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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김인호] 섭리경영과 기업파워이론으로 대한민국 중화학 산업화의 기틀을 닦다
  • 김인호 한양대 명예교수
  • 등록 2026-07-19 17:2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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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 산업화와 함께한 연구 스토리(1969-2026)
사실을 진실하게 공유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등장인물의 실명을 공개하였음을 양지해주시길 바랍니다. 필자 주

대한민국을 세계적인 경제대국으로 이끈 한국 경제 도약의 상징, 포항제철(왼쪽)과 삼성전자. [사진=임요희 기자, 연합뉴스]

1969년 4월 초 공군 중위 제대 3개월 전에 청와대의 요청으로 스카우트되어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 입소하자마자 포항종합제철소 건설계획의 총책임자인 김재관 박사팀에 합류하여 사업타당성 연구(feasibility study)의 실무책임을 맡았다. 

 

당시 포항제철 건설에 대한 해외차관단 KISA의 검토 결과 왜소한 내수 규모로 차관 제공이 어렵다는 결정에 따라, KIST로 하여금 다시 연구하라는 청와대의 급박한 지시로 필자가 예기치 않게 스카우트되었던 것이다.

 

포항제철의 사업타당성, 자연법칙으로 입증


필자는 ‘내수 부족분을 과연 수출할 수 있을까?’의 관점에서, 자연질서인 중력법칙(gravity law)을 논거로 철강수출계량모델(Steel Export Quantitative Model)을 도출하여 사업타당성을 입증할 수 있었고 1970년부터 년 생산규모 103만t의 포항제철공장을 건설하고 1973년부터 POSCO가 철강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필자는 포항공장건설이 한창이던 1971년에 광양제철소 타당성 연구의 총책임자로 300만 톤 규모로 시작하여 최종 1200만t 규모 건설계획을 혼합형 선형계획법(mixed integer linear programming)을 사용하여 그 타당성을 입증하였다.

 

그에 따라 정부는 1972년 전 국무총리 태완선 사장을 중심으로 제2제철 국영기업을 발족시켰다. 그러나 1973년 1차 오일쇼크로 순연되다가 후에 POSCO에 흡수되었다. 

 

박태준 회장이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 의지를 살려 철강산업을 드라이브하자 1980년대 초반을 전후하여 철 다소비 산업 중심의 중화학산업들이 대부분 본궤도에 진입할 수 있게 되었다.

중화학산업이 본궤도에 진입하여 순항하는 가운데 가장 시급한 경제사회 이슈 중 하나는 전화에 대한 엄청난 적체수요(backlog demand)를 빨리 해소시키는 일이었다.

 

마침 KIST가 독자적으로 사설(私設) 교환시스템을 개발한 경험을 바탕으로 조기에 그 적체수요를 해소시키려고 벨기에로부터 ITT 선진 교환시스템을 도입하기로 결정하고 그 도입기술을 개량·발전시킬 주체로 1977년 전자통신연구소(ETRI)를 출범시켰다. 

 

이때 필자는 ETRI의 창설 멤버로 기획실장과 통신경제실장을 맡아 도입기술을 소화·개량하는 일과 고유한 전자통신 장기발전전략을 수립하는 일을 동시에 수행하였다. 


한국통신 발전의 청사진이 마련되고 경제기획원(EPB) 기업예산과(강봉균 과장, 후에 경제부총리 역임)의 이해와 협조로 ETRI가 원하는 수준의 연구예산이 확보되면서 ETRI는 급속으로 본궤도에 진입할 수 있었다.


이어령의 문화 중심론에 항의하다


1980년 출범한 전두환 정부는 전화의 적체수요 해소와 더불어 디지털(digitalization) 혁명을 맞고 있는 통신 인프라(infrastructure)를 현대화하기 위해 1984년에 체신부의 정책기능과 사업운영 기능을 분리하여, 사업운영 부문은 공기업으로 한국통신공사(KTA, 현 KT의 전신)를 발족시켰고, 체신부 이해욱 기획실장이 초대 사장이 되었다.

