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유엔 산하기구 31개와 비(非)유엔기구 35개에서 미국이 탈퇴하는 대통령 각서에 서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지난 7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유엔 산하 66개 국제기구로부터의 탈퇴를 선언했다. 이 선언은 트럼프 행정부의 행정명령을 입법화하기 위해 작년 2월부터 공화당의 상하 양원에서 추진해 오고 있는 ‘유엔 완전 탈퇴 법안(Disengaging Entirely from the United Nations Debacle Act·DEFUND Act)’ 통과의 시도와 연동돼 있다.
미 국무부는 유엔기구들이 “미국의 주권을 제약하고, 진보적 이데올로기와 글로벌 거버넌스라는 명목 아래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행위자들”이란 중국·러시아 등 반미 국가들임은 불문가지다.
이 선언은 겉으로 보기엔 ‘미국 우선주의’에 입각한 국제기구의 개혁을 의도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복잡한 지정학적·지경학적 계산이 깔려 있다. 무엇보다 트럼프가 유엔 탈퇴를 선언한 이면에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동기가 있어 보인다.
유엔 탈퇴… 국내 정치적 입지 강화, 재정부담 축소 의도
첫째, 국제적 비난 회피 및 국내 정치적 입지 강화이다.
최근 미군 작전으로 체포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사건에 대해 국제사회가 퍼붓는 비난의 예봉을 피해 가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유엔 탈퇴 선언을 통해 향후 유사한 군사작전에 대한 국제적 감시와 제재를 약화시키려는 의지도 숨어 있다. 동시에 미국 국내적으로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공약을 이행하는 모습을 보이며 지지층을 결집하는 효과도 노린 것 같다.
둘째는 재정부담을 덜어 보려는 것이다. 미국은 현재 유엔 분담금의 2년 치인 약 15억 달러를 체납하고 있으며, 올해(2026년) 예산안에서도 대규모 삭감을 제안했다. 탈퇴를 통해 누적된 미지급금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향후 납부 의무에서도 벗어나려는 실리적인 계산이 작용했을 것이다. 유엔 헌장 제19조에 따르면, 분담금 체납 시 총회 투표권이 정지될 수 있는데, 탈퇴는 이러한 법적 책임을 원천적으로 회피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트럼프의 유엔 탈퇴 선언의 전략적 맥락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선 트럼프 행정부 상층부 수준의 대중국 전략의 전모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에너지, 불법 자금, 금융 통한 中 목줄 조이기
2025년 12월 발표된 미국 국가안보전략(NSS)은 경제 영역을 미중경쟁의 ‘궁극적 전장’으로 규정하며, 군사적 충돌 대신 경제적 수단을 통해 중국을 억제하겠다는 의도를 명확히 한 바 있다. 이 전략의 핵심은 에너지, 불법 자금, 금융이라는 세 경로로 중국의 경제적 생명줄을 차단하는 것이다.
먼저, 에너지 공급 차단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베네수엘라산 원유의 유조선 나포와 이란 무역 제재로 중국의 에너지 수입경로를 차단하고 있다. 중국이 전 세계 석유 수입의 10%를 베네수엘라에서, 7%를 이란에서 조달하는 만큼, 이러한 공급 경로의 단절은 중국의 에너지안보에 직결된 문제다.
다음으로 불법 자금줄 차단이다.
미국은 태국과 캄보디아 등 동남아 국가들과의 공조로 중국계 범죄 조직을 소탕하고 있으며, 태국 당국도 2025년 12월 피싱·스캠 조직 자산 3억 1,800만 달러를 동결했다. 연간 수십 억 달러 규모로 추정되는 이러한 불법 자금 통로의 차단은 중국의 자본 유출을 직접 제어하는 수단이다.
마지막으로 선별적 금융제재다.
전면적 ‘스위프트 배제(특정 국가의 모든 은행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에서 퇴출시키는 것)’ 대신 미 재무부 산하 해외자산통제국(OFAC)이 관리하는 특별지정 제재 대상자 명단(SDN)에 올리는 것, 군산복합체 기업(NS-CMIC) 투자 금지, 첨단기술 분야에 대한 미국 자본 투자 제한 등 정교한 단계적 제재를 가하고 있다. 이는 중국 경제 전체를 급진적으로 붕괴시키지 않으면서도 전략적으로 중요한 핵심 부문을 타격하는 방식이다.
이것이 트럼프의 이른바 ‘경제적 교살(Economic Strangulation)’ 전략이다. 유엔 탈퇴 선언은 이러한 경제적 압박전략을 강화하기 위해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려는 의지로 해석할 수 있다.
美 유엔 부재… 中 ‘다자주의의 수호자’로 자리매김할 절호의 기회
중국은 지난 수십 년간 유엔을 포함한 다자주의 기구 내에서 강대국·약소국 간의 평등을 부르짖으면서 개발도상국의 리더로 자처하며 정치적·경제적 영향력을 꾸준히 확대해 왔다.
미·중의 영향력 대결이 지구적 차원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확산되는 양상을 띠고 있는 가운데 역설적이게도 미국이 유엔에서 탈퇴하거나 영향력을 줄이면 오히려 중국의 국제적 입지를 더욱 강고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미국의 유엔 부재는 중국에게 ‘다자주의의 수호자’로 자리매김할 절호의 기회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동시에 미국은 국제법적 제약을 받지 않고 독자적인 대중국 압박 및 제재를 밀어붙일 수 있는 자유를 확보하는 의미가 있다.
