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링 하이라키' 안무가 김관지 [세종문화회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장르가 없는 세상이 이상향이라 상정하고 그걸 향해 가는 과정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싶습니다. 기존에 관객들이 기대하던 것을 무너뜨리고 다른 가능성을 계속 제시하는 것이죠."
안무가 김관지는 이머시브(몰입형) 컨템퍼러리 무용 작품인 '킬링 하이라키'를 통해 장르가 고착되기 시작하면서 느끼는 한계와 위계를 부수고 싶다는 각오를 밝혔다.
그는 2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아티스트 라운지에서 열린 라운드 인터뷰에서 "위계라는 것은 변형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물이 고여서 썩는 것처럼 변질되고 장르도 고착되면 한계가 생긴다"며 "이걸 어떻게 하면 설득력 있게 주장할 수 있는지를 계속 찾아가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킬링 하이라키'는 세종문화회관이 지난 3일 시작해 9월 5일까지 세종S씨어터에서 이어가는 기획 공연 시리즈 '싱크 넥스트 26'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다. '싱크 넥스트'는 장르의 경계를 넘어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예술을 선보이는 무대로, 2022년 첫선을 보였다. 올해는 컨템퍼러리 무용을 비롯해 전통음악, 탈춤, 서커스 등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 16팀이 총 10개 프로그램을 무대에 올린다.
'킬링 하이라키'는 한국 춤의 전통적 감각과 동시대적 상상력을 재구성해온 안무가 김관지의 작품으로, 양자 컴퓨팅과 인공지능(AI), 신화적 상상력을 결합했다.
그는 "제가 하려는 공연은 즉흥성이 굉장히 크다"며 "세종문화회관이란 공간을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열린 광장 혹은 아고라처럼 느껴지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만든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킬링 하이라키'는 오는 24~27일 워크숍과 총 3회차 공연으로 관객을 만난다.
김관지를 필두로 무용수 표혜인, 정필균 등 8명의 무용수와 9명의 악사, 총 17명의 퍼포머가 참여한다.
안무가 김관지, 무용수 표혜인, 무용수 정필균 (왼쪽부터) [세종문화회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작품은 정해진 해석이나 고정된 동작을 반복하는 대신, 관객의 참여와 현장의 즉흥성을 극대화하는 '난장' 형태를 띠며 회차마다 다른 '현상'을 만들어낼 예정이다.
김관지는 작품 제목에 대해 "각자의 삶 속에서 계속해서 생겨난 타성을 내리치는 것"이라며 "출연진에게도 각자 쌓인 타성을 계속해서 내리치도록 요구했고 그 안에 각자의 서사가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해진 공연 형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신, 기존에 기대하던 관습을 무너뜨리며 예측 불가능한 '문턱' 위에 관객과 출연진을 세우고자 했다"며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태에 계속 노출되면서 그 안에서 각자가 자신만의 관점과 해석을 만들어가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위계의 해체는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무는 연출로 이어진다.
공연은 극장 로비에서부터 댄서들이 관객을 몰고 들어오는 방식으로 시작하며, 관객에게 은박지나 플래시 등 소품을 나눠주기도 한다.
관객은 단순한 관람객이 아니라 무대 위 퍼포머와 같은 '하나의 몸'으로 존재하는 참여자가 된다.
안무가 김관지, 무용수 표혜인, 무용수 정필균 (왼쪽부터) [세종문화회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표혜인 무용수는 "정해진 답이나 완벽한 프레임을 보여주는 공연이 아니라, 매 순간 인지하고 선택하는 퍼포머들의 가장 솔직한 모습이 무대 위에 올라간다"며 "관객들은 그 솔직함을 보며 자신을 비춰보는 거울 같은 연결고리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정필균 무용수 역시 "기존 공연처럼 '이렇게 흘러가겠구나' 하는 예상을 완전히 비켜나가는 현장성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라며 "퍼포머와 관객 사이의 갭을 허물고 같은 공간에서 순간을 함께 느끼는 경험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기술이 극도로 발달해 인간의 언어적 소통마저 뛰어넘는 미래를 가정한 이 작품에서 안무가가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은 인간의 '몸'이다.
김관지는 "아무리 신에 가까운 AI가 나오더라도 결국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것은 신체"라며 "몸이라는 장소에서 일어나는 심취를 관객들과 나누고 춤 본래의 재미를 느끼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