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석 민주당 대표가 2007년 제안한 ‘코리아대연합’ 구상과 김정은의 ‘적대적 두 국가론’을 대비해 표현한 합성 이미지. 코리아대연합은 남북 국가연합을 1단계 통일로 삼아 장기평화공존을 거쳐 연방제 또는 단일정부 형태의 완전통일로 나아가는 구상이다. [사진=한미일보 그래픽]
김민석의 ‘코리아대연합’에는 통일로 가는 경로가 있다. 그러나 지금의 한반도 현실에 대입하면 결정적인 세 가지가 비어 있다.
“김정은을 어떻게 다시 통일의 장으로 끌어낼 것인가.
누가 평화를 보증하고 대한민국의 억지력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그리고 최종 통일국가의 체제는 무엇인가.”
김민석이 정치적 스승으로 꼽아온 김대중은 적어도 마지막 질문에는 답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였다. 김민석의 코리아대연합에서는 그 답이 선명하지 않다.
2007년의 ‘코리아대연합’…평화공존은 통일로 가는 과정
김민석은 2007년 차기 정부의 통일정책으로 ‘코리아대연합’을 제안했다. 남북이 각각 현 체제와 헌법, 주권을 유지한 채 국가연합을 구성하고 이를 ‘1단계 통일’로 삼자는 구상이었다.
설계는 상당히 구체적이었다.
남북 동수의 공동기구를 만들고 각각의 독자주권을 인정한다. 이 상태를 10~20년, 필요하면 수십 년 유지하면서 사회·경제적 통합을 진행하고 이후 연방제 또는 단일정부 형태의 완전통일로 넘어간다는 것이다.
김민석은 이를 단순한 분단 관리가 아니라 ‘통일지향 장기평화공존’으로 봤다. 현상유지적 평화가 아니라 통일로 가기 위한 적극적 평화체제를 만들자는 구상이었다.
여기까지는 분명하다.
김민석에게 남북 평화공존은 통일의 대안이 아니다. 통일로 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2007년과 2026년의 한반도는 다르다.
첫 번째 빈칸…김정은이 버린 통일, 어떻게 되살리나
첫 번째 빈칸은 ‘북한의 의사’다.
김정은은 2023년 말 남북관계를 더 이상 통일을 지향하는 동족관계로 보지 않고 ‘적대적인 두 국가’로 규정했다. 북한은 이후 통일 관련 기구와 표현을 정리하며 남한을 별개의 적대국가로 취급하는 방향으로 노선을 바꿨다.
김민석의 코리아대연합은 정확히 반대편에서 출발한다. 남과 북은 장기간 두 체제로 공존하더라도 궁극적으로 하나의 국가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연합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앞서 물어야 한다.
“김정은을 어떻게 다시 통일의 장으로 끌어낼 것인가.”
북한이 통일 자체를 거부하는 상황에서 남측이 국가연합과 완전통일을 말한다고 통일과정이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상대방의 의사를 돌려세울 수단이 없다면 국가연합은 출발선에도 서기 어렵다.
김민석이 2024년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두 국가론’에 반대한 이유도 여기서 다시 보인다.
김민석은 남북이 평화적으로 장기 공존한 뒤 통일을 후대에 맡긴다는 기존의 역사적 공감대를 두 국가론으로 바꿀 이유가 없다고 했다. 김정은의 적대적 두 국가론에도 반대했다.
김민석은 통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김정은이 버린 통일을 어떻게 되살릴 것인지 답해야 한다.
두 번째 빈칸…북핵 시대의 평화, 누가 무엇으로 보증하나
두 번째 빈칸은 ‘평화의 보증과 대한민국의 억지력’이다.
코리아대연합은 장기간의 평화공존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평화는 선언한다고 만들어지는 상태가 아니다.
북한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남북은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다. 그렇다면 북핵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남북 군사력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정전체제를 어떤 방식으로 바꿀 것인지부터 설명돼야 한다.
더 근본적인 질문도 있다.
“북한이 합의를 파기하면 누가 책임을 묻는가.
누가 합의 이행을 검증하는가.
누가 평화를 보증하는가.
미국인가. 중국인가. 남북 당사자인가. 국제사회인가.”
그리고 바로 이 대목에서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전시작전통제권 문제가 등장한다.
국가연합이 10년, 20년 또는 그 이상 지속된다면 그 기간 대한민국의 안보는 무엇으로 지킬 것인가. 한미동맹은 유지되는가. 전시작전통제권은 어떤 형태로 운용되는가. 주한미군은 남는가. 북한 핵은 그대로 둔 채 남측의 군사적 역할만 줄이는 것은 아닌가.
평화를 말하려면 ‘평화를 지킬 방법’까지 말해야 한다. 상대방이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은 평화보장 장치가 아니다.
