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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다니엘 칼럼] 음모론이 사망한 날… 전산조작보다 더 끔찍한 사전투표율 세팅
  • 박다니엘 작가
  • 등록 2026-07-29 11:5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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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투표소에서 시민이 투표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민경욱 전 국회의원이 선관위 전산조작이 폭로된 후 다시 공개한 투표율 조작표. 별개의 대통령선거 사전투표율 곡선이 1시간씩 밀린 상태로 거의 완벽하게 동일한 것을 알 수 있다.

수년 동안, 선거를 둘러싼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선관위는 거의 반사적으로 한 문장을 내뱉었다.

“전산 조작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이 한 문장 앞에서 질문은 봉쇄됐다. 의문을 제기한 사람은 곧장 ‘음모론자’라는 딱지가 붙었다. 선거를 의심하는 쪽은 비이성의 진영으로 밀려났고, 선거를 의심하지 않는 쪽은 자동으로 합리와 상식의 자리를 점했다. 

 

7월23일, 거짓 멜로디가 깨지다

미디어는 ‘전문가’를 앞세워 그 문장을 반복했고, 시민은 그 반복을 믿었다. 믿는 것이 편했으니까. 한국의 선거는 공정하다, 한국에서 한 표는 한 표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성숙하다—

이것은 우리가 수십 년 동안 스스로에게 들려준 자장가였다. 

그런데 자장가에는 언제나 진실보다 더 잔인한 속성이 있다. 잠들어 있는 동안에도, 그 멜로디는 깨지지 않을 것처럼 들린다. 깨질 때까지는.

2026년 7월23일, 그 멜로디는 깨졌다.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경기도선관위, 그리고 서울 송파·강남·서초구선관위에 대한 추가 압수수색에 나섰다. 합수본이 그날 공식적으로 밝힌 내용은 충격 그 자체였다. 

보도에 따르면, 지방선거 당일 투표자 수를 집계하는 과정에서 일부 실무자들이 상부 보고와 결재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전산 통계를 임의로 수정했다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다른 투표소 수치까지 손대며 이른바 ‘숫자 맞추기’를 한 정황까지 포착했다. 

그리고 여기서 진짜 중요한 것은, 숫자가 틀렸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었다. 인간이 하는 일에는 언제든 오류가 생길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실수로 ‘4’를 ‘1’로 잘못 친다. 어떤 사람은 엉뚱한 칸에 수를 입력한다. 그것은 누구나 웃어넘길 수 있는 일상의 해프닝이다. 

문제는 그 오류를 어떻게 다루었느냐였다. 정상적인 절차라면, 투표자 수를 잘못 입력한 경우 사유를 구체적으로 남기고, 상부 보고와 승인을 거쳐 수정해야 한다. 최소한의 관료적 상식이 그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수사기관이 포착한 정황은 정반대였다. 일부 실무자들은 오입력 사실을 보고하지 말고 임의로 조정하자는 취지의 대화를 나눴고, 한 투표소의 잘못된 수치를 인근 여러 투표소로 분산 입력한 뒤, 시간이 지나 실제 투표자가 늘어나면 그제야 오차를 줄여가는 이른바 ‘분산-회복’ 방식까지 의심받았다. 

이쯤 되면 그것은 더 이상 ‘실수의 정정’이 아니다. 그것은 은폐를 전제로 한 수정이고, 절차를 가장한 조작이다. 그리고 그 가면을 벗기려면, 합수본의 영장이 필요했다. 영장이 없었다면, 우리는 영원히 ‘잘못 입력하고 잘 고친 일’로 기억했을 것이다.

하루 뒤인 7월24일. 사건은 더 깊은 심연으로 내려갔다. 

보도에 따르면 합수본은 기존 의심 지역인 경기도 일부와 서울 강남·송파·서초를 넘어, 경기 다른 지역과 충청권에서도 유사한 정황을 포착했다. 

사건의 외연이 자라면서, 그 안에는 한 장면이 더 떠올랐다. 피의자로 적시된 실무자가 압수수색 현장에서 한 말. “최종 투표율만 맞으면 되는 것 아니냐.” 이 한 문장은 선거 행정의 붕괴를 압축한 문장이다. 

한 문장 안에, 모든 것이 들어 있었다. 선거는 최종 숫자만 맞으면 되는 게임이 아니다. 과정이 진실해야 결과도 진실하다. 기록이 정직해야 통계도 공적 권위를 갖는다. 한 표 한 표가 사람의 발자국이라는 사실이, 그것이 진짜라는 사실이, 투표의 의미 그 자체다. 

그런데 현장의 실무자가 “끝 숫자만 맞으면 된다”는 인식으로 움직였다면, 민주주의는 이미 큰 위험에 처해 있었던 것이었다. 

‘적게 드러난 것’이지 ‘적게 일어난 것’이 아니다

7월27일. 공개된 자료는 국민에게 더 큰 충격을 주었다. 중앙선관위가 지방선거 당일 전국 56개 구시군 선관위로부터 받은 투표자 수 수정 보고는 총 72건이었다. 