 

그리고 KTA는 전기(electrical) 통신시스템을 전자(electronic)통신시스템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KTA 발전전략(안)에 대한 연구프로젝트를, 1987년 당시 한양대 산업경영연구소를 맡고 있던 필자에게 의뢰하였다. 


KTA 발전전략(안) 연구프로젝트 연구팀은 총 3부문으로 △기업문화는 이화대 이어령 교수팀 △경영조직은 서울대 곽수일 교수팀 △경영전략은 한양대 교수인 필자가 맡게 되었다.

 

어떤 특별한 의도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연구프로젝트의 순서는 경영전략이 확정된 뒤 그것을 실행하기 위한 경영조직과 기업문화를 다루는 게 통상의 순서인데 당시 KTA 발전전략(안) 연구프로젝트의 경우는 기업문화-경영조직-경영전략 순으로 뒤바뀐 것이 좀 이상했다. 


일정 기간이 지나 연구결과를 발표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는데 당시의 그 발표 현장 분위기를 잠시 엿보고 넘어가고자 한다. 

 

KTA 간부들과 통신산업계와 관련 학계의 저명 교수들이 참석한 가운데 이해욱 사장 주제로 발표회가 열렸는데 기업문화를 맡은 이어령 교수가 “작은 소리도 크게 듣겠습니다”라는 그간의 연구를 장황하게 설명하다 보니 이해욱 사장도 난처해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경영조직팀에서는 곽수일 교수는 오지도 않고 팀원들만 왔으니 부득불 필자가 나서야 할 상황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필자가 이어령 교수에게 그만 말씀하시길 바라며 질문하는 형식으로 “이 교수님, ‘작은 소리도 크게 듣겠습니다’를 강조하시는데 지금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왜 KTA에서 이런 자리를 마련했다고 보시는지요” 하고 물었다. 

 

나의 질문에 발표장이 찬물을 확 퍼 부운 듯 어색한 침묵이 잠시 이어졌다. 나는 말을 이었다. 


“이제 제가 한마디 드리겠습니다. 지금 세계통신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옮아가는 거대한 기술혁명을 맞고 있으며 또한 미소양극 체제의 붕괴가 예견되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급 변혁의 파고(波高)는 세계통신과 한국통신시스템에 엄청난 충격을 줄 것이며 이들이 KTA 에게는 기회(機會) 아니면 위협(威脅)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환경변화에 대한 적응의 견지에서 KTA가 성공적인 선발자가 되면 좋겠지만 설령 못되더라도 최소한 선진대열에 편승(便乘)해야 할 묘책을 찾아보고자 하는 자리가 오늘의 이 자리라고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내 말에 참석자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는 모양새를 취해 주었다.


KTA의 경영전략을 제시하다


이어서 필자는 설명한 전략적 의미를 지닌 KTA의 경영전략(안)으로 ATTACK(Advanced Total Telecom Advantage Creating KTA) 전략을 제시하였다.

 

이는 ‘앞선 통신혁신기술을 통해 첨단의 유·무선 전자통신시스템으로 경쟁우위를 창출하는 KTA가 되자!’는 전략 슬로건이었다. KTA는 전사적으로 전략선포식을 거행하고 이를 드라이브하기 시작하였다.

이해욱 사장이 KTA가 글로벌 차원의 메카 플레이어(Mega Player)로 발전하려면 세계적인 컨설팅사의 연구 결과가 꼭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1988년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마이클 포터(Michael Porter) 교수팀의 모니터(Monitor) 컨설팅사에 연구프로젝트를 맡겼다고 전하며 연구 결과 발표 때 꼭 참석하여 의견을 개진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몇 개월 후 그들이 발표한 최종 연구결과에는 전자통신기술의 발전추세나 미소양극 체제의 붕괴가 세계통신에 어떤 충격을 줄 것이냐, 등에 대한 고려가 전혀 담겨 있지 않음을 필자가 신랄하게 지적하자 모니터사의 런던(London) 지사장이 아무 대답도 못 하고 얼굴이 벌개가지고 슬그머니 사라지는 해프닝이 있었다.

