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는 13일,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이 과거에 했던 발언에 비해 이번에 내놓은 담화는 “민간단체들이 날리는 수많은 비행물체들의 출현을 목격하게 될 것” 등 발언 수위가 낮아져 “남북 간 긴장 완화와 소통의 여지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평가했다. [사진=조선중앙TV, 연합뉴스]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외교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북한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의 무인기 관련 발언에 대한 정부의 굴욕적 대응, 가역적 9·19 군사합의 복원 논의, 그리고 뜬금없는 ‘한·중·일 소통’ 제안은 서로 다른 분야의 사안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공통된 구조적 문제가 깔려 있다. 바로 안보 지도부의 전략적 감각 부족과 인기몰이 정치가 안보와 외교의 실효성을 약화시키는 현상이다.
북한은 무인기 침투 책임을 우리에게 전가하며 긴장을 높였다. 안보 지도부는 북한의 공세적 주장에 방어적 해명으로 대응하면서 도발 패턴을 고려한 전략적 판단이 부족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북한은 2014년 이후 10여 차례 우리 영공을 침범하고도 사과한 적이 없는데, 이번에 북한의 문제 제기 직후 우리 정부는 서둘러 해명과 수사 지시를 내리며 북한에 끌려가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국방부마저 전략적 억제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우리 군(軍) 기종이 아니다”라는 발언으로 군사기밀까지 노출시켰고 군사적 조치보다 정치를 먼저 고려하는 행위로 국민을 실망시켰다.
9·19 군사합의 복원은 굴욕적 선택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의 9·19 군사합의 복원 언급 역시 전략적 감각 부족을 드러냈다. 정부는 긴장 완화와 대화 재개의 명분을 내세우며 9·19 군사합의 전면 복원과 단계적 복원을 동시에 검토한다고 하지만, 북한은 이미 군사분계선 일대를 사실상의 국경선처럼 만들며 군사합의를 무력화했고, 포병·정찰·무인기 활동을 합의 이전의 수준으로 되돌렸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먼저 군사적 제약을 다시 받아들이는 것은 현실을 무시한 굴욕적 선택이다. 9·19 군사합의 복원은 감시·정찰 능력 약화, 도발 억제력 저하, 북한의 기정사실화 전략 가속 등 부정적 결과가 예상되는데도, 정부는 정치적 평화 메시지에 치중한 나머지 전략적 대응 자체를 못 하고 있다.
군사합의 복원은 북한의 변화라는 조건이 충족될 때에만 의미가 있다. 그러나 북한은 단 한 번도 합의를 성실히 이행한 적이 없고, 오히려 합의를 자신들의 전략적 이익을 위해 활용해 왔다. 그럼에도 우리가 먼저 제약을 수용하는 모양새를 보이면, 북한은 이를 약점으로 간주하고 더 큰 압박을 시도할 것이다. 결국 9·19 군사합의 복원 논의는 ‘눈에는 눈’이라는 군사 원칙도 무시하고 정치적 상징을 앞세운 결과이며, 전략적 감각의 부재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굴복이자 항복이다.
‘한·중·일 소통’ 제안… 전략적 감각 부족을 드러낸 사례
‘한·중·일 소통’ 제안도 전략적 감각 부족을 드러냈다. 이재명 대통령이 일본과의 정상회담에서 동북아시아 협력의 틀을 복원하자고 제안한 것은 새로운 외교적 의지의 표현일 수 있다. 그러나 중국 대변자 모습을 보인 한·중 회담에 이어 ‘한·중·일 소통’을 제안한 것은 중국에 단단히 잡혀 버린 모양새를 드러낸 것과 다를 바 없다.
중국은 힘 중심의 외교를 강화하며 미국 견제에 집중하고 있고, 일본은 한·미·일 안보 협력을 우선하며 중국을 견제하는 전략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은 균형 외교를 지향한다고 하지만, 미·중 패권 경쟁이 격화된 환경에서 중국으로 기운 모습은 스스로 선택과 운명의 폭을 좁히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이란 사태로 중동이 균열을 일으키고, 중국과 북한마저 곤란해진 상태에서 ‘한·미·일 공조’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기에 ‘한·중·일 소통’이라는 정치적 메시지를 앞세우는 것은 선언만 남는 말 잔치에 불과하고 현실적 동력도 없다. 보이지 않는 ‘FAFO(Fuck Around and Find Out·함부로 까불다가 진짜 큰코다친다)’를 실현시킬 빌미를 제공하고 안보 파탄을 초래할 위험마저 존재하여 내심 불안할 뿐이다.
외교는 의지보다 조건, 협력은 선언보다 이해관계가 우선
외교는 의지보다 조건이 중요하고, 협력은 선언보다 이해관계가 우선한다. 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구조적 제약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반역적 협력의 틀만 제안하고 있다. 이는 외교적 현실을 냉정하게 분석하기보다 정치적 평화 상징을 우선시한 접근으로 보이며, 전략적 감각 부족으로 국가의 생존을 위협하는 또 하나의 사례다.
결국 김여정의 무인기 발언에 대한 굴욕적 대응과 9·19 군사합의 복원 논의, ‘한·중·일 소통’ 제안은 모두 정치적 메시지가 힘의 안보보다 앞설 때 발생하는 문제를 보여준다. 안보와 외교는 의지나 선언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상대의 전략, 주변국의 이해관계, 군사적 역학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그에 맞는 실질적 대응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최근의 일련의 대응은 전략적 사고의 부족으로 국제 정치의 부채를 증가시키고, 전략적 일관성도 없이 장소를 옮겨가며 상대가 당장 듣기 좋은 상징적 미사여구만 남발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되었다.
필요한 것은 보여주기식 선언이 아니라 전략적 판단
안보 지도부의 전략적 감각 부재와 인기몰이에 몰두하는 포퓰리즘 정치는 결국 국가의 생존을 위태롭게 하고, 적에게 주도권을 넘겨주는 결과만 남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보여주기식 선언이 아니라 냉정한 현실 인식과 힘의 균형을 고려한 전략적 판단이다. 안보와 외교는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국가 생존의 문제이며, 그 무게를 직시할 때만 대한민국은 흔들리지 않는다. 민심과 군심은 굴욕적인 9·19 군사합의 복원보다 현 안보 지도부 전면 교체를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