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위원·한국전략연구소 소장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 1년을 회고하며, 뒤늦게 비난과 평가를 쏟아내는 일부 언론의 태도는 ‘사후약방문’의 상징이다. 정치가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는 동안 책임 있는 언론이 해야 할 일은 이미 벌어진 재앙을 서늘하게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전에 경고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언론은 사건이 터지면 달려들어 “그때 이상했다”,“내 그럴줄 알았다”고 말하며 뒤늦은 총질을 시도한다. 이는 언론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저버린 행위다. 국민에게 경고를 하지 못했고 권력을 견제하지도 못했다. 오히려 ‘정치의 4류화’를 조장한 침묵의 공범이었다.
오늘의 한국 정치는 단지 몇몇 정치인의 일탈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집단 심리 구조가 기형화된 결과물이다. 팬덤정치, 종족주의 정치가 그 뿌리이다. 국민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조지 오웰이 『동물농장』에서 묘사한 바로 그 장면과 다르지 않다. 진실보다 ‘우리 편의 감정’이 더 중요해지고, 합리적 토론보다 ‘증오의 선동’이 더 효과적이며, 국가이익보다 ‘진영의 이익’이 우선한다.
팬덤·종족주의는 왜 국가를 파괴하는가
오웰은 동물농장에서 돼지 나폴레온과 스퀼러를 등장시켜 권력이 어떻게 대중의 무지를 이용해 지배를 정당화하는지 그려냈다. 농장의 다른 동물들은 자신들 눈앞에서 규칙이 조작되고, 거짓말이 반복돼도 깨닫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지도자의 말’을 진실로 믿기 때문이다. 오늘 한국의 정치지형도 이와 다르지 않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권의 붕괴 이후 국회를 장악하자마자 자신들만의 동물농장을 만들고 있다. 법원행정처 폐지, 사법행정위 설치, 대법관 증원, 4심제 도입, 내란전담재판부, 검찰청 폐지 시도, 헌법적 권한 구조의 무책임한 변경 등은 모두 권력 집중의 기술이다. ‘사법 리스크 방어’를 위해 헌정을 재단하는 모습은 동물농장이 사훈을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에서 “그러나 어떤 동물은 더 평등하다”로 슬그머니 바꾸던 장면과 닮았다.
국민 절반만 동의할 ‘12·3 국경일 지정’, 내부 고발을 서로에게 강요하는 제도, 정치적 분노를 선동해 다수의 폭력을 합리화하는 일련의 흐름은 오웰이 경고한 집단적 자기기만의 극치이다. ‘우리 진영의 선함’이라는 신념 아래, 헌법 파괴적 발상이 아무렇지 않게 구현되고 있다. 대중이 동의하면 권력의 남용은 남용이 아니라 ‘정의’로 둔갑한다. 오웰이 보기에 이것이야말로 전체주의의 출발점이었다. 지금 이 땅에서 그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치인 개인의 문제를 넘어- 한국 정치 전체가 ‘심리적 질환 상태’
윤 전 대통령의 자기 제어 결여, 앞뒤 안 재는 결단, 국민과 대화시 버티는 듯한 자세,일이 뜻대로 전개되지 않았으면 부하를 살리고 자기가 책임지려는 자세의 아쉬움 등은 개인적 특성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는 헌법 내에서 행동했고 혼자서 대통령이 되지 않았다. 누군가 그를 선택했다. 왜 선택했는가? ‘차악’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김건희 여사가 윤 전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 한 언론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대단히 권력지향적임을 직감하고 주변에 경고했었다. 오웰은 이런 심리를 “스스로 사슬을 들고 독재자에게 건네는 대중의 자발적 복종”이라고 봤다.
지도자의 문제보다 더 심각한 것은, 지도자의 오만함을 가능케 하는 대중의 집단 심리 구조이다. 지금 한국 정치의 가장 큰 위기는 지도자 몇 명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상층부 의식이 무너진 것이다. 도덕적 기준, 국가적 기준, 헌정 질서를 보는 기준이 모두 붕괴했다.
정치가 4류가 된 이유: 도덕과 판단에 우상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가 4류인 이유는 ‘몰라서가 아니다’. 국민이 도덕적 재무장을 거부하고 외면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모습은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진영이 하면 부패가 아니라 ‘정의’, 우리 편이 하면 위법이 아니라 ‘개혁’, 저쪽 편이 하면 문제지만 우리 편은 예외, 헌법은 상대 진영을 공격할 때만 존재 등이다.
이런 태도가 오랫동안 누적되면서, 정치 시스템 전체가 붕괴했다. 조지 오웰의 경고 그대로다. 대중이 도덕을 포기하면, 권력은 폭주한다. 오늘 한국에서 정치적 광기와 법치 붕괴, 진영 폭력, 언론의 무기력, 팬덤의 광신성, 종족주의적 찬반 구도는 모두 도덕적 해체가 낳은 결과이다.
지금 이 나라가 직면한 가장 큰 위기: ‘동물농장의 현실화’
오웰의 동물농장 말미에서, 동물들은 인간과 돼지가 섞여 술판을 벌이는 모습을 지켜본다. “도대체 누가 인간이고, 누가 돼지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오늘 한국의 상황과 얼마나 닮았는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적폐 청산’을 외치며 ‘우리 진영의 독재’를 정당화한다. 국민의 분열은 심화되고, 국가는 방향을 잃는다. 그리고 정치인들은 더 교묘하고 더 뻔뻔하게 도덕을 유린하고 증오를 발설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권교체가 아니다. 필요한 것은 의식의 교체, 즉 도덕 재무장이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종족주의와 팬덤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치인을 ‘우리 편 전사(戰士)’가 아니라, ‘국가의 공적 기능자’로 보아야 한다. 그 기준을 세우지 못하면 어떤 지도자를 세워도 결국 새로운 동물농장이 탄생할 뿐이다.
한국은 다시 서는데 언론이 언론다워야
미국 FBI 국장이 한국을 방문해 정치폭력 집단·극단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AWEB을 사용하는 문제점을 경고하였지만 한국 정치권과 언론은 귀를 닫고 있다. 한국은 지금 정치적·도덕적 붕괴의 벼랑 끝에 서 있다. 우리가 다시 서려면 다음이 필요하다.
진영·팬덤·종족주의를 끊고 국가 기준을 회복하는 도덕 재무장이 필요하며 사후 비난이 아닌, 사전 경고의 언론으로 복원하며 진실과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불편부당한 사실 보도와 정치적 욕망이 아니라 국가의 지속성을 우선하는 헌정 질서 존중, 저질 정치인 퇴출, 전문가 정치의 강화하는 정치 시장의 정화가 필요하다. 보고 싶은 현실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는 눈을 가진 국민 의식의 변화가 요구된다. 정치인은 거울이다. 거울이 더럽다면 국민의 얼굴이 더러운 것이다.
동물농장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거울을 바꿀 때가 되었다. 한국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다가오고 있다. 도덕과 국가이익을 중심에 놓는 새로운 시민의식이 없으면, 이 나라는 앞으로도 영원히 ‘돼지와 인간의 구분이 사라진 농장’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것이다. 나라가 이 상태가 된 데에는 권력과 야합한 언론과 지식인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볼수 있다.
한미일보 편집위원·한국전략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