그런데 마이클 포터 교수팀의 부실한 연구결과는 필자로 하여금 수요 측면인 니즈진화(needs evolution)에 대하여 공급 측면인 니즈맞춤혁신(needs-focused innovation)으로 얼마나 잘 적응(good adaptation) 하느냐가 사업성과를 좌우된다는 명제를 기반으로 하는 다이내믹 매니지먼트(Dynamic Management) 이론을 구축하고자 하는 강한 마음을 일으켜 주었다.

 

다이내믹 매니지먼트 이론이 빛을 보다


그런데 필자는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때마침 공교롭게도 삼성 그룹 전략기획본부에서 아무 부담 없이 연구하라며 적지 않은 재정지원을 해주어 필자는 산업연구에 몰입할 수 있었고, 그 연구 결과를 1990년대 초반에 ‘세계 산업의 주도권 이동원리’와 ‘기업파워(firm power)는 어디에서 오는가?’라는 두 권의 저서를 한국경제신문사에서 발간하였다.

 

당시 ‘세계 산업주도권의 이동원리’는 삼성맨 필독서 10권 중 유일한 국내도서로 선정되었고, ‘기업파워는 어디에서 오는가?’는 1995년 출판문화대상(전경련 주관)을 받았다.

섭리경영(攝理經營, 우주의 운행은 창조주의 의지대로만 작동한다는 의미)의 관점에서 볼 때, 물리학에서의 파워는 ‘파워=(부피x밀도)x(가속도x속도)’이다. 즉 ’파워=힘x속도’이고. ’힘=질량x가속도(F=ma, Newton의 운동 제2법칙)’이며, ’질량=부피x밀도’이다.


필자는 ‘기업파워’라는 개념을 ‘기업이 이익을 추구하는 힘의 능률’로 정의하고, 물리학에서 파워를 구성하는 위의 4가지 요소인 (부피x밀도)x(가속도x속도)를 원용, 유추하여 ‘기업파워=기업규모x(솔루션적합성, 공정적합성)x혁신x성장벡터]로 접근하는 기업파워이론(firm power theory)을 정립하였다.


필자는 1995년 내친김에 기업파워 이론의 이론적 강건성과 실용성을 국제적으로 확인해보려고 기술과 경제성장과의 관계를 핵심 이슈로 연구하는 진화경제학(evolutionary economics)의 선두주자로 불리던 영국 석세스(Sussex) 대학교의 크리스토퍼 프리맨(Christopher Freeman) 교수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나 많은 의견을 나누며 토론하는 기회를 가졌다.

 

당시 노벨경제학상 선정 때마다 후보자로 거론되곤 했지만 그의 영역이 주류 경제학 분야가 아니다 보니 그 가능성은 희박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기업파워이론에 대하여 프리덤 교수는 이렇게 명쾌한 이론은 생전 처음 본다며 자기는 기술경제학자로서 국가경제 레벨과 산업 레벨을 주로 다루다 보니 혁신의 현장인 기업과 사업 레벨을 커버하지 못하는 한계를 갖고 있는데 반하여 당신은 기업 레벨과 산업 레벨을 동시에 다루는 통합성(synthesis), 기술혁신과 고객니즈 진화를 하나의 틀로 다루는 전일주의(holism)과 역동성(dynamism) 그리고 기술과 고객니즈 와의 적합성(fit)을 성과의 결정인자(determinant)로 인식하는 이론적 틀과 자연법칙을 논거로 취한 이론의 강건함에 있어서 가장 완벽한 기업파워이론이라며 극찬하였다.

