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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공화정으로 보는 대한민국: 松山] ③국민주권과 다수결은 같은 것인가?
  • 松山 작가
  • 등록 2026-07-23 06: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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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크라테스가 독약을 마시는 순간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2항은 이렇게 규정한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문장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 조항을 보며 민주주의는 국민이 다수결로 나라를 운영하는 제도라고 이해한다. 

 

선거에서 표를 많이 얻은 사람이 권력을 갖고, 국회에서는 찬성표가 반대표보다 많으면 법안이 통과된다. 그래서 국민주권과 다수결을 같은 의미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두 개념은 분명히 다르다. 국민주권은 국가의 최고 권력이 국민 전체에게 있다는 정치 원리이다. 반면 다수결은 여러 의견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의사결정 방법이다. 다시 말해 국민주권은 ‘누가 권력의 주인인가’를 말하는 것이고, 다수결은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를 말하는 것이다.

 

국민주권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다수결만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다수결을 한다고 해서 언제나 국민주권이 실현되는 것도 아니다. 이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첫걸음이다.

 

이 원리를 가장 먼저 대규모로 실험한 나라가 기원전 5세기의 아테네였다. 아테네 시민들은 중요한 국가 문제를 대표자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결정하였다. 이들이 모인 회의를 에클레시아(Ekklesia), 즉 민회라고 불렀다. 전쟁을 할 것인지, 평화를 맺을 것인지, 새로운 법을 만들 것인지, 장군을 선출할 것인지 모두 민회에서 결정하였다.

 

민회는 1년에 약 40차례 열렸다. 장소는 아크로폴리스 서쪽의 프닉스 언덕(Pnyx)이었다. 참석 자격은 18세 이상의 아테네 남성 시민에게만 주어졌다. 

 

여성·노예·외국인은 참여할 수 없었다. 당시 아테네의 전체 인구는 약 25만~30만 명으로 추정되지만 시민권을 가진 성인 남성은 약 3만~4만 명 정도였다. 중요한 의결에는 약 6000명의 참석이 요구되었다.

 

회의에서는 누구나 연단에 올라 발언할 수 있었다. 이를 이세고리아(isegoria), 즉 ‘발언의 평등’이라고 불렀다. 토론이 끝나면 손을 들어 찬성과 반대를 표시하는 거수투표가 일반적으로 이루어졌다. 특별히 중요한 사안은 돌이나 토기 조각을 이용한 비밀투표를 실시하기도 했다.

 

이처럼 아테네 민주주의는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정치였다. 현대처럼 국회의원을 선출하여 대신 결정하게 하는 간접민주주의와는 크게 달랐다. 국민이 곧 입법자였고, 국민이 곧 정책 결정자였다. 그래서 민주주의라는 말도 ‘데모스(dēmos, 시민)’와 ‘크라토스(kratos, 지배)’가 합쳐진 ‘민중의 지배’라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아테네 사람들도 다수결이 언제나 옳다고 믿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다수결의 위험성을 누구보다 먼저 경험하였다.

 

기원전 427년 미틸레네(Mytilene)가 아테네에 반란을 일으켰다. 분노한 민회는 주민들을 모두 죽이고 여성과 아이들은 노예로 만들자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다음 날 시민들은 다시 회의를 열어 전날의 결정을 재검토하였다. 격론 끝에 처벌 대상을 반란 지도자들로만 제한하였다. 하루 만에 다수의 판단이 완전히 뒤집힌 것이다. 감정에 따른 다수결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기원전 406년 아르고누사이 해전에서는 아테네 함대가 스파르타를 상대로 승리하였다. 그러나 폭풍 때문에 전사자들의 시신을 수습하지 못했다. 민회는 여론에 휩쓸려 승리한 장군 여섯 명을 한꺼번에 재판하고 사형을 선고하였다. 

 

나중에 시민들은 자신들의 판단이 지나쳤음을 인정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내린 결정이 반드시 정의로운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기원전 399년 소크라테스 재판이다. 소크라테스는 청년들을 타락시키고 도시의 신들을 믿지 않는다는 혐의로 고발되었다. 배심원 약 500명이 투표한 결과 유죄가 결정되었고, 결국 그는 독배를 마시고 생을 마쳤다. 오늘날 많은 학자는 이 재판을 민주주의가 남긴 가장 큰 오판 가운데 하나로 평가한다.

 

이러한 경험은 중요한 사실을 말해 준다. 민주주의는 다수결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다수결은 의견을 정리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일 뿐, 그 자체가 진실이나 정의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충분한 토론과 정확한 정보, 법의 지배, 그리고 소수 의견에 대한 존중이 함께할 때 비로소 다수결은 건강하게 작동할 수 있다.

 

오늘날 대한민국도 같은 원리를 따른다. 국회는 다수결로 법률을 제정하지만, 헌법은 다수결로도 침해할 수 없는 기본권을 보장한다. 표현의 자유, 신체의 자유, 적법절차와 같은 권리는 단순히 표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빼앗을 수 없다. 국민주권은 다수의 힘을 인정하면서도, 그 힘이 헌법의 울타리를 넘어가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주권은 국민이 권력의 주인이라는 선언이다. 다수결은 그 권력을 행사하는 여러 방법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민주주의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힘은 단순히 많은 표가 아니라, 다수가 스스로 절제하고 법을 존중하는 데서 나온다. 아테네 민주주의가 남긴 가장 큰 교훈도 바로 여기에 있다.





◆ 松山(송산) 정광제 

 

시인이자 역사·철학 연구자. 전 이승만학당 이사. 현 한국근현대사연구회 연구고문이자 철학 포럼 리케이온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네 권을 출간했고, ‘후크고지의 영웅들’을 공동 번역했으며 인문서 ‘신화가 된 조선’ ‘다다미 위의 인문학’ ‘자유주의자의 그람시 읽기’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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