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보궐선거의 의미를 축소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를 두고 “미국 민심이 크게 바뀌었다” “트럼프 집권 1년 만에 바닥 민심 이반이 가시화됐다”고 단정하는 것은 시기상조를 넘어 왜곡이고 선동에 가깝다. [사진=백악관]
미국 민주당 소속 테일러 레멧이 텍사스 태런트카운티(Tarrant County) 주상원의원 보궐 결선투표에서 리 웜스갠스 공화당 후보를 큰 격차로 누르고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승리를 거뒀다.
이번 보궐선거 결과를 두고 한국과 미국의 레거시 미디어는 일제히 “공화당 텃밭에서의 참패”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바닥 민심 이반이 가시화됐다”는 식의 해석을 쏟아냈다.
또 텍사스 주의회 상원 보궐선거에서 민주당 후보가 승리했다는 사실 하나를 근거로 “미국 민심이 크게 바뀌고 있으며 그 원인이 트럼프의 ICE를 통한 이민 단속 때문에 라티노·히스패닉이 공화당에 등을 돌렸다”고 서둘러 결론을 내렸다.
보궐선거에 대한 낮은 관심도로 다수 유권자 불참
통상적으로 보궐선거는 관심도와 투표율이 낮다. 그리고 그 결과를 곧바로 전국 민심의 바로미터로 해석하는 것은 정치 분석의 기본을 벗어난다.
그럼에도 미국 주류 방송은 물론 중앙일보·연합뉴스·경향신문 등 국내 주요 매체도 “공화당의 심장부에서조차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민심 이반이 드러났다”는 표현을 반복했다.
해당 지역구는 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약 17%포인트 차이로 승리했던 곳이다. 이 점만 떼어 놓고 보면 “불과 1년3개월 만에 표심이 정반대로 뒤집혔다”는 표현이 그럴듯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아 결선투표로 이어졌다.
1차 투표에서 민주당 후보는 47.57%를 얻었고, 공화당 후보 두 명이 각각 35.94%, 16.49%를 기록했다. 두 공화당 후보의 득표를 합치면 52%를 넘는다. 단일 후보 구도였다면 공화당이 이겼을 가능성이 높았다.
결선투표에서 나타난 변화의 핵심은 ‘표심 이동’이 아니라 ‘투표 이탈’이다.
2024년 11월 1차 투표 당시 총 투표자는 약 11만8000명이었으나, 결선투표에서는 약 9만 4000명으로 줄었다. 약 2만4000명이 투표장에 나오지 않은 것이다.
민주당 후보는 1차 투표에서 약 5만6000표를 얻었다가 결선에서 약 5만4000표로 2000여 표 감소하는 데 그쳤다.
반면 공화당 후보 진영에서는 1차 투표에서 두 후보에게 갔던 표 중 상당수가 결선에서 투표로 이어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공화당 성향 유권자 약 2만 명이 투표를 포기하면서 민주당 후보가 14~15%포인트 차이의 ‘대승’처럼 보이는 결과가 만들어졌다.
이 현상을 두고 과연 “민심이 민주당으로 뒤집혔다”고 말할 수 있는가.
단순 수치만 봐도 결론은 그렇지 않다. 이는 표의 이동이 아니라 투표율 하락, 그것도 특정 진영에서의 투표 이탈이 만들어낸 결과다.
결선투표 당일 텍사스 지역에 한파와 악천후가 있었다는 점, 공화당 후보가 지역 연고가 약했다는 점, 민주당 후보가 전직 군인 출신으로 비교적 중도적이고 노동자 생활 개선 등 공화당 유권자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정책을 내세웠다는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더 설득력을 갖는다.
그럼에도 레거시 미디어는 이러한 맥락을 거의 다루지 않았다. 대신 “트럼프의 ICE 정책에 대한 반감” “이민자 단속으로 인한 히스패닉 유권자의 이탈”이라는 설명을 결과에 덧씌웠다.
그러나 이 선거에서 히스패닉 유권자가 집단적으로 민주당으로 이동했다는 명확한 증거는 없다. 오히려 다수의 공화당 성향 유권자가 결선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
민주당 의석 민주당이 이어받았을 뿐
같은 시기 치러진 텍사스 제18선거구는 휴스턴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민주당 강세 지역이다. 이번 보궐선거는 현역 의원이던 실베스터 터너(Sylvester Turner, 민주당)가 2024년에 사망하면서 공석이 되어 실시되었다.
즉, 공화당이 차지하던 의석을 민주당이 빼앗은 선거가 아니라, 민주당 의석을 민주당이 그대로 유지한 선거다.
텍사스 제18선거구 연방 하원 보궐선거 보도 역시 유사한 왜곡을 보여준다.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자 언론은 “텍사스에서 민주당이 또 승리했다” “공화당 의석이 줄어들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 선거구는 원래 민주당 소속 의원의 지역구였고, 해당 의원의 사망으로 보궐선거가 실시된 것이다.
즉 민주당 지역구에 다시 민주당 의원이 들어간 것에 불과하다. 결선투표에서 맞붙은 두 후보 역시 모두 민주당이었다.
이러한 보도 행태는 텍사스 보궐선거 결과를 객관적으로 전달하기보다 “공화당 위기론” “트럼프 위기론”이라는 서사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같은 시점 공개된 정치 자금 모금 현황을 보면, 공화당 전국위원회는 약 9500만 달러의 자금을 모집한 반면, 민주당 전국위원회는 1400만 달러 수준에 그치며 상당한 부채를 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은 재정과 리더십 모두에서 구조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이번 텍사스 보궐선거의 의미를 축소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를 두고 “미국 민심이 크게 바뀌었다” “트럼프 집권 1년 만에 바닥 민심 이반이 가시화됐다”고 단정하는 것은 시기상조를 넘어 왜곡이고 선동에 가깝다.
텍사스의 두 보궐선거는 공화당의 참패를 증명하지 않는다. 하나는 투표 이탈로 만들어진 결과였고, 다른 하나는 원래 민주당 지역구의 단순한 승계였다.
그럼에도 레거시 미디어는 이를 ‘충격적인 패배’와 ‘민심 대전환’으로 포장했다. 선거 결과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처럼 단편적 사건을 확대 재생산하며 여론을 흔드는 보도 관행 그 자체다.
한미일보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