토론을 마치며, 그가 필자에게 “런던에서 그곳 학교까지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했느냐(택시로 약 2시간 소요되며 대중교통수단은 당시 철도가 있었지만 운행 회수가 너무 적어 대단히 불편했음)”고 물었다.

 

이에 삼성(당시 필자는 삼성 계열사의 비상임감사 였음) 런던 지점에서 교통편을 마련해 주었다고 하자 매우 놀라며 “당신이 누구인데 삼성이…” 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필자에 대한 그의 정중한 태도에서 나는 그 당시 삼성이 영국에서 어떻게 인지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당시 국내에서는 우물 안 개구리, 함량 미달의 정객들과 좌파 반국가 무리들이 시도 때도 없이 삼성 재벌해체를 부르짖고 있었다.)


1997년 IMF 외환사태 이후 급변한 국내 산업구조


1973년 POSCO의 포항제철소 가동을 시발로 20여 년간 철 다소비 산업을 비롯한 중화학산업이 순항하며 잘 진행되어 오다가 1997년 IMF 외환사태가 터지면서 한국경제는 국내 30대 재벌사의 반(半)이 파산하는 초유의 대파국(大破局)을 맞게 되었다.

 

그런데 그 후 어떻게 IMF 외환사태가 쉽게 극복될 수 있었을까? 이 대목에 대해서는 사실에 기초한 진실한 해법을 분명히 밝혀야 할 의무가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지금도 사이비(似而非) 전문가들이 국내는 물론 하버드, 옥스퍼드 등 국외 학계에서도 혼선을 야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가 금 모으기 운동을 펴서 쉽게 극복했다고 자화 자찬하는 특정집단이 있는가 하면, 수출기업들이 피나는 경영쇄신을 통해 극복했다는 부류도 있었다. 

 

IMF 외환위기와 관련해 경제경영 전문연구기관에서도 수 편의 연구보고서를 내놓았지만 IMF 외환위기의 본질과 극복해법을 이해시킬 수 있는 수준의 것은 전혀 아니었다.

IMF 외환위기가 극복된 어느 해인가 KAIST에서 중견기업 CEO를 대상으로 특강을 해달라는 강의 요청을 받고 필자는 그 강의에서 IMF 외환위기를 다루어 보았다.


IMF 외환위기는 달러($) 부족에서 온 것이므로 달러($)가 있어야만 위기가 극복될 수 있다고 본다면, 어떤 형태로든 IMF가 세계 금융투기 세력과 직간접의 연결고리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론의 견지에서 문제를 제기했다.

왜냐하면 당시 외환위기가 한국에서만 터진 게 아니고 비슷한 시기에 태국, 말리시어 에서도 터진 현상이었기 때문이다. 이들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개발도상국 단계를 지나 선진 후발국으로 진입하려는 단계에서 어느 정도의 달러($)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또한 각국마다 우량기업들이 있었던 것도 글로벌 금융투기꾼들에게는 좋은 먹이감으로 보였을 것이었다. 

 

고금리(高金利) 작전을 통해 IMF가 월가(Wall Street) 금융투기꾼들과 결탁하여 한국과 동남아에서 일으킨 재정위기(financial crisis)의 본질을 필자는 지금도 이렇게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IMF와 국제금융투기꾼에게 당한 나라 중에서 한국이 3.5년 만에 IMF 부채를 상환하게 된 사유는 무엇이었을까? 금 모으기, 국민의 단결 정신과 애국심, 대기업의 과감한 경영쇄신들도 물론 도움이 되었을 것이지만 이런 것들로 과연 IMF 부채를 갚을 수가 있었을까? 

 

환율이 1$:800원에서 1$:1300-1400원으로 현실화되자 30대 재벌 중에서 내수 위주로 재미를 보았던 15개사는 파산(破産)했고, 수출 위주의 15개는 달러($) 벼락을 맞게 되었다. 그리고 달러($) 벼락을 맞은 수출위주의 재벌사들은 그 여유자금을 R&D에 투자함으로써 초(超)기술강국으로의 기반을 다지는 주역이 되었다.

