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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松山] 정당이 길을 잃었을 때
  • 松山 작가
  • 등록 2026-06-18 17:4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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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국회에서 취재진이 장동혁 대표를 집중 취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많은 자유우파 시민들이 오늘의 보수 정치를 바라보며 답답함과 무력감을 느끼고 있다. 정권을 잃어서만은 아니다. 선거에서 패배했기 때문만도 아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정당인지, 어디로 가려는 정당인지, 어떤 미래를 꿈꾸는 정당인지 점점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정당은 원래 사회의 방향을 제시하는 조직이다. 국가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경제를 어떻게 성장시킬 것인지, 안보를 어떻게 지킬 것인지, 교육과 문화는 어떤 모습을 지향해야 하는지 국민 앞에 비전을 제시하고 설득하는 곳이다. 

 

그런데 오늘날 보수정당은 그런 역할보다 각종 현안과 사건에 반응하는 데 대부분의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다. 하루는 누군가의 발언을 해명하고, 하루는 내부 갈등을 수습하며, 또 하루는 외부에서 터진 논란에 입장을 정리하느라 시간을 보낸다. 정당이 사회를 이끄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소용돌이에 끌려다니는 모습이다.

 

사실 지금 대한민국이 직면한 문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세계는 인공지능과 반도체를 중심으로 산업 질서를 재편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은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 

 

북한은 여전히 핵무장을 포기하지 않고 있으며, 인구 감소와 저출산은 국가의 지속 가능성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일본은 군사력 정상화와 첨단산업 재건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고, 미국은 동맹국들에게 더욱 큰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시대라면 보수정당은 무엇보다 국가의 장기 전략을 이야기해야 한다. 노동시장 개혁을 어떻게 할 것인지, 기업 경쟁력을 어떻게 높일 것인지, 규제를 어떻게 정비할 것인지, 한미동맹과 한일협력을 어떤 수준까지 발전시킬 것인지, 통일 문제를 어떤 관점에서 준비할 것인지를 논의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거꾸로 흘러가고 있다. 국가의 미래보다 당장의 논란이 우선되고, 전략보다 전술이 강조되며, 비전보다 감정이 앞선다.

 

정당은 원래 갈등을 조정하기 위해 존재한다. 다양한 의견을 모아 하나의 방향으로 정리하는 것이 정당의 역할이다. 그런데 정당이 그 역할을 포기하면 갈등은 확대된다. 서로 다른 의견이 충돌할 때 지도부가 토론의 장을 만들고 결론을 이끌어내야 하는데, 그런 과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지지층 내부의 분열만 심해진다.

 

예를 들어 선거를 둘러싼 논쟁이 있다고 하자. 정당이라면 사실관계를 검토하고,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며, 당원과 지지자들의 의견을 듣고, 공식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 그것이 책임 있는 정치다. 그러나 이런 과정이 부족하면 각자의 주장만 남게 되고, 정당은 논쟁을 이끄는 주체가 아니라 논쟁에 휩쓸리는 객체가 된다.

 

더 큰 문제는 문화와 사회에 대한 관심 부족이다. 정치는 사회의 맨 앞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뒤에 있다. 교육과 문화, 학문과 언론, 시민사회의 흐름이 먼저 만들어지고 정치는 그 결과를 따라간다. 

 

그런데 한국 보수는 오랫동안 정치에 지나치게 집중한 나머지 사회와 문화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했다. 선거에서 이기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처럼 생각했고, 정권을 잡으면 시대정신도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문화와 교육, 학문과 시민운동의 영역에서 축적된 힘이 없는 정치세력은 결국 외부의 흐름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정치가 사회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정치를 움직인다. 정당은 그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오늘 보수정당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구호가 아니다. 더 강한 적대감도 아니다. 필요한 것은 국가가 앞으로 20년, 30년 뒤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장기 비전이다. 

 

경제 성장과 산업 경쟁력, 안보와 외교, 통일과 국가 정체성에 대한 일관된 전략이다. 그리고 그것을 국민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하는 능력이다.

 

결국 현재의 혼란은 지도력의 위기다. 지도자란 여론을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라 여론을 설득하는 사람이다. 갈등을 이용하는 사람이 아니라 갈등을 정리하는 사람이다. 당장의 박수보다 장기적인 국가 이익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지도자다.

 

국민은 완벽한 정당을 기대하지 않는다. 실수 없는 지도자를 기대하지도 않는다. 다만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고 있는 정당, 무엇을 해야 하는지 설명할 수 있는 지도자를 원한다. 지금 보수정당이 잃어버린 것도 바로 그것이다.

 

정당이 다시 국민의 신뢰를 얻고자 한다면 소용돌이의 중심에서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멈춰야 한다. 논란을 따라다니는 정당이 아니라 의제를 만드는 정당이 되어야 한다. 

 

사건에 반응하는 정당이 아니라 미래를 설계하는 정당이 되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보수는 다시 정치세력이 아니라 국가를 이끄는 세력으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 松山(송산) 

 

시인이자 역사·철학 연구자. 전 이승만학당 이사. 현 한국근현대사연구회 연구고문이자 철학 포럼 리케이온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네 권을 출간했고, ‘후크고지의 영웅들’을 공동 번역했으며 인문서 ‘신화가 된 조선’ ‘다다미 위의 인문학’ ‘자유주의자의 그람시 읽기’를 펴냈다. 松山은 필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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