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현지시간)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오른쪽)이 미국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과 핵심 광물 협력과 시장 동향, 한·미 간 무역·투자 협정의 이행 상황을 점검하는 양자 회담을 가졌다. [사진=재정경제부]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이 최근 원화 약세가 한국의 경제 펀더멘털과 맞지 않는다고 언급하자, 외환시장에서는 이를 환율 평가가 아닌 대미 투자 구조를 겨냥한 신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환율 방어에는 숨통이 트였다는 평가와 함께, 한·미 경제 협력의 본심이 투자에 있음을 재확인한 메시지라는 분석이 동시에 제기된다.
베센트 장관의 발언은 12일(현지 시간) 구윤철 한국 부총리와의 면담에서 있었던 것으로 14일(현지시간) 보도자료를 통해 공개됐다. 해당 회동은 핵심 광물 협력과 시장 동향, 한·미 간 무역·투자 협정의 이행 상황을 점검하는 자리였다.
미국 재무장관이 동맹국 통화를 직접 언급하는 경우가 드문 점을 감안하면, 이번 발언은 환율 수준 자체보다 협정 이행 과정에서의 구조적 정합성을 점검하는 성격이 강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외환시장 전문가는 “미 재무장관이 동맹국 통화를 직접 언급하면서도 환율 조작이나 외환시장 개입 문제를 거론하지 않은 것은 이례적”이라며 “단기적으로는 한국 당국의 환율 방어에 대한 외교적 부담이 다소 완화됐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최근 통상·산업 정책 기조는 분명하다.
반도체법(CHIPS Act),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을 통해 동맹국의 대미 수출 확대보다 미국 내 생산과 고용을 수반한 직접투자를 핵심 목표로 삼아 왔다.
관세나 무역 압박보다 투자를 통해 공급망을 미국 안으로 재편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한국은 반도체, 배터리, 핵심 광물 분야의 주요 투자 파트너로 부상해 왔다.
이 같은 맥락에서 원화 약세는 미국 입장에서 불편한 변수로 작용한다.
원화 가치 하락은 한국 수출에는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지만, 대미 직접투자에는 반대의 효과를 낸다.
해외 직접투자(FDI)는 투자 비용과 수익이 모두 달러 기준으로 산정되는 구조여서, 원화 약세는 한국 기업이 동일한 달러 투자를 집행하는 데 더 많은 원화를 필요로 하게 만든다.
환율이 오를수록 미국 현지 투자 비용 부담이 커지는 셈이다.
국제금융 분야의 한 전문가는 “미국이 최근 동맹국과의 경제 협력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은 수출 확대가 아니라 미국 내 투자”라며 “베센트 장관의 발언은 환율 수준 자체보다, 원화 약세가 대미 투자 구조에 미치는 영향을 의식한 메시지로 보는 게 타당하다”고 해석했다.
베센트 장관이 “원화 약세가 펀더멘털과 맞지 않는다”고 표현한 대목 역시 이런 구조적 배경과 맞물린다.
이는 한국 경제의 기초 체력에 대한 의문이라기보다, 한·미가 합의한 투자 중심 협력 구조에 비춰볼 때 환율 흐름이 어긋나고 있다는 문제 제기에 가깝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발언에는 ‘환율 조작’이나 ‘불공정 경쟁’과 같은 표현이 등장하지 않았다.
통상 미 재무부가 외환시장 개입을 문제 삼을 경우에는 ‘일방적이고 지속적인 개입(persistent one-sided intervention)’이나 ‘환율 조작(currency manipulation)’과 같은 정형화된 용어를 사용해 왔다.
전직 통상 당국자는 “미국이 외환시장 개입을 문제 삼을 때는 표현 수위가 명확히 달라진다”며 “이번 발언은 개입을 용인했다기보다, 협정 이행 국면에서 일단 유보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환율 흐름이 투자 위축이나 무역 왜곡으로 이어질 경우 언제든 다시 쟁점화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한국 입장에서는 단기적으로 환율 방어에 대한 외교적 부담이 다소 완화됐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다만 이를 외환시장 개입에 대한 면책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원화 약세가 장기화되거나, 그 결과가 대미 투자 위축이나 수출 편중 구조로 이어질 경우 상황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베센트 장관의 발언은 환율 자체에 대한 평가라기보다, 한·미 경제 관계의 무게 중심이 무역에서 투자로 이동했음을 재확인한 이중 신호로 해석된다.
한국 입장에서는 환율 방어에 숨통이 트인 측면이 있지만, 외환시장 변동성이 해소됐다고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점에서 시장의 경계는 이어지고 있다.
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