1997년 IMF 위기에서 당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기업의 목적은 이익 추구가 아니고 사회 환원”이라는 반(反)자유 기업제도를 강하게 견지하는 속에서도 살아남은 수출 위주의 재벌기업들은 제조업 중심의 산업화와 경제대국화로 한국의 국위를 급부상시키는 주역이 되었고, 이런 추세는 그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었다.


2000년대 초반 디지털 기술혁명(digitalization revolution)의 심화와 미소양극 체제의 붕괴로 세계경제의 추세(trend)와 세계패권(world hegemony)이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전개되어 갈 것이며, 이런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재벌구조(Chaebol Structure)의 진화논리와 기업의 지속번영원리를 보다 명쾌하게 이해·설명할 수 있는 일반이론(general theory)을 정립하고 싶은 강한 열망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대단히 어려운 시기인 줄 알면서도 당시 SK 그룹의 박영호 부회장에게 연구비 지원을 요청하였는데 내부적으로 어떤 의사결정과정을 거쳤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SK 경제연구소를 통해서 쾌히 지원해 주었다. 


SK 지원에 힘입어 필자는 “IMF 충격 이후 살아남은 재벌들이 2008년 미국 월가발 글로벌 금융위기에서도 한국경제를 발전시켜 온 동인과 동력이 무엇이었나”의 관점에서 재벌의 등장과 그 진화과정과 더 나아가 기업의 지속번영 원리를 보다 일반적으로 이해·설명할 수 있는 다이내믹 매니지먼트 이론을 정립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를 ‘Dynamic Management Theory(한양대학교 출판부, 2008)’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서 출간하였고, 뒤이어 이를 더 정교화한 산업주도권의 이동원리를 담은 “Why Industrial Hegemony Shifts: Needs Evolution and Dynamic Management. Lambert Academic Publishing. 2010)”을 독일에서 출간하였다.

2011년 미국 산디에고(San Diego)에서 열린 SMS 세계전략경영학회 연례회의에서 필자는 영국 워릭(Warwick) 대학교 존 맥기(John McGee) 교수(전 SMS 세계전략경영학회장)와 기업지배구조의 “소유와 경영의 분리와 조화”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인 적이 있었다.

 

Dynamic Management의 세계적 확산


회의를 끝내고 귀국하여 보니 맥기 교수와 윌리(Wiley) 출판사로부터 다이내믹 매니지먼트 관점에서 한국 재벌기업의 진화에 대해 집필해 달라는 청탁이 와 있었다. 이때 집필한 논문이 윌리 백과사전(2015년 3판)에 “Chaebol Structure: Emergence and Evolution“라는 제목으로 게재되어 지금도 확산되고 있다. 


한편 2015년 들어 AI 시대를 선도할 혁신이론들을 개발하기 위한 한국 정부의 연구비 지원 사업에 힘입어 필자는 자연계 내의 질서를 밝히는 데 있어서, 원천적으로 오류(誤謬)를 전제하고 있는 논리실증주의(logical empiricism)라는 과학적 방법(scientific method) 대신에 자연의 질서(예컨대, 물은 항상 아래로 흐르며 협곡에서는 빨라지며, 도미노를 통해서 인과관계가 연쇄적으로 이어지며 최종목적지에 도달해가든지 하는)를 따르는 섭리경영(攝理經營)의 관점에서,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집중적으로 혁신경영·혁신전략과 관련한 SSCI 논문 4편을 Technology Analysis & Strategic Management 저널에 게재할 수 있었다.

 
Dynamic Management가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홍콩(홍콩대와 홍콩 중문대) 일본(JAIST)에서의 특강요청에 응했고, 중국의 베이징대(Peking Univ. 光华管理学院)와 천진의 Nankai Univ. 에서는 경영학 석박사과정의 정규과목으로 2012년부터 Dynamic Management를 가르치고 있다.

