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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松山] 증조부의 죄를 증손녀가 사과해야 하나?
  • 松山 작가
  • 등록 2026-08-11 18: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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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대체 우리는 몇 대조의 죄까지 대신 사과해야 하는가?”

배우 하영이 증조부의 친일 행적 문제로 공개 사과를 했다. [사진=연합뉴스]

배우 하영이 증조부의 친일 행적과 관련해 사과했다는 보도를 보면서 참담한 생각이 든다. 증조부가 한 일을 증손녀가 사과해야 한다면 도대체 몇 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가? 증조부까지인가? 고조부까지인가? 아니면 5대조, 10대조까지 찾아 올라가야 하는가?

특정 인물의 친일 행적을 밝히고 싶다면 당시 그가 어떤 지위에 있었고 무엇을 했으며 어떤 대가를 받았는지 사료를 이용하면 된다. 그러나 그것은 그 행위를 한 사람의 문제다. 수십 년 뒤 태어난 후손에게까지 책임을 넘기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증손녀는 증조부를 선택하지 않았고 그의 행동에 참여하지도 않았다.

근대 법치국가가 연좌제를 버린 까닭도 이것이다. 책임은 행위자에게 귀속된다. 아버지가 범죄를 저질렀다고 아들을 처벌하지 않고, 할아버지가 잘못했다고 손자에게 사과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런데 유독 역사 문제에서는 혈통을 따라 책임을 묻는 일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법률로 처벌하지 않을 뿐, 사고의 구조는 연좌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이 논리를 한국사 전체에 적용해 보자. 대한제국이 망하는 과정에서 고종에게 중대한 정치적 책임이 있었다고 평가한다면 오늘날 황실 후손들이 대신 사과해야 하는가? 고종에서 멈출 이유는 또 무엇인가? 조선 왕조의 책임까지 따지려면 태조 이성계에게 올라가야 한다.

이성계는 1388년 위화도에서 회군한 뒤 고려의 정치권력을 장악했고, 1392년 공양왕을 폐위하고 조선을 세웠다. 고려 왕조의 입장에서 이를 권력 찬탈이나 왕조 전복으로 평가한다면 어떻게 되는가? 오늘날 이성계의 후손들에게 고려 왕조를 무너뜨린 일을 사과하라고 해야 하는가?

물론 고종을 ‘매국’으로 평가할 것인지 이성계의 조선 건국을 ‘고려 침탈’로 볼 것인지는 별개의 역사 논쟁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평가 자체가 아니다. 어떤 역사적 평가를 내리더라도 그 책임을 혈통을 따라 후손에게 물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것을 인정하면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조선시대 노비를 수십 명씩 소유했던 양반의 후손은 사과해야 하는가? 백성을 수탈했던 탐관오리의 후손은 어떻게 할 것인가? 당쟁 과정에서 상대 정파를 죽이고 귀양 보낸 사람들의 자손은 책임이 없는가? 고려시대 왕위 찬탈과 무신정변까지 올라가면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삼국시대의 정복전쟁은 어디까지 따질 것인가?

더 근본적인 문제는 기준이다. 100년 전의 잘못은 후손이 사과해야 하고 200년 전의 잘못은 사라지는가? 증조부는 되고 고조부는 안 되는가? 친일은 사과해야 하지만 노비 소유는 사과하지 않아도 되는가? 그렇다면 그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

이런 모순을 피하기 위해 현대사회는 혈통이 아니라 개인의 행위를 기준으로 책임을 묻는다. 후손이 조상의 잘못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거나 사실을 왜곡했다면 그 발언에 대해서 비판하면 된다. 조상의 지위를 이용해 현재의 특혜를 요구했다면 그 행동을 따지면 된다. 그때 비판받는 이유는 누구의 피를 이어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본인이 그렇게 행동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친일 행적을 덮자는 이야기도 아니다. 친일을 했으면 친일 행적을 기록하고, 권력을 남용했으면 권력 남용을 밝히면 된다. 고종의 정치적 책임도 연구하고 이성계의 권력 장악 과정도 따지면 된다. 역사가 해야 할 일은 실제로 행동했던 사람의 이름 아래 그 공과를 정확하게 남기는 것이다.

그런데 증조부의 이름 아래 기록해야 할 내용을 증손녀에게 들고 와 사과를 요구하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사람은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나지 않는다. 조부모는 물론이고 증조부모가 누구였는지는 자신의 의지와 아무 관계가 없다. 선택할 수도 없었던 혈통을 근거로 책임을 요구한다면 개인보다 가문을 앞세웠던 전근대 사회의 사고와 무엇이 다른가?

고종의 책임은 고종에게 물으면 된다. 이성계의 책임은 이성계에게 물으면 된다. 친일 행적이 있는 사람도 바로 그 사람의 이름으로 평가하면 된다. 역사는 과거의 책임자를 밝혀 기록하는 것이지, 죽은 책임자를 대신해 사과할 후손을 찾아내는 일이 아니다.

증손녀에게 물어야 할 것은 하나뿐이다. ‘당신의 증조부가 무엇을 했는가’가 아니라, ‘당신은 무엇을 했는가’이다. 그 원칙을 버린다면 마지막에는 이 질문만 남는다. 도대체 우리는 몇 대조의 죄까지 대신 사과해야 하는가?


◆ 松山(송산) 정광제 

시인이자 역사·철학 연구자. 전 이승만학당 이사. 현 한국근현대사연구회 연구고문이자 철학 포럼 리케이온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네 권을 출간했고, ‘후크고지의 영웅들’을 공동 번역했으며 인문서 ‘신화가 된 조선’ ‘다다미 위의 인문학’ ‘자유주의자의 그람시 읽기’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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