던 이유
간첩을 침투해 주요 엘리트들을 포섭 매수하여 반국가세력을 형성해 국가를 내부에서 무너뜨리는 간첩공작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방첩기능이 약해야 했다. 국민당 내부에 간첩이 우글거렸던 이유는 방첩기능이 약해서이다. 국민당군 내부의 방첩기능 담당했던 것이 군사위원회 조사통계국(약칭 군통)인데 군통을 이끌었던 대립이 1946년 사망하면서 군통의 기능이 대폭 축소되었다.
국공내전에서 패하면서 장개석은 "대립이 살아 있었으면 대륙을 잃지 않았을 텐데" 라고 한탄했고 주은래는 "대립의 죽음으로 중국 공산당 혁명은 10년 앞당길 수 있었다." 라고 말했다. 이는 그만큼 군 내부의 방첩기능 강화가 중요함을 말해준다.
3. 방첩기능을 해체한 대한민국
여수 주둔 14연대 내부의 남로당 간첩들에 의해서 군사반란이 일어나자 이승만 대통령은 군내부의 남로당 프락치 색출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여순 반란이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었던 1948년 11월. 이승만 대통령은 미군사고문단장 로버트를 경무대로 호출했다. 이승만은 로버트에게 서류를 던지며 호통쳤다.
"국방경비대 시절에 아무 검증 없이 선발하면서 이렇게 됐으니 당신들이 알아서 처리하시오"
서류에는 한국군 내에 침투해 있는 남로당 조직원 리스트가 들어 있었다. 대한민국을 지키는 방패에 붉은물을 숨긴 반역자들이 들어와 있던 것이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군내 공산주의자들을 색출하는 숙군 사업이 시작됐다.
이무렵 국회에서는 1948년 12월 국가보안법을 공포했다. 국가보안법에 따르면 반란의 단계에 이르지 않더라도 반란을 꾀하는 단체의 구성이나 이적 행위만으로도 처벌이 가능했다. 국가보안법이 목표로 하는 것은 북한의 침투공작이었다. 이러한 국가보안법은 숙군 사업의 법률적 근거가 됐다.
숙군사업의 총 책임자는 국방부 정보국장 백선엽이었다. 그리고 실무자는 서울 제 1연대 정보주임 김창룡이었다. 김창룡은 일본 관동군에서 첩보 부대원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인물이었다. 백선엽은 그런 김창룡의 수사 능력을 인정해 숙군사업에 포함시켰다.
숙군사업은 1948년 가을에 시작된 이후 여러 차례 진행됐다. 숙군사업이 시작되자 수사대상자 중 상당수가 월북을 하거나 빨치산 부대에 합류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숙군사업은 진행되서, 여순 반란 직후 부터 다음해인 49년 여름가지 군의 5%에 해당하는 4,700명이 처벌 받았다. 탈영한 군인의 수도 처벌을 받은 숫만큼 됐다. 전 병력의 일할에 해당하는 1만명이 사라진 것이다. 이들 중에는 억울한 사람도 분명 있다. 그러나 북한과 대치하고 있고 남한 내부에서는 공산주의자와 빨치산이 준동하고 있는 내우외환의 안보상황에서 숙군사업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었다.
2차 숙군사업(49년 5월 ~ 49년 9월)이 진행되던 무렵에는 군부대들이 집단 월북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1949년 5월 14일 8연대 1대대장 표무원과 2대대장 강태무는 대대병력을 이끌고 집단 월북했다. 이들은 1946년 2월 북한이 설립한 평양학원 출신으로 거기서 교육을 받고 남파된 군내 프락치였다. 1년후 6.25 남침전쟁이 터지자 표무원과 강태무는 인민군을 이끌고 남한으로 쳐내려왔다.
5월 11일에는 바다에서 월북사건이 일어났다. 소위 이송학을 중심으로한 좌익 군인들이 제 1특무정대에서 반란을 일으켜 중령 황운서와 소해정 508호 정장 소령 이기종을 사살한 뒤 소해정 508호를 타고 월북한 것이다.
숙군사업 없이 6.25 남침전쟁을 맞이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군내에 침투한 남로당 간첩에 의해 부대의 세부이동, 공격목표, 공격개시일, 전략전술이 인민군에게 들어갔을 것이다. 싸우기도 전에 항복하거나 아군 내부를 혼란에 빠트렸을 것디다. 국가는 외침에 의해서 망하기도 하지만 적국이 보낸 간첩과 그들에게 포섭된 반역자들에 의해 내부에서 무너지기도 한다. 숙군사업은 국가의 마지막 보루인 군에서 반역자를 제거하는 사업이었다.
숙군사업으로 군에서 붉은물을 제거한 김창룡은 그공으로 방첩사령부의 전신인 육군 방첩대(CIC) 대장으로 임명되었다.
방첩사령부는 군내의 간첩들을 잡는다. 김창룡은 군내의 공산주의자들을 색출해 내부의 적들을 청소했다. 2026년 1월 8일 방첩사를 해체하는 보도가 나왔다. 적에게 매수된 군내의 반역자를 잡는 조직이 사라졌다. 우리의 적들과 그들에게 매수된 반역자들이 박수 칠일이 또하나 생겼다. 방첩기능이 약화된 중국 국민당 군은 내부에서 먼저 무너졌다. 이것이 우리의 운명이 되지는 않을까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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