돌이켜 보면 필자는 1965년 서울상대를 졸업하면서 곧장 공군 학사장교로 입대하여 1969년 제대하기 불과 3개월 전에 이공계의 본산인 KIST에 합류하게 되었는데 이후 10여 년 정부출연연구소에서의 연구 경험을 지니고, 한양대 교수로 봉직하면서 2008년 정년과 그 후 2026년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과율(因果律)과 자연법칙(自然法則)과 필연(必然)을 하나로 인식하는 결정론(determinism)의 입장에서 나의 연구 활동을 이어왔다고 감히 생각한다.

필자는 대한민국의 산업화 성공은 두 가지 특유한 동인(動因)에 의해서 비롯된 것으로 정리한다.
첫째는 기업지배구조(corporate governance)이다.

 
세계 대량경제(mass economy)가 성장기를 맞는 1970년대 초중반의 절묘한 타이밍에 박정희 대통령의 수출지향 산업화 드라이브 정책을 사업보국과 기술제일주의에 기초한 재벌총수들 - 이병철(삼성), 정주영(현대), 구인회(LG), 박태준(POSCO), 최종현(SK), 조중훈(대한항공) –과 전문경영자과의 조화로 한국형 기업지배구조(corporate governance)가 형성되었는데 이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分離)를 황금율로 여기는 서구(西歐)형과 크게 차별화되는 대목이다.

둘째는 한국형 기업지배구조 위에서, 수요측면의 고객지불의향(willingness to pay: WTP)을 공급측면의 니즈맞춤혁신(Needs-Focused Innovation)으로 충족시키는 적응우수성(adaptive goodness)·동적적합성(Dynamic Fit)을 통하여 사업성과 국부를 창출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Firm Power Theory가 산업화 성공의 핵심 동인으로 작동하였다고 본다.

 

이런 맥락에서, 신 혁신기술을 선취·선점하거나 편승하는 기업·산업·국가만이 세계산업주도권을 쥐게 된다는 대명제는 필자의 굳은 신념이 되었다. 

예컨대, 철강산업의 경우 POSCO의 출범과 같은 시기에 브라질과 중국에서도 철강산업을 시작하였는데 유독 POSCO만이 차별적으로 흑자경영을 지속하고 있다. 

 

POSCO는 건설 당시의 혁신기술인 러시아의 고로(高爐)대형화(large blast furnace) 기술과 오스트리아의 연속주조(continuous casting) 기술을 장착하였고 그 뒤에도 자체 연구 기관인 POSTEC과 RIST에서 끊임없는 R&D로 생산 현장을 지원하고 있으므로 세계최강 철강회사의 하나로 군림해 오고 있다.


특히 철강산업에서 신 혁신기술을 선취로 선발지 우위(first mover advantage)를 향유하게 되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철강 전후방 산업에서 엄청난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를 발하게 된 이면에서 POSCO는 대한민국 산업화의 초석으로 작동하고 있다. 

 

2020년대 들어 초지능의 AI 시대가 심화되면서, 니즈는 개별화(個別化), 기술혁신은 가속화(加速化)되면서, 두차원의 적합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Dynamic Management 가 AI 시대에 잘 부합하는 경영 패러다임으로 인지되기 시작하면서, 혁신경영·혁신전략의 새로운 장르인 Dynamic Management가 세계경영학계와 컨설팅업계의 이목을 받기 시작하는 분위기다.

 

필자의 연구 여정은 KIST, ETRI, KNFC, KAERI 등 정부출연연구기관(1969-1981)에서, 한양대 교수 재직(1981-2008)과 정년 이후(2008-2026)에서, 정부와 대기업의 연구비 지원으로 왕성하게 연구할 수 있었다. 한 연구가 끝나면 다른 연구가 기다리는 연속과정이 지금까지도 이어져 왔다. 진심으로 감사할 일이다. 

 




◆ 김인호 박사

 

현 한양대 명예교수, 前 삼성 사외 감사, 한국주택은행 사외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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