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김영 한미칼럼] 자유민주주의의 종말…결정이 신앙으로 바뀔 때
  • 김영 편집인
  • 등록 2025-10-20 13:39:36
기사수정
  • 절차가 신앙이 되면, 시민은 사라진다
  • 법이 절대선이 되는 순간, 민주주의는 죽는다
  • 야당의 역할, 국민의 의심할 권리를 지키는 것
이 칼럼은 최근 헌재 결정, 대법원 판결, 특검 논란 등에서 드러난 ‘절차의 신성화’ 현상을 다룬다. 법과 제도가 민주주의의 수단이 아니라 스스로 목적이 되어가고 있는 현실을 비판하며, 자유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해 시민과 정치권이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묻는다. <편집자 주>

결정은 신앙이 아니라, 시작이다. 민주주의는 질문으로 유지된다. 한미일보 그래픽

법과 절차는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시민의 신뢰를 증명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판결과 결정은 신앙처럼 받아들여지고, 질문은 불경이 된다. 결정이 끝이 되는 순간 민주주의는 멈추고, 질문이 시작될 때 비로소 다시 살아난다.

 

“결정은 신앙이 아니라, 시작이다. 민주주의는 질문으로 유지된다” 

이 문장은 오늘의 대한민국 현실을 가장 정확히 말해준다.

 

법원이 판결을 내리고, 헌법재판소가 결정을 내리면 정치권과 언론은 입을 모은다. “끝났다. 이제 그만하라” 그러나 끝난 것은 절차일 뿐이다. 신뢰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지난 몇 년간 우리는 ‘결정의 신앙화’를 여러 차례 목격했다. 대법원이 “부정선거의 직접 증거는 없다”고 했을 때, 많은 헌법학자와 시민들이 “그렇다면 관리 부실은 왜 생겼는가, 제도는 어떻게 고쳐야 하는가”라고 물었다.

 

그러나 정치권은 그 질문에 침묵했다. 그 침묵은 책임 회피의 다른 이름이었다. 한나 아렌트는 말했다. “악은 생각하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 생각을 멈춘 권력은 언제나 정의의 이름으로 폭력을 휘두른다. 

 

그날 이후 묻는 사람은 ‘음모론자’가 되었고, 검증하자는 목소리는 ‘반헌법’으로 몰렸다. 합법이 논쟁을 덮는 순간, 절차는 살아 있으나 민주주의는 숨을 잃는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결정도 같았다.

 

결정의 내용보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의 태도였다. 찬성과 반대가 갈린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사회가 그 결정을 ‘검증의 출발점’이 아닌 ‘신앙의 선언문’처럼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당시 수많은 헌법학자와 시민들은 “그 절차가 과연 공정했는가”라고 물었지만, 정치권은 “결정은 결론이다”라는 말로 토론을 닫았다. 그 결과 헌법은 살아 있었지만, 헌정은 멈췄다.

 

특검 논란 역시 다르지 않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의 구현’을 내세운 특검이 꾸려지지만, 그 과정은 언제나 정치적 해석 속에 가려진다. 수사 내용보다 ‘누가 임명했느냐’, ‘누구에게 유리하냐’가 먼저 거론된다. 국민은 진실을 읽기보다 어느 편의 특검인지부터 따진다.

 

이쯤 되면 법과 정의는 공통의 언어가 아니라 진영의 무기가 된다. 이런 풍경 속에서 “법대로 했다”는 말은 정당화의 주문처럼 쓰인다. 국가는 설명하지 않고, 언론은 그 말로 기사를 마친다.

 

그러나 법은 국민의 이해 위에서만 정당성을 얻는다. 설명이 사라진 법치는 통치의 다른 이름이다. 국민이 이해하지 못하는 정의는 그 자체로 불완전하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의심할 권리’다.

 

알베르 카뮈는 말했다. “자유란 의심할 권리다.”

 

의심이 사라진 사회는 더 이상 자유롭지 않다. 진리를 믿는 자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진리를 의심할 자유다. 그 자유가 사라질 때 사회는 조용해진다. 그러나 그 고요함은 평화가 아니라 복종의 침묵이다. 우리는 지금 그 위험한 침묵의 문턱에 서 있다.

 

결정은 끝이 아니라 출발이어야 한다. 판결은 법이 내리지만, 정당성은 국민이 완성한다. 국민의 질문이 헌법을 살리고, 의심이 제도를 단단하게 만든다. “법대로 했다”는 말은 정의의 완결이 아니라, 국민에게 설명을 시작하겠다는 약속이 돼야 한다.

 

민주주의는 믿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오직 질문으로만 유지된다.

 

“결정은 신앙이 아니라, 시작이다.” 그 시작은 거창한 행동이 아니라, 다시 묻는 일에서 출발한다. 뉴스를 읽을 때, 판결을 들을 때, 정치의 언어를 마주할 때 “그 말은 옳은가, 그 결정은 타당한가”를 묻는 순간 시민은 다시 주권자가 된다.

 

민주주의의 출발점은 제도가 아니라, 묻는 시민 한 사람의 용기다. 그러나 질문에 응답하는 것은 정치의 몫이다.

 

지금의 정치권, 특히 야당은 그 책임을 외면해선 안 된다. 법의 절차를 방패로 삼아 침묵하거나, 국민의 의혹을 정치적 계산으로 재단한다면 그 순간 야당은 감시자가 아니라 방조자가 된다. 시민의 질문이 있을 때, 그 질문을 제도적 논의와 정치적 해법으로 이어주는 것이 야당의 존재 이유다.

정치가 응답을 멈추면 시민의 용기는 고립되고, 시민이 질문을 멈추면 정치는 독선이 된다. 민주주의는 묻는 시민과 응답하는 정치가 함께 책임질 때에만 다시 움직인다.

 

자유민주주의의 회복은 제도의 개혁이 아니라, 국민의 의심에 응답할 용기를 정치가 되찾는 일에서 시작된다. 그 용기야말로 지금의 야당이 시험대 위에서 증명해야 할 마지막 신뢰다.

 

 

#자유민주주의의종말 #결정이신앙으로바뀔때 #김영한미칼럼 #부정선거논란 #헌재파면결정 #특검정당성 #한나아렌트 #알베르카뮈 #법의신앙화 #야당의책임 #한미일보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0
좋아요
0
감동이에요
0
유니세프-기본배너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