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4월6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겸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4월6일 국무회의에서 대북 무인기 침투 사건과 관련해 북측에 유감의 뜻을 표했다.
그는 “우리 정부의 의도는 아니지만”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동시에 “일부의 무책임하고 무모한 행동”이 군사적 긴장을 유발했다고 말했고, 관계부처에는 즉각적 제도개선과 당장 집행 가능한 조치도 지시했다. 이 장면은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이 사건의 성격을 규정하고 국가의 태도까지 앞세운 장면으로 읽힌다.
문제는 무인기 대북 유감 발언이 처음이 아니라는 데 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이미 2월 무인기 침투와 관련해 유감을 표했고, 김여정은 이를 “비교적 상식적인 행동”이라고 평가하면서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어 6일 밤, 이재명의 발언을 두고 김여정은 “대단히 다행스럽고 스스로를 위한 현명한 처사”라고 했다. 김정은이 이를 “솔직하고 대범한 사람의 자세”로 평가했다고 밝혔다.
이미 장관급에서 한 차례 정리된 사안을 대통령이 다시 최고위급으로 끌어올린 셈이다.
그래서 묻게 된다. 왜 이렇게까지 서둘렀느냐는 것이다.
평화와 긴장 완화라는 명분은 누구나 내세울 수 있다. 그러나 재발 방지 약속 하나가 평화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서울이 유감을 표한다고 해서 평양의 계산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한반도의 긴장이 구조적으로 완화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번처럼 상대가 그 유감을 “현명한 처사”라고 받아주면서 동시에 도발 중지와 접촉 단념, 재발 시 대가까지 거론한다면, 그것은 평화의 제도화가 아니라 압박의 명분을 더 얹는 방식에 가깝다.
더 민감한 문제는 순서다.
이 사건의 민간인 3명은 일반이적죄 및 항공안전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4월 15일 첫 공판을 앞두고 있었다. 다시 말해 대통령 발언 시점은 법원이 사실관계를 확정하기는커녕 본격 심리도 시작하지 않은 단계였다.
수사기관의 판단과 법원의 판단은 전혀 다르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거의 확정된 사실처럼 사건을 말했고, 그 결과에 대해 북측에 국가 차원의 유감을 표했다. 변호사 출신 대통령이라면 누구보다 이 경계를 조심했어야 했다.
바로 이 섣부름 때문에 많은 국민은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을 떠올린다.
두 사건이 같아서가 아니다. 북한 관련 사안 앞에서 권력이 사실의 최종 확정보다 먼저 국가의 태도를 정하려 든다는 인상, 바로 그 순서의 문제 때문이다.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에 대해 감사원은 2023년 당시 정부가 상황을 방치하고 사건 뒤에는 관련 사실을 은폐·왜곡했다고 발표했다. 반면 2025년 12월 1심 재판에서는 문재인 정부 안보라인 주요 인사들에게 무죄가 선고됐고, 2026년 1월 검찰은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과 김홍희 전 해경청장 일부 혐의에 대해서만 항소했다.
법적 평가는 아직 일부 다투는 중이지만, 정치적 기억은 이미 남았다. 많은 국민에게 그 사건은 정치적 판단이 국민 보호보다 앞섰다는 불신의 기억으로 각인돼 있다.
이재명의 유감 표명에서 보이는 또 다른 측면은 ‘문재인 트라우마’이다.
여기서 말하는 트라우마는 심리 진단이 아니다. 북미가 직접 움직이는 순간 서울의 공간이 급격히 줄어드는 ‘코리아 패싱’의 기억이다. 로이터는 2019년 하노이 회담 결렬 직후 문재인 대통령이 운신의 폭을 크게 잃었다고 보도했다.
이재명 정부의 최근 움직임을 보면 그 그림자가 겹쳐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은 올해 1월 시진핑에게 북한 문제에서 중재 역할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4월 6일에는 국정원이 북한이 이란과 거리를 두며 미국과의 대화 여지를 남기려 한다고 국회에 보고했다. 바로 그날 대통령은 북측에 유감을 표했다.
이 흐름을 종합하면, 이번 발언은 평양만 향한 말이 아니라 북미 대화가 재개될 경우, 서울이 배제되지 않겠다는 신호, 곧 “한국은 대화의 장애물이 아니라 관리 가능한 파트너”라는 메시지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러나 외교적 지분을 선점하려는 조급함이 국격과 법치의 순서를 밀어내는 순간, 그것은 전략이 아니라 조바심이 된다.
이미 장관급에서 한 차례 정리된 사안을 대통령이 다시 꺼냈다. 아직 재판도 시작되지 않은 사건에서 국가가 먼저 유감을 밝혔다. 북측은 이를 칭찬하면서도 더 많은 요구와 더 강한 경고를 얹었다.
이 장면을 두고 평화의 언어라고만 말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문재인 정부 시절의 패싱 공포와 서해 피격 사건이 남긴 불신의 기억이 겹치며, 정권이 또다시 북한 변수 앞에서 너무 빨리 몸을 낮춘 것 아니냐는 의심을 부른다.
평화는 조급함으로 오지 않는다. 더구나 국격과 판단의 순서를 스스로 깎아내리는 평화는 오래가지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