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김도읍·이종배 의원이 지난 7월13일 당 4·5선 중진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왼쪽). 장동혁 대표가 26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당 대표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 입장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 4선 이상 중진 의원들이 모였다. “당이 이런 상태로는 2028년 총선에서 승리하기 어렵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한다. 진단은 심각했지만 내놓은 처방은 초라했다.
장동혁 대표와 간담회를 열어 달라, 가능하면 정례화해 달라, 조경태·권영진·서범수·진종오 의원에 대한 징계는 당의 화합과 결속을 해칠 수 있으니 심사숙고해 달라는 것이었다.
총선에서 이기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면 원인과 대안이 따라야 한다. 장 대표의 노선이 잘못됐다면 무엇이 잘못됐는지 지적해야 하고, 지도체제에 문제가 있다면 교체를 요구하든 보완책을 내놓든 결론을 내려야 한다. 당협위원장 직선제가 문제라면 찬반 입장을 밝히고 더 나은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어느 것도 없었다. 총선 패배 가능성은 경고하면서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19명 중 9명, 그마저도 한목소리가 아니었다
이날 회동에 참석한 사람은 국민의힘 4선 이상 의원 19명 가운데 주호영·김기현·나경원·김도읍·김상훈·박대출·유의동·윤재옥·이종배 의원 등 9명이었다. 과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참석자들의 의견도 하나로 모이지 않았다. 징계가 당의 화합을 해칠 수 있다는 의견이 다수였지만, 한목소리만 내서는 안 된다는 반론과 징계 대상 의원들도 화합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장 대표의 거취에 관한 논의는 없었다. 장 대표가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추진 의사를 재확인한 당협위원장 당원직선제에 대해서도 별다른 의견을 정리하지 못했다.
불참한 10명을 하나의 반대 진영으로 묶기도 어렵다. 조경태 의원은 자신에게 내려진 징계를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나머지 불참자들이 정례 간담회나 징계 재고 요구에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도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참석자도 하나가 아니고 불참자도 하나가 아니다. 4선 이상 의원 19명이 당의 진로에 관한 최소한의 공동 진단조차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대표와 자주 만나면 총선의 길이 보이나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은 이들이 내놓은 핵심 요구가 대표와의 정례 간담회라는 점이다.
대표와 만나지 못해 당이 이 지경이 됐다는 것인가. 만나는 횟수를 늘리면 떨어진 지지율이 오르고 총선 승리 전략이 생기는가. 중진들이 당대표에게 면담을 요청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이대로는 총선 승리가 어렵다”는 중대한 진단의 결론일 수는 없다.
중진이라면 대표에게 불러 달라고 요구하기 전에 자신들의 판단부터 내놓아야 한다. 장 대표 체제로 총선을 치를 수 있는지, 현재 노선으로 국민의 지지를 확장할 수 있는지, 당원 중심의 개혁과 국민 여론 사이에서 어떤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지 말해야 한다.
정부·여당을 어떻게 견제할 것인지도 제시해야 한다. 국회의 상임위원회와 예산 심사를 어떤 전략으로 운용하고, 수도권과 청년층의 지지를 어떻게 회복하며, 여의도연구원을 비롯한 당의 정책·전략 기능을 어떻게 정상화할 것인지 답해야 한다.
그것이 4선, 5선, 6선 의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국민이 기대하는 이야기다. 정례 간담회와 징계 재고 요구는 출발점일 수는 있어도, “이대로는 총선에서 이길 수 없다”는 진단에 걸맞은 해법은 아니다.
중진에게 필요한 것은 불출마가 아니다
장 대표는 자신을 비판하는 중진들을 향해 대표 교체를 거론할 것이 아니라 불출마를 선언하고 새 인재에게 길을 터주는 편이 총선에 도움이 된다는 취지로 반격했다.
그러나 이 역시 본질을 벗어난 주장이다. 선수가 높다는 이유만으로 불출마하거나 자리를 내려놓아야 할 당위성은 없다. 중진도 당원의 선택을 받아 공천되고 유권자의 선택으로 국회에 들어온 대표자다. 경험과 전문성, 지역 대표성을 갖췄다면 다시 출마할 수 있다.
다선이라는 사실은 그 자체로 잘못이 아니다. 정치적 경험을 자산이 아니라 부채로 취급하며 무조건 물러나라고 요구하는 것은 책임론이라기보다 선수에 따른 차별에 가깝다.
국민이 중진에게 요구하는 것도 희생을 위한 희생이 아니다. 오랜 정치 경험과 당내 영향력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보여 달라는 것이다.
중진에게 필요한 것은 불출마가 아니라 역할이다. 당이 잘못된 길로 가면 분명하게 경고하고, 지도부가 길을 잃으면 대안을 제시하며, 계파가 충돌하면 조정해야 한다. 자신의 판단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당내 절차와 행동을 통해 관철한 뒤 그 결과에 대해 정치적으로 평가받으면 된다.
그것이 책임이다. 책임이 반드시 불출마를 뜻하지는 않는다.
물러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지 않는 것이 문제다
국민의힘이 처한 위기는 가볍지 않다. 정부·여당의 실정에도 반사이익을 얻지 못하고 있다. 내부에서는 징계와 당협 개편을 둘러싼 충돌이 이어지는데도 국민에게 보여줄 정책 대안과 총선 전략은 선명하지 않다.
이럴 때 중진들이 해야 할 일은 뒷방에 모여 걱정을 나누는 것이 아니다. 장 대표의 노선이 옳다면 힘을 실어주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야 한다. 잘못됐다면 무엇이 왜 잘못됐는지 밝히고 바로잡아야 한다. 대표 교체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책임 있게 요구해야 한다. 그럴 생각이 없다면 지도부 흔들기로 비칠 모호한 언행을 거둬야 한다.
찬성도 반대도 아닌 채 “자주 만나서 이야기하자”는 결론으로 물러서는 것은 정치적 경륜이 아니다. 책임지지 않기 위한 안전한 중간지대일 뿐이다.
국민은 중진들에게 자리를 내놓으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오랜 경험에 걸맞게 당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말하고, 지도부가 잘못 가면 바로잡으며, 갈등이 벌어지면 조정하라고 요구한다.
다선이어서 물러나야 하는 것이 아니다. 다선의 경륜에 걸맞은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비판받는 것이다. 물러나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움직이지 않는 것이 문제다.
날개는 폈지만 방향도 힘도 보여주지 못했다. 이번 회동은 당을 구하기 위한 중진의 비상이 아니라, 역할을 잃은 ‘중진’이라는 이름의 안쓰러운 날갯짓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