이 질문은 현재 추진되거나 검토되는 국방·안보정책과도 연결된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이나 군 지휘·교육체계 개편, 북한 도발에 대한 대응 기조 조정은 그 자체로 위법하거나 내란이라고 할 수 없다.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 안에서 추진된다면 기본적으로 정책적·정치적 판단의 영역이다.
그러나 만약 이런 조치들이 장기적인 통일환경을 조성한다는 명분 아래 대한민국의 방위능력을 의도적으로 약화시키고 북한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군사환경을 만드는 수단이라는 증거가 나온다면 문제의 차원은 달라진다.
그때부터는 단순한 대북정책 논쟁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헌법질서와 국가안보가 어디까지 통일이라는 명분 아래 양보될 수 있는가의 문제다.
평화는 억지력이 필요 없는 상태가 아니다. 오히려 상대가 합의를 어겼을 때 감당해야 할 대가가 분명할 때 평화는 지속될 수 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고 적대적 두 국가론까지 선언한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세 번째 빈칸…하나의 코리아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인가
세 번째 빈칸은 가장 근본적인 ‘체제’다.
국가연합 단계에서는 남북의 두 체제를 그대로 둘 수 있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유지하고 북한은 노동당 일당지배와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한다. 김민석도 2007년 구상에서 이를 전제로 했다.
그러나 연방이나 단일국가로 넘어가는 순간 체제 문제는 피할 수 없다.
하나의 국가에 두 개의 최고 헌법질서가 동시에 존재할 수는 없다.
자유선거와 노동당 일당지배를 동시에 국가의 기본원리로 삼을 수도 없다.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기본으로 하는 질서와 사회주의적 소유질서를 아무런 선택 없이 하나의 헌법에 담을 수도 없다.
결국 통일의 마지막에는 선택해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도 침묵하지 않는다.
헌법 제4조는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도록 규정한다.
대한민국 헌법이 명령하는 것은 그냥 통일이 아니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이다.
그렇다고 필자는 김민석이 자유민주주의를 버렸다고 보지 않는다. 지금까지 그의 정치활동과 공개 발언에서 그렇게 단정할 근거는 충분하지 않다.
필자가 보기에는 오히려 자유민주주의라는 최종 체제를 지금 명시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것일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최종 통일국가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가 되어야 한다”고 명확히 선언하는 순간 북한은 이를 흡수통일론이라고 반발할 가능성이 높다.
자주·통일운동 진영 일부와도 충돌할 수 있다. 국가연합과 남북공조를 전제로 한 협상 자체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그러나 말하기 어렵다는 이유가 체제에 대한 질문을 없애주지는 않는다.
김대중은 답했다…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더구나 김민석의 정치적 스승인 김대중은 이 질문을 피하지 않았다.
김대중의 3단계 통일론은 남북연합에서 연방을 거쳐 완전통일로 가는 절차만 제시한 것이 아니다. 연방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북한에서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상당 수준 정착돼야 한다는 방향성을 제시했다.
복수정당제와 자유선거가 가능해야 하고 시장경제가 작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종 통일국가 역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향했다.
바로 이 차이가 중요하다.
김대중에게 단계적 통일은 자유민주주의를 포기하기 위한 우회로가 아니었다. 당장 북한 체제를 무너뜨려 흡수하지 않되 장기간 교류와 변화를 통해 남북의 체제를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쪽으로 수렴시키겠다는 방향성이 있었다.
그렇다면 김대중의 통일론을 계승한다는 김민석도 답해야 한다.
“북한에서도 복수정당제와 자유선거가 실시돼야 하는가.
노동당 일당지배 체제는 최종통일 이전에 끝나야 하는가.
북한은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수용해야 하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김민석이 말하는 하나의 코리아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인가.”
통일론이 국가전략이 되려면 세 질문에 답해야 한다
통일은 의지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상대방의 동의가 필요하다. 평화를 지킬 힘과 제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국민이 어떤 체제에서 살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통일은 영토를 합치는 일이기 전에 헌법을 합치는 일이다.
군대를 하나로 만드는 일이며 권력을 어떤 방식으로 선출할지 정하는 일이다. 국민의 사유재산과 표현의 자유, 종교의 자유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결정하는 일이다.
김대중은 적어도 체제에 대해서는 답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였다.
이제 김민석이 답해야 한다.
“김정은을 어떻게 다시 통일의 장으로 끌어낼 것인가.
누가 평화를 보증하고 대한민국의 억지력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그리고 그 끝에 세워질 국가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인가.”
이 세 질문은 코리아대연합의 곁가지가 아니다. 현실의 국가전략이 되기 위해 반드시 채워야 할 세 개의 빈칸이다.
김민석이 이 질문들에 답하지 못한다면 ‘코리아대연합’을 완결된 국가 통일론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결국 통일팔이, 평화팔이라는 정치적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