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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의 난중일기] ② 혁명의 역설! 정의가 만든 지옥
  • 방민호 교수
  • 등록 2026-01-15 23: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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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메네이여 보고 있나. 당신의 테헤란이 불타고 있다!” [사진=유튜브 캡처]

지금 시각 새벽 3시53분. 작은 호텔 6층 창밖으로 보이는 외국의 깊고 어두운 풍경은 눈뜬 사람의 눈에 무척이나 평화로워 보인다. 며칠 전부터 이란에 대해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테헤란이, 아니 이란 전역이 불타고 있다. 

 

외신은 학살당한 사람들의 숫자를 숨 가쁘게 키워 갔다. 처음에는 500명, 1000명이라 하더니 곧 2000명이 넘을 것이라 했다. 최근에는 6000명에 달할 것이라고도 했다. 지금 시각 유튜브는 희생자가 1만 명, 2만 명을 헤아릴 수도 있을 것이라 전한다. 

 

백색혁명에서 생존의 혁명으로

 

외신이 전하는 학살의 장면 장면들은 듣는 사람을 경악하게 한다. 정부는 시위대를 향해 저격수들을 동원했다 한다. 

 

한 여대생의 머리 뒤에 즉결 처형식 근접 사격을 가했다고 한다. 그녀의 이름은 루비나 아미니안, 쿠르드족이라고 했다. 거리에는 치울 수도 없을 만큼 시신들이 수백 구씩 쌓였고, 시신 가방들이 방치된 채 널려들 있다. 

 

여성들이 히잡을 벗어 던지고 있다. 지난 2022년 스물두 살의 쿠르드족 여대생 마흐사 아미니는 히잡을 쓰지 않았다고 해서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도덕경찰이 있어 잡아갔다고 했다. 여성들은 대규모 히잡 시위에 나섰다. 

 히잡을 느슨하게 착용했다는 이유로 마흐사 아미니는 도덕 경찰에 체포된 지 사흘 만에 사망했다. 목격자들은 경관들이 구치소로 연행하는 버스 안에서 아미니를 마구 때려 의식불명 상태에 빠뜨렸다고 증언했다. [사진=아마니 가족 제공]

이번에 시위에 나선 여성들은 더욱 과감해졌다. 히잡을 벗어 던지고 최고 지도자라는 하메네이의 사진을 불태워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이란 당국이 금하는 세 가지 일을 한 번에 저질러 버린 것이다. 

 

이란 당국은 오늘의 지구상에서 가장 야만적인 정권의 하나다. 소위 이슬람혁명 이후 이 정권은 수십 년간이나 독재를 이어왔다. 호메이니에서 하메네이로 장장 47년이다. 

 

국민이 선출하는 대통령도 그 지위는 실질적 권력을 쥔 최고지도자(라흐바르) 아래에 놓인다. 호메이니와 하메네이가 모든 것을 좌우한다. 

 

그들이 죽음으로 내몬, 학살한 국민들은 과연 몇 명일까? 이 글을 쓰는 사이에도 살육은 계속되고 있다. 이만 명이라는 숫자는 부풀려진 것일까?

 

이란의 이 새로운 혁명과 이슬람 정권의 학살, 도살은, 인간이란 얼마나 어리석을 수 있는지, 얼마나 쉽게 저 자신에게 속는 존재인지 말해준다.

 

1979년, 그때는 팔라비(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리는 것이 혁명의 대의라고 믿어졌을 것이다. 국민의 압도적 다수가 이슬람 근본주의 혁명의 편을 들어 주었다. 

 

그 시대는 반제국주의, 반왕정, 반미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팔레비(그때는 그렇게들 불렀다) 국왕의 ‘백색혁명’은 가짜 ‘현대’를 의미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당시 미국의 지원을 받던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 국왕은 토지개혁, 여성 참정권 보장, 문맹 퇴치, 국가주도 사회복지 등을 추진했다. 

 

이중, 토지개혁은 대지주의 토지를 몰수해서 소작농들에게 분배하는 것이었고, 대지주들 상당수가 전통적 성직자들이었다. 

