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것이 좋아’(오른쪽)를 리메이크한 뮤지컬 ‘슈가’.
1920년대의 시카고는 범죄와 부패가 난무하는 광란의 도시였다. 미국은 청교도적 윤리관과 식량 절약을 명분으로 금주법을 시행하지만 도리어 마피아가 활개를 치고 비밀 바가 횡횡하는 등 도시는 깊은 혼돈 속으로 빠져든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법이 금지하면 나쁜 놈들이 그것을 공급하게 되어 있다.
이러한 정서는 뮤지컬 ‘시카고’를 통해 잘 묘사돼 있으며 이번에 관람한 시카고 배경의 뮤지컬 ‘슈가’에도 잘 나타나 있다.
한겨울, 강남에 상륙한 ‘뜨거운 것이 좋아’
뮤지컬 ‘슈가’는 어릴 적 명화극장에서 보았던 ‘뜨거운 것이 좋아’의 스토리 라인을 충실하게 따라간다.

‘슈가’는 ‘이것이 바로 뮤지컬’이라고 할 만큼 장르의 장점을 100% 활용한 작품이다. [사진=PR컴퍼니]
가난한 뮤지션 조와 제리는 일자리를 구해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우연히 갱단 두목 스패츠의 살인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스패츠 일당은 두 사람을 제거하려 부하들을 풀고 조와 제리는 살아남기 위해 마이애미로 향하는 기차에 잠입한다.
시카고를 떠나 따뜻한 남쪽 도시 마이애미에 도착한 조와 제리는 각기 조세핀과 대프니로 변장, 여성 밴드 단원으로 활동한다.
두 사람은 기차에서 만난 매력적인 단원 슈가에 동시에 반하는데 하필 늙은 백만장자인 ‘오스굿 필딩’이 나타나 제리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할 수 없이 제리는 조와 슈가의 사랑을 응원하며 백만장자와의 슬픈 파티를 즐긴다.
그러는 동안 스패츠 일당이 두 사람을 찾아 마이애미로 스며들고 엎치락 뒤치락 추격전이 펼쳐진다. 스패츠 일당은 자멸하고 조와 슈가, 오스굿 필딩과 제리가 각기 사랑을 이루는(?) 것으로 극은 막을 내린다.
‘슈가’는 ‘이것이 바로 뮤지컬’이라고 할 만큼 이 장르의 장점을 100% 활용한 작품이었다.
대중적인 서사에 화려한 볼거리로 무장한 슈가는 배우들의 연기, 노래, 춤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시종일관 관객의 눈과 귀를 붙잡아 둔다.
이홍기와 김형묵의 열연 돋보여
내가 관람한 회차에는 조 역에 이홍기, 제리 역에 김형묵이 캐스팅돼 어릴 적 보았던 ‘뜨거운 것이 좋아’의 배우들과 비교하면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조 역에 이홍기(왼쪽), 제리 역에 김형묵. [사진=PR컴퍼니]
뮤지컬 ‘슈가’는 2월22일까지 서초구 한전아트센터 무대에서 만날 수 있다. [사진=임요희 기자]
영화 속 조 역의 토니커티스는 여자라기에는 너무나 선이 굶은 얼굴이어서 어떻게 저 사람이 남자인 걸 모르지? 의아해하면서 봤다.
반면 이번에 조 역을 소화한 이홍기는 체구도 아담하고 얼굴선도 고와서, 나라도 여자라고 속겠네 하는 기분이었다.
또 잭 레먼이 연기했던 제리는 누가 봐도 남자였지만, 사랑하는 슈가를 친구에게 양보하는 마음을 너무나 잘 표현해 어린 마음에도 찡했던 기억이 있다.
김형묵이 맡은 제리는 너무나 거구인 데다 부리부리한 눈매 때문에 도무지 여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재미 요소가 상승하는 효과가 있었다. 김형묵은 오히려 그 옛날 조 역의 토니 커티스를 떠올리게 하는 면이 있다.
슈가 역의 솔라는 안타깝지만 데미지를 깔고 갈 수밖에 없다. 그도 충분히 잘했지만 존재 자체가 전설인 마릴린 먼로를 넘어설 수는 없다. 심지 없는 목소리로 알콜중독자 슈가를 완벽하게 연기한 마릴린 먼로는 그 역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었기에.
1920년대 시카고를 2026년 서울 양재동에 재현한 뮤지컬 슈가. 아기자기한 스토리와 배우들의 화려한 퍼포먼스, 코믹한 극 전개는 나무랄 데 없었지만 그에 비해 무대 장치가 조금 소박했다는 느낌은 있다.
뮤지컬 ‘슈가’는 22일까지 서울 서초구 한전아트센터 무대에서 만날 수 있다.
임요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