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명의 경기도지사 후보가 다 적힌 투표용지. [사진=경기도선거관리위원회]
6·3지방선거에서는 전에 없이 이상한 제보가 쏟아졌다. 투표용지가 두 가지 버전으로 제작되어 배포됐다는 것이다. 즉 어떤 투표용지에는 2명의 후보 이름만 등장하고 어떤 투표용지에는 나머지 5~6명의 후보가 전부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내용이었지만 제보자 대부분이 고위공직자 혹은 박사 학위 소지자로서 사회적으로 신뢰할 만한 이들인 데다 내용이 매우 구체적이어서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기사가 나가자마자 “나도 같은 일을 겪었다”는 댓글이 수없이 달렸고 비슷한 내용의 제보가 답지했다.
“정원오·오세훈 둘만 인쇄된 투표용지였다”
먼저 원로 언론인 한 분이 6일 <한미일보>에 밝혀 온 내용이다. 제보자는 “나와 아내가 두 명짜리 투표용지를 받아 반포1동 원촌중학교 투표소에서 투표했다”고 증언했다. 그가 투표한 시각은 마감 직전인 오후 5시40분쯤이었다.
6·3 지선 본투표 당일 두 명의 서울시장 후보만 인쇄된 투표용지에 투표했다는 증언들이 온라인에 속속 올라오고 있다. 사진은 AI로 재구성한 당시 상황.
그는 “스스로 후보를 검색해 보고 투표장에 간 게 아니었기에 서울시장 후보가 대통령 출마자처럼 양당의 대표로 나왔구나”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뒤늦게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오길 “서울시장 후보가 2명만 있는 종이도 있고, 6명이 있는 종이도 있다”는 것이다.
재보자는 “공직선거법상 투표용지는 반드시 한 종류만 하게 돼 있고 두 종류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주변에 전화를 걸어 확인했다. 그랬더니 첫째 딸과 사위, 둘째 외손자는 두 명짜리 투표용지에 투표했고, 첫째 외손자는 6명짜리 투표용지에 투표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또 둘째 딸은 6명 투표용지였지만 개포동과 잠실에 사는 둘째 딸의 친구 두 명은 역시 정원오·오세훈 두 명의 후보만 있는 투표용지를 받았다. 파악하면 할수록 유사한 사례는 더 늘어났다.
“추미애·양향자 둘만 있는 투표용지였다”
이번에는 경기도 사례다. 제보자는 은퇴한 고위공직자로 경기도 동탄에 거주한다. 선거 당일 아침 6시10분 투표장으로 갔는데 화성시장과 경기도교육감 투표용지는 긴 데 반해 녹색의 경기도지사 투표용지는 길이가 짧았다. 보니까 추미애·양향자 후보 둘밖에 없어서 선거사무원에게 “이번에는 도지사 후보가 둘이냐”고 물었고 선거사무원도 그렇다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투표하기 편하겠네” 생각하고 도장을 찍은 다음 길이가 긴 투표지는 남에게 안 보이게 돌돌 말아서 접고 도지사 투표지는 밑에서부터 조금씩 접어서 맨 위 추미애 쪽에 갖다 붙였다고 했다.
투표를 마치고 집에 와 이영돈 PD 유튜브를 보는데 서울에서 두 명만 있는 투표지가 많이 나왔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게 아닌가. 그 순간 머리를 맞은 듯한 충격에 제보자는 경기도 사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려 조사를 시작했다.
다들 잘 기억이 안 난다고 하는 중에 후배 한 명이 “추미애·양향자 둘만 있는 투표용지였다”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들어가 최종 후보자별 득표수를 조사해 보았더니 공보지에 나온 대로 도지사 후보가 5명이었다.
제보자는 “투표소 CCTV를 돌려 보면 6시30분쯤 내가 투표사무원과 대화를 나누면서 길이가 짧은 투표지를 받아드는 장면이 찍혔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오후에 그가 다시 격앙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부방대(부정선거부패방지대)에 문의했더니 이런 “비정상적인 투표용지에 투표했다는 사람이 꽤 많다는 제보가 있었다”며 더 문제인 것은 “개표장에서 2인 후보 투표지는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통갈이를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며 어이없어했다. 아직도 생생한, 길이가 짧은 투표지를 신중하게 접었던 기억, 투표사무원과의 대화는 다 무엇이냐고 그는 도리어 기자에게 물었다.
개표장에 두 명 후보만 적힌 투표지가 발견되지 않았다면 <한미일보>를 비롯해 수많은 유튜브 채널에 날아온 그 수많은 제보 전화와 메일은 다 무엇이었을까. 선거 당일 투표소 CCTV라도 돌려서 확인해야 하는 게 아닐까.
임요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