 

여성의 참정권 확대와 사회 진출 정책 역시 성직자층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 모든 것이 반제국주의·반미의 세계 추세와 맞물려 호메이니 ‘옹’의 원리주의 혁명에 불을 당긴 것이었다.

 

그때, 사람들 사이의 한 이상주의적인 청년이 있었다고 하자. 그가 샤(=국왕)의 전제적 통치 대신에 국민 평등의 사회, 제국의 힘으로부터 자유로운 국가를 꿈꾸었다고 하자. 

 

그의 눈에는 이슬람 혁명의 모든 것이 옳고, 또 부자연스럽거나 부조리한 것들도 용인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었을 것이다. 

 

혁명이 반혁명이 되고 반혁명이 혁명이 되다

 

어떤 사회나 국가에서 어떤 것이 옳다면 다른 어떤 것들은 틀린 경우가 많다. 어떤 것에서 앞서 나간다면 어떤 것들에서 뒤쳐진 것일 수 있다. 순진한 이상주의자, 진보주의자, 혁명주의자는 절대적인 ‘선’이 가능하다고 믿는 경우가 많다. 

 

이제 그 청년이 이란 ‘혁명’의 47년을 보내는 사이에 자꾸만 거세게 저항하는 사람들을 목도한다. 그가 지향한 것은 그네들의 벗이 되는 것이었건만, 여성들은 히잡을 벗어 던지고 신성한 최고 지도자의 사진에 불을 당긴다. 

 

팔라비 왕 때가 좋았다고 하고 외국으로 망명 간 왕세자를 지도자로 여긴다. 주기적으로 불어닥치는 저항의 물결은 반혁명 분자들을 아무리 엄하게 처벌하고, 사형까지 집행해도 사그라들지 않는다. 

 

혁명이 반혁명이 되고 반혁명이 혁명이 된 것 같은 놀라운 ‘전도’ ‘물구나무 서기’가 양손에 잔뜩 피칠갑을 한 왕년의 젊은이를 당혹스럽게 한다. 

 

이제 그는 혁명수비대의 총탄에 맞아 쓰러지는 민중들이 미국의 원조를 애타게 기다리는 상황을 기가 막힌 표정 지으며 바라보아야 한다. 매일같이 ‘혁명정부’는 국민을 대규모로 학살, 도살하는 ‘반혁명 정부’임을 스스로 폭로해야 한다. 

 

테헤란이 불타고 있다. 이란 전역이 불타고 있다. 화염에 휩싸인 페르시아 제국이 무너지려 한다. 반혁명적인 압제자들이 파국을 향해 내달리고 있다.

 

우리 사람은 거의 늘 어리석다. 과거에 자신을 불타는 이상주의자로 여긴 자들은 자신의 이념 속에 든 독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 

 

시인 김수영은 시 ‘공자의 생활난’에서 “동무여 이제 나는 바로 보마”라 했다. “사물과 사물의 생리와” “사물의 수량과 한도와” “사물의 우매와 사물의 명석성을” 바로 보고, “그리고 그리고 나는 죽을 것이다”라 했다.

 

나는 이것을 고쳐 말한다. “나는 먼저 죽을 것이다. 그러면 이제 바로 볼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명백해 보이는 것이 지금 하나 있다. 한 사람의 죽음의 선고를 ‘구걸’하는 자들과, 그것이 혁명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바로 보지 못한 것이다. 

 

혁명이라 부르고 싶든, 개혁이라 부르고 싶든 그것은 그들의 자유다. 그러나 그것은 반혁명과 반자유와 새로운 종속에의 길이다. 

 

‘동무여, 그렇지 않겠는가.’

 


 


◆ 방민호 교수

 

문학박사, 서울대 국문과 교수. 계간문학잡지 ‘맥’ 편집주간(2022년~)이자 시인, 소설가, 문학평론가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저서로 ‘연인 심청’(2015), ‘통증의 언어’(2019), ‘한국비평에 다시 묻는다’(2021), 서울문학기행(202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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