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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현 작가칼럼] 내 주권 내가 찾겠다는데 극우라니, 정치색이라니
  • 박주현 작가
  • 등록 2026-06-12 22:3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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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한 주권을 찾겠다며 태극기를 흔드는 국민들. Ⓒ한미일보 

어쩌다 보니 또다시 ‘부정이냐 부실이냐’를 가르는 소모적인 사상 검증의 늪에 빠졌다. 참으로 환장할 노릇이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지금 선관위의 파행이 의도된 조작인지 멍청한 실수인지 그 자체에는 큰 관심이 없다. 며칠을 이 지독한 갑론을박 속에서 허우적대다, 문득 내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터 뜨겁고도 서늘한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진짜 지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올림픽공원의 아스팔트를 지켜보던 중 마주한, 참으로 서글프고 기괴한 풍경 때문이었다.

 

나 역시 잃어버린 참정권을 찾으려 나선 청년들의 자발적인 시위에 낡은 정치색이 묻어서는 안 된다고 경계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그 현장 주변을 서성이는 우파 지지자들과 보수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았는가. 

 

그들은 마스크로 얼굴을 푹 눌러 가리고, 행여나 자신들의 존재가 청년들의 순수성에 ‘누가 될까’ 노심초사하며 발소리조차 죽이고 있었다. 자신들의 정당한 의구심과 지지의 마음마저 억누른 채, 그저 멀리서 서성이는 그 주눅 든 어깨들을 보며 나는 견딜 수 없는 모멸감과 슬픔을 느꼈다.

 

왜 우리는 늘 이토록 스스로를 검열하며 눈치를 보아야 하는가.

 

저들의 궤적을 차갑게 복기해 보라. 이 나라에 사회적 비극이나 굵직한 이슈가 터졌을 때, 민주당과 좌파 카르텔이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은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미국산 소고기를 먹으면 뇌에 구멍이 난다던 광우병, 천안함 폭침을 향한 모욕과 음모론, 아이들의 비극에 인신공양설을 덧칠했던 세월호, 전자파에 참외가 튀겨진다던 사드 괴담, 방사능 소금 사재기를 부추겼던 후쿠시마, 그리고 이태원의 참사까지.

 

그 숱한 선동의 굿판들 속에서, 단 하나라도 완벽한 과학적 증거와 팩트를 가지고 시작된 시위가 있었는가. 없었다. 그들은 1%의 불안을 100%의 공포로 부풀려 광장을 점령하고, 타인의 슬픔을 탈취해 정권 퇴진의 흉기로 삼았다. 

 

그래 놓고도 그들은 단 한 번도 부끄러워하거나 사과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의 뻔뻔한 정치적 이용을 ‘시민사회와의 숭고한 연대’라며 거룩하게 미학화했다.

 

그런데 왜 보수 우파는, 헌법 기관이 대낮에 주권자의 투표용지를 증발시키고 개표 직전 선관위 뒤뜰에서 불기둥이 솟아오르는 이 명백하고도 기괴한 팩트 앞에서도, 스스로의 입을 틀어막고 눈치를 보아야 한단 말인가.

 

내 권리가 도둑맞은 것 같다는 지극히 합리적인 의구심을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그들은 즉각 '극우'라는 주홍글씨를 찍어버린다. 그리고 우리는 그 프레임이 두려워 스스로 마스크를 쓰고 그림자 속으로 숨어버린다. 

 

남이 남의 비극에 숟가락을 얹어 나라를 흔드는 것은 ‘깨어있는 시민의 행동’이고, 내가 내 짓밟힌 주권을 찾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은 ‘극우의 정치색’이 되어버리는 이 지독하고 구역질 나는 이중잣대.

 

내가 진정으로 분노하고 서글픈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지금 보수 우파에게 부정이냐 부실이냐의 논쟁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진짜로 분노해야 할 본질은, 내가 품은 당연한 의구심을 자유롭게 내뱉을 그 소박한 권리마저 저들이 휘두르는 ‘극우’라는 폭력적인 딱지 앞에 처참하게 빼앗겨 버렸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자유를 수호한다는 우파이면서도, 정작 내 생각과 의심을 표현할 자유를 저들의 검열 기준에 완벽하게 외주 주어 버렸다. 저열한 선동꾼들은 광장 한복판에서 당당하게 마이크를 쥐고, 상식을 지키려는 자들은 뒷골목에서 마스크를 쓴 채 스스로를 부끄러워해야 하는 이 전도된 세상.

 

이제 그 알량한 마스크를 벗어던질 때가 되었다. 완벽한 증거가 나올 때까지 점잖게 중립을 지키겠다는 지적 허영도, 극우로 몰릴까 두려워 뒷걸음질 치는 그 서글픈 눈치 보기도 쓰레기통에 던져버려라.

 

국가의 시스템이 무너져 내릴 때, 주권자가 의심의 돌멩이를 던지는 것은 정치색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지키는 가장 숭고하고 처절한 본능이다. 

 

당신의 정당한 분노를 두려워하지 마라. 우리가 되찾아야 할 것은 도둑맞은 투표용지 이전에, 숨통을 옥죄는 저들의 프레임을 비웃으며 내 목소리를 당당하게 내뱉을 수 있는 ‘잃어버린 야성(野性)’ 그 자체다.

 




◆ 박주현 작가

 

작곡가, 음악감독, 칼럼니스트, 수필가. 페이스북에서 정치, 시사,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 활발하게 의견을 개진해 수많은 이의 공감을 얻고 있다. 에세이집 ‘폭풍의 바다를 건너다’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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