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조부 관련해 곤역을 치르는 배우 하영 [사진=연합뉴스]어느 역사학자의 페북에서 하영의 증조부가 친일파로 규정되지 않은 것은 ‘연구가 덜 되어’ 그런 것일 뿐이라는 댓글을 읽고 웃었다. 하긴 친일파 될 때까지 파다 보면 언젠가는 친일파가 되긴 하겠다.
그게 조폭의 방법론이지 역사학자의 방법론인가. 누군가를 친일파로 규정하는 건 학문이 아니라, 정치적 심판이라는 증명이다.
인간이 복잡한 시대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 살펴보며 과거를 성찰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게 인문학 아닌가. 과거를 현대의 기준을 내세워 심판하는 게 무슨 정의란 말인가.
최근 밝혀진 안상호의 삶이 인상적이다. 형제 8명 모두 죽고, 아버지는 4살, 어머니는 10살에 잃는다. 상경해 일본어 실력으로 눈에 띄어 출세길이 열리지만, 부모형제의 죽음에 영향을 받아 의사가 되고 싶었다.
일본에서 고학하면서도 우수한 성적을 거뒀고 1903년 일본 내무성 의사검정 시험에 합격한다. 수년 뒤 의친왕을 치료한 인연으로 귀국해 왕실 촉탁의가 되었다.
청나라 유학생 루쉰은 비슷한 시기 센다이 의대를 다녔다. 그 또한 아버지를 병으로 잃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인들의 몸이 아니라 정신을 바꿔야 한다며 의학을 포기하고 문학을 선택한다.
1907년 조선에 귀국한 안상호는 눈앞이 캄캄했겠다. 고종은 그렇다 치고, 순종의 상태가 암울했다. 세간에는 순종이 독이 든 차를 마시고 백치가 되었다고 하지만 의학적인 근거는 없다. 아편이 치명적으로 많이 들어간 차를 마신다 해서 순종처럼 될 순 없다.
순종은 여러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증상을 하나하나 놓고 살펴보면 자폐 스펙트럼과 흡사하다. 그걸 고친다고 어려서부터 온갖 한약을 달고 살았으니, 부적절한 처방으로 중금속 중독이 되었을 가능성도 크다.
안상호를 만났을 1907년, 순종은 치아가 모두 빠지고, 생식 기능을 잃었고, 걷지도 못했고, 만성 소화기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증상은 수은 중독과 흡사하다. 영국의학 학풍이 중심이 된 일본의 자혜의원학교를 마치고 조선에 돌아와서 순종을 진찰한 안상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라의 미래를 들여다본 것 아닌가. 숨이 턱 막혔을 것이다.
나라가 망할 무렵의 그 모습을 우리는 아직까지 직시하지 못하는 것 같다. 게릴라가 되어 일본군과 끝까지 싸운 의병의 모습으로,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는 모습으로만 들여다 볼 뿐이다. 불굴의 조선인들이 일본에 굴복하지 않았다는 동화 속에 안주하려고 한다.
그 시대를 살아간 이들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궁금하진 않은가? 친일 반민족 행위자와 독립투사 사이 수천만 조선인의 각자 다른 선택이 있었을 것인데, 언제까지 흑백으로만 봐야 하나.
안상호의 삶은 자수성가한 한국인의 보편적 삶과 닮았다. 가난에 굴하지 않고 악착같이 공부해 꿈을 이룬 삶이다. 졸부 근성에 명예욕에 불타 여기저기 이름표를 뿌렸으면 친일파로 분류하기 쉬웠을 텐데 그러지 않아서 이번처럼 헷갈리는 일이 벌어졌다. 옳고 그르다고 함부로 단정 지을 수 없는 삶이다. 우리에게 안상호를 심판할 자격이 정말 있는가? 치열하게 살았던 어느 조선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면 될 뿐이다.

◆ 김성민 작가
디지털 크리에이터, 바닷가 거주, 새벽의 사이클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