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이정현 대표 2016.08.23 [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 이정현이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던진 메시지는 단순한 공천 원칙이 아니라 보수 정치의 생존 선언에 가깝다.
“욕먹을 각오”, “불출마 권고”, “내부 반발 감수”라는 표현은 익숙한 정치 수사가 아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보수가 가장 하지 못했던 선택을 정면으로 언급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만약 이 말이 실제 공천 과정에서 그대로 실행된다면, 국민의힘은 단순한 선거 전략을 넘어 체질 자체를 바꾸는 환골탈태의 길로 들어설 가능성이 있다.
보수 정치가 반복적으로 무너졌던 이유는 외부 공격 때문만이 아니었다. 선거가 끝날 때마다 지도부는 교체됐지만 공천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기는 후보를 찾기보다 살아남을 사람을 고르는 방식, 국민이 아닌 내부 세력을 기준으로 삼는 관행이 반복됐다.
그 결과 선거는 연패했고, 혁신이라는 단어는 선언으로만 남았다.
이정현의 발언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현직도 자동 통과 없다”는 대목이다.
한국 정치에서 현역 교체는 늘 말은 많았지만 실제로는 가장 어려운 영역이었다. 지역 기반, 계파 구조, 조직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결국 타협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만약 지지율과 직무 평가를 기준으로 현역이 과감히 정리한다면, 그것만으로도 공천의 기준선은 크게 이동하게 된다.
보수 정치가 스스로 만든 기득권의 벽을 넘을 수 있느냐가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그러나 선언만으로는 부족하다.
공천은 사람을 교체하는 일이 아니라 구조를 교체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공개 오디션식 경선, 정책 발표, 시민 배심원 평가 같은 방식이 실제로 도입된다면 정치의 진입 장벽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 보수가 말로만 외쳐왔던 “능력 중심 정치”가 제도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이다.
반대로 이 과정이 또 다른 줄 세우기나 이벤트성 장치로 끝난다면, 이번 선언 역시 과거 혁신위원회의 문구처럼 기억 속에서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중앙당 공관위 제1차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여기서 현실적인 질문이 등장한다.
현역을 과감히 교체한다면 그 자리를 누가 채울 것인가.
보수 정치가 마주한 가장 냉정한 문제는 계파 갈등이 아니라 ‘인물난’이다.
지방선거는 중앙 정치의 스타보다 지역에서 검증된 실무형 인물이 필요하지만, 당 내부 인재 풀은 점점 얇아지고 있다.
결국 공천개혁이 진짜라면 답은 하나다. 당 안에서만 인재를 돌려 쓰는 구조를 끊고, 보수권 소수정당과의 연대라는 인재 수급로를 열어야 한다.
보수권 소수당과의 연대는 정치적 이벤트가 아니라 공천 구조의 확장이다. 지역 기반을 가진 소수 정당, 정책 중심 시민그룹, 외곽 정치세력과의 후보 조정은 단순한 의석 나눠먹기가 아니다.
현역을 교체할 때 가장 먼저 부딪히는 ‘대체재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현실적 방법이기 때문이다.
공천개혁이 선언으로 끝나는 가장 큰 이유는 반발이 아니라 대안 인물의 부재였다. 연대형 공천은 바로 그 빈칸을 채우는 장치다.
지방선거는 대선과 다르다.
인물의 체급보다 생활 정치의 신뢰가 더 크게 작용한다. 그래서 공천은 곧 선거 결과다.
지금까지 보수는 대선 프레임을 지방선거에 그대로 가져오며 실패해왔다. 이번에야말로 지역에서 실제로 일할 사람을 세우는 구조가 만들어진다면, 보수 정치의 언어도 달라질 수 있다.
‘누가 우리 편인가’가 아니라 ‘누가 이길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연대에는 함정도 있다.
과거 보수 정치가 실패했던 이유 중 하나는 원칙 없는 단일화였다.
그래서 이번 연대는 기준이 필요하다.
첫째, 연대는 자리 배분이 아니라 경쟁력 검증이어야 한다.
둘째, 후보 선정 과정은 당내 공천과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셋째, 연대의 결과는 반드시 지역 유권자의 평가로 환원돼야 한다.
이 세 가지가 지켜지지 않는다면 연대는 혁신이 아니라 또 다른 줄 세우기로 변질될 것이다.
물론 내부 반발은 불가피하다. 현역 교체와 측근 배제는 언제나 가장 큰 갈등을 부른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갈등이 없다면 혁신도 없다.
정치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욕을 먹지 않는 개혁이다. 누구도 불편하지 않다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보수 정치의 위기는 오래됐다.
탄핵 이후의 혼란, 반복된 선거 패배, 지도부 교체의 악순환 속에서 신뢰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이번 공천이 단순한 선거 준비가 아니라 마지막 수술대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국민은 더 이상 ‘쇄신하겠다’는 약속을 믿지 않는다. 실제로 바뀌는 장면을 보여줄 때만 평가한다.
이정현의 글은 강한 언어로 시작됐다. 이제 남은 것은 실행이다.
만약 이번 공천이 선언대로 진행되고, 그 공천이 연대의 방식으로 인재 풀을 넓히는 데까지 나아간다면, 보수는 오랜 시간 반복해온 자기 복제의 정치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그 순간, 국민의힘은 단순히 후보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정치의 기준을 다시 쓰게 될지도 모른다.
보수의 미래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공천표 위의 이름에서 결정된다.
그 이름이 ‘자기 사람’이 아니라 ‘이길 사람’으로 채워질 때, 그리고 그 인재 풀이 당 안에 갇히지 않고 연대라는 방식으로 확장될 때, 보수는 비로소 환골탈태의 문턱을 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