미국이 생각하고 있는 유엔 탈퇴 후의 전략적 복안은 무엇일까?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유엔 탈퇴 이후, 미국 주도의 새로운 국제질서를 모색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과 관계가 깊어 보인다. 이는 기존의 보편적 다자주의와는 다른 특징을 가진다.
첫째, 거래적 일방주의 및 선택적 다자주의다.
국익에 따라 양자 협력을 강화하고, 미국에 유리한 기구에만 선택적으로 참여하는 방식이다. 호주·영국·미국 안보동맹(AUKUS) 강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국에 대한 방위비 분담 증액 요구 등이 그 예이다.
둘째, 새로운 연합의 구축이다.
‘자유국가연합(Coalition of the Free)’과 같은 가치 기반의 동맹을 구축하고, 인도·태평양 전략을 통해 단기적으로는 중국을 견제하고 장기적으로는 중국공산당을 압살시키려는 구상이다. 이는 1917년 러시아 볼셰비키혁명 발발 후 영국·프랑스, 미국·일본이 유라시아의 동서 양쪽에 포위해서 레닌 정권을 고사시키려고 했던 시도와 닮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안 전략은 일정한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 전염병·기후변화 같은 글로벌 문제는 미·중의 양자 협력만으로도 해결이 불가능하며, 동맹국들 간의 신뢰 하락은 결국 미국의 영향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국제규범의 붕괴는 국제질서의 혼란을 야기하고, 역설적으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가속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요컨대 미국이 유엔이라는 국제기구에서 물러나면 물러날수록, 중국이 국제무대에서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는 공간이 더욱 넓어지는 것이다.
필자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국 압박과 국제기구 무력화 시도가 중공의 붕괴보다는, 단기적으론 전 세계가 두 개의 거대 블록으로 나뉘는 ‘신냉전’ 구도를 가속화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판단한다.
미국의 일방주의… 중국 중심 반미 세력 결집 촉진
미국의 일방주의는 역설적으로 중국을 중심으로 한 반미 세력의 결집을 촉진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 브릭스(BRICS·미국에 대항하는 11개 신흥국 연합체)의 확장이 있다. 금년 1월, 중국·러시아·이란 등 9개국이 참여하는 ‘평화의 의지(Will for Peace)’ 연합 해상 훈련은 브릭스가 경제협의체를 넘어 서방 진영, 특히 미국에 대항하는 군사·안보 협력체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동향이다.
이는 미국 중심의 안보 질서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다. 특히 미국의 제재를 받는 이란이 연합훈련에 참여한 것은 이 훈련이 반미 연대의 성격을 띠고 있음을 말해 준다. 새해 벽두부터, 미국의 국제기구 탈퇴 선언과 브릭스의 첫 대규모 연합 해상 훈련이 동시에 일어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더욱 주목할 점은 브릭스가 미국의 금융제재에 맞서 ‘탈달러화(de-dollarization)’를 가속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25년 말, 브릭스는 회원국 간 무역 결제를 위한 ‘UNIT’라는 새로운 공동 통화 개발에 착수했으며, 중국이 주도하는 위안화 국제결제시스템(CIPS)의 사용을 확대하고 있다.
이는 달러와 SWIFT가 지배하는 기존 국제 금융 시스템에 대한 정면 도전이며, 세계 경제를 두 개의 분리된 금융 블록으로 나눌 수 있는 잠재력이 내재돼 있다. 세계가 군사와 함께 금융 및 경제 분야에서 미국 중심의 서방 블록과 중국·러시아 중심의 남반구 블록으로 나뉘는 새로운 진영 대결의 시대에 진입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中에 대한 ‘지경학적 삭제’ … 양극 체제를 고착화시킬 것
트럼프의 정책은 장기적으론 중공을 붕괴시킬 수 있을진 몰라도 당장 지금 눈앞에선 중공을 파산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중국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여 전 세계를 더 깊은 분열과 갈등의 시대로 이끌 수 있다. 서방의 전례 없는 제재에도 불구하고 성장세를 유지한 러시아의 사례에서 보듯이 거대 경제의 저항력은 예상을 뛰어넘는다.
세계는 지금 상호 의존이 갈등을 억제하던 시대를 지나, 상호 의존 자체가 무기가 되는 새로운 지정학적·지경학적 현실에 직면해 있다. 미국의 일방주의와 국제기구 무력화 시도는 냉전 시대의 ‘봉쇄(Containment)’와는 다른, 특정 산업과 지역에서 중국을 배제하고 고립시키려는 ‘지경학적 삭제(Geoeconomic Erasure)’로 봐도 된다.
이러한 전략이 당장 중국의 파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지만, 국제질서의 근본적인 재편과 양극 체제의 고착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
DEFUND Act가 현재 형태로는 미 의회를 통과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러나 부분적 탈퇴나 재정 지원 축소 형태의 타협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 법안의 통과 여부와 별개로 우리가 주시해야 할 포인트가 있다. 미국이 유엔에서 나와 버리면 그로 인해 생겨난 공백을 중국이 자국 영향력의 확대를 위한 기회의 공간으로 삼으려고 할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이 탈퇴하지 않을 경우, 미·중 간의 보이지 않는 체제 경쟁과 영향력 다툼은 유엔으로까지 무대가 옮겨질 것이며, 기술 표준, 디지털 거버넌스, 개발 금융 등 다양한 분야에서 양국의 대립은 전 지구적 수준에서 더욱 격화될 전망이다. 과연, 미국이 이번 사태로 한번 훼손된 리더십과 국제 사회의 신뢰를 어떻게 회복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