전국 구시군 선관위가 255개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숫자는 적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적게 드러난 것’이지 ‘적게 일어난 것’이 아니다. 더 심각한 것은 수정의 양상이다. 

수정 사유는 ‘기재 누락 정정’ ‘투표자 수 변경’ 등으로 제각각이었고, 어떤 곳은 수치가 수천 명 단위로 늘었다. 어떤 곳은 거의 반나절이 지나서야 수정됐다. 

보도에 따르면 인천 검단구는 5만4665명에서 6만1276명으로, 경남 사천은 1만5634명에서 1만9631명으로 바뀌었다. 경기 안산 단원구 백운동 제1투표소는 41명을 410명으로, 전남 해남군 계곡면은 84명을 284명으로 잘못 입력했다가 정정한 사례가 보도됐다. 

한두 건이라면 해프닝일 수 있다. 네댓 건이어도 우연이라고 우길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기록이 전국 단위로 누적되기 시작하면, 한 사람의 의심은 백 명의 의심이 되고, 백 명의 의심은 국민전체로 퍼지게 된다.

김영환, 나경원, 김문수, 장동혁… “부정선거는 있다”

이 물결 위에서, 정치권의 반응도 쏟아졌다. 전산조작의 가능성이 공식 수사정황으로 부상한 것을 알게 된 김영환 전 충청북도 도지사는 강하게 자성했다.

“오늘은 우리나라에서 부정선거음모론이라는 말이 사라진 날이다. 나는 설마 이 나라 선관위가 이렇게 썩어있을 줄은 몰랐다. 그동안 부정선거를 주장하던 분들을 아직은 확실한 증거가 없다고 거리를 둔 나의 사고와 판단에 대해, 부정선거를 줄기차게 주장한 젊은이들과 국민들께 엎드려 사과드린다.”

2025년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다가 부정선거 논란에도 너무 빨리 결과에 승복해 버려서 ‘김승복’이란 별명까지 얻게 된 김문수 전 장관도 함께 목소리를 높였다.

“초등학생도 할 수 있는 덧셈을 이렇게 많이 틀리면서 어떻게 ‘선거관리위원회’ 간판을 달 수 있나? ‘부정선거 특별검사’를 국민의힘이 임명하도록 하여 수사 범위를 올해 지방선거뿐만 아니라, 제가 후보였던 ‘2025년 대통령선거’에 대해서도 모든 의혹을 밝혀주기 바란다.”

대선 후보였던 본인이 자기 선거 결과를 믿지 못하겠다며 공개적으로 의문을 제기한 것. 이것은 한국 정치사에서 보기 드문, 폭탄에 가까운 발언이었다.

선관위 6·3 지방선거 소청 변론에서 나경원 의원도 같이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서버 투표율 조작 증거까지 만천하에 드러났다. 이미 투표율 조작이 이렇게 쉽게 가능한데, 득표율은 건드리지 않았다고 누가 믿겠는가. 선관위는 당장 재선거의 길을 열어, 국민에게 빼앗긴 투표권을 돌려놓아야 한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도 27일 부정선거 카르텔을 날카롭게 공격했다.

“투표용지 부족에 전산 조작까지 드러났다. 저는 오늘 오후 중앙선관위 선거 소청 심리에 나가서 직접 구두변론을 할 예정이다. 선관위는 끝내 방송 생중계 요구를 거부했다. 무엇을 감추려고 방송 생중계 요구를 거부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생중계를 거부하는 선관위, 국민 특검을 미루는 민주당, 핵심 증거인 메신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하는 법원 모두가 공범이다. 그 공범들에 대해 국민들이 분노하고, 국민들께서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투표율 조작을 넘어 투표율을 설계하다

가장 충격적인 내용은, 뇌출혈로 강연 중 쓰러졌다가 죽음에서 살아 돌아온 민경욱 전 의원이 선관위 전산조작이 폭로된 후 다시 공개한 투표율 조작표였다. 

이 표는 내가 유튜브에 등장한 그의 주장을 ‘사기선거 잃어버린 나라’라는 책에 삽입하기 위해 여러 번 들으면서 AI를 동원해서 분석한 적이 있어서 매우 익숙한 표이기도 했다. 

그 표가 보여주는 것은 지금까지 언론에 보도된 충격적인 내용들을 어린이 장난처럼 보이게 했다. 표는 투표율 조작을 넘어 ‘투표율의 설계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표에는 두 개의 곡선이 그려져 있다. 2022년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된 20대 대선의 사전투표 시간대별 투표율, 그리고 2025년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된 21대 대선의 사전투표 시간대별 투표율. 

전문가들을 경악하게 만든 단 하나의 사실은, “두 곡선이 1시간씩 밀린 상태로 거의 완벽하게 동일하다”는 것이었다. 즉, 별개의 대통령선거였음에도 사전투표율이 3년 후 정확히 1시간만 앞당겨진 형태로 겹쳤다.

예를 들어 첫째 날 8시의 ‘20대 대선 사전투표율’이, 첫째 날 7시의 ‘21대 대선 사전투표율’과 동일하다. 

그리고 다음 시간대도, 그 다음 시간대도, 끝까지 1시간 차이로 똑같다. 인구 구성은 달랐다. 정치 상황은 달랐다. 20대 대선 당시에는 코로나라는 거대한 변수까지 있었다. 그런데 3년 후, 똑같은 나라에서, 같은 수의 사람들이, 같은 패턴으로, 딱 1시간씩 밀린 채로 다시 투표했다고? 

이것은 통계의 영역을 넘어선 일이다. 세상 어떤 통계 모델로도, 어떤 사회학 모델로도, 어떤 행동경제학 모델로도 이런 현상은 설명할 수 없다. 인간의 자유로운 행동에는 언제나 노이즈가 끼어든다. 새들이 나는 궤적에는 흔들림이 있고, 강이 흐르는 물줄기에는 잔물결이 있다.

사전투표 역시 ‘자유 행동의 총합’이다. 그런데 두 개의 자유 행동이, 3년이라는 시간을 사이에 두고, 코딱지만 한 오차도 없이 일치한다. 그것은 자연이 아니다. 그것은 인쇄물이다.

내가 챗GPT에게 직접 물어봤다.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냐’고. 단호한 답을 피하기로 유명한 챗GPT조차 다음의 답을 줬다.

“절대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를 챗GPT는 이렇게 설명했다.

△사전투표는 ‘자유 행동’의 총합이기 때문에, 절대로 이런 반복 패턴이 나올 수 없다.

△인간의 행동에는 항상 ‘노이즈(잡음)’가 끼어들기 때문에 99% 일치는 불가능하다.

△99.9% 일치는 ‘복사-붙여넣기’ 말고는 어떤 설명으로도 불가하다.

AI도, 통계학자도, 사회학자도, 행동과학자도 같은 답을 줄 것이다. 왜냐하면 답은 사실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같은 모양이 ‘출력’되었다는 것은, 같은 모양이 ‘입력’되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것이 위의 두 투표율 분석이 진짜로 중요한 이유다. 합동수사본부를 통해 드러난 전산조작은, 사실상 ‘새 발의 피’였다. 그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했다. 진짜 그림은 그 뒤에 있었다. 

보도와 정황들이 가리키는 바로 그 내면에서, 선관위와 부정선거 카르텔은 유권자 수, 실제 투표자 수, 지역의 사정과 무관하게, 아예 사전투표율을 먼저 ‘세팅’해 두고 그 투표율이 나오도록 시스템을 설계했다. 

투표율을 먼저 그리고, 그 안에 득표율을 끼워 맞추는 것. 도화선을 먼저 깔고, 그 위로 불꽃을 튀기는 것. 물론 세팅해 놓은 그 틀 안에서 어떤 정당이 유리하도록 조작하는 일은, 그 다음 단계의 당연한 절차였다. 

이것이 부정선거 카르텔이 그토록 숨기기를 원하는 진짜 진실이다. 그리고 그 진실이 조금씩이라도 노출될 때마다 그토록 큰 위협을 느끼는 까닭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전투표가 사라지는 날, 자신들의 승리 공식도 함께 사라진다는 것을. 그래서 그들은 끝까지, 사전투표를 지킨다.

결국,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한다. 사전투표는 국민이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정황들이 가리키는 바로 그 내면에서, 선관위와 부정선거 카르텔은 다양한 조작 방식으로 결과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 의미는 분명하다. 한국인은 투표소에 갔다. 줄을 섰다. 도장을 찍었다. 그리고 돌아와서, 자신이 한 표를 행사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 믿음이 진짜였는지는, 더 이상 본인이 장담할 수 없다. 

자신이 한 표가 1표로 집계됐는지, 0.5표로 깎였는지, 누군가의 손에서 다른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는지—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길이, 시민에게는 닫혀 있다. 이것이 곧, 한국 민주주의가 21세기에 도달한 가장 어두운 지점이다. 

한 표의 무게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한 표의 존재 자체가 흔들렸다. 시민이 투표라는 행사의 주체였다는 전제, 시민이 최종 결정자였다는 약속, 시민이 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선언이 힘을 잃었다.

투표율 조작사태는 이제 우리에게 묻고 있다. 우리가 지난 선거에서, 사전투표소에 몇 시에 갔는가. 그리고 그때 우리가 던진 한 표가 무사하게 개표장에 그대로 도착했는가를.


◆ 박다니엘 작가

“이 책은 특정 정당이나 인물을 공격하기 위해 쓰인 책이 아니다. 나는 이념의 편에 서기보다, 사실의 편에 서고자 했다. 정말로 우리가 뽑은 대통령이고 국회인가?” -작가의 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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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6-07-29 15:04:25

    事必歸正
    "역사는 권력을 가진 자에 의하여 쓰여진다"라고 했던가?
    지금 AI시대.
    "역사는 사실에 입각한 데이터에 의하여 쓰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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