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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강제노동 수입금지를 한국이 거부한 이유
  • 김영 기자
  • 등록 2026-08-12 10: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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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법적 금지·세관 집행 요구…한국은 K-ESG·공시기준 제시
  • “실제 조치와 일정은?” 질문에 사후 서면답변…끝내 12.5% 상한형 관세
  • 중국 공급망 충격 피하고 책임은 기업에 넘겼나…EU도 2027년 말 시장금지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작성한 무역법 301조 관세 관련 조사보고서 표지 갭처.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23일 한국이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상품의 수입을 법적으로 금지하고 실효적으로 집행하지 않았다며 무역법 301조 관세를 확정했다.

한국산 제품은 기존 최혜국대우(MFN) 관세가 12.5%보다 낮으면 301조 관세를 더해 합계가 12.5%가 되도록 하고, 기존 관세가 12.5% 이상이면 추가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 구조다. 조치는 미국 동부시간 24일 0시1분부터 시행됐다.

이번 조치는 한국산 제품이 강제노동으로 만들어졌다는 판정이 아니다. USTR가 문제 삼은 것은 한국 정부가 원산지를 불문하고 강제노동으로 전부 또는 일부 생산된 상품을 국경에서 막는 법률과 세관 집행체계를 갖추지 않았다는 점이다. USTR는 한국의 정책과 관행이 불합리하며 미국 상거래에 부담을 준다고 판단했다.

미국은 ‘금지’를 물었는데 한국은 ‘관리’를 답했다

USTR 보고서는 강제노동 수입금지를 단순한 공급망 투명성이나 기업 실사와 명확히 구분했다. 기업에 원료 출처를 공개하게 하거나 강제노동 위험을 점검하도록 하는 조치는 수입을 억제할 수는 있어도, 세관이 상품 반입을 거부하는 법적 금지는 아니라는 것이다.

USTR가 요구한 것은 강제노동 투입물이 미량이라도 포함된 상품을 막을 수 있는 명시적 수입금지였다.

그러나 7월9일 워싱턴에서 열린 USTR 공청회에서 한국 정부를 대표해 출석한 이승헌 주미대사관 관계자는 K-ESG 가이드라인, 한국 지속가능성 공시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다국적기업 책임경영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이를 통해 민간기업이 글로벌 공급망에서 강제노동 상품을 제거하도록 지원하고 있다며 한국에 대한 조치는 “적절하지도 필요하지도 않다”고 주장했다.

미 국무부 앤 메이슨은 곧바로 한국이 강제노동 상품 수입금지를 채택하기 위해 실제로 취한 조치가 있는지, 개발 중인 제도와 시행 일정은 무엇인지 물었다.

이 관계자는 여러 조치를 취하고 있다면서도 구체적인 내용은 공청회 후 서면으로 제출하겠다고 답했다. 법률명과 입법 일정, 관세청의 통관 보류·반송 권한은 현장에서 제시되지 않았다.

이어 답변한 스리랑카는 달랐다. 강제노동으로 채굴·생산·제조된 상품의 수입을 금지하는 규정이 관보에 게재되며 관세청장이 집행을 맡는다고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스리랑카는 조사 이후 실제 수입금지 제도를 도입해 최종적으로 10% 관세군에 들어갔다. 한국에는 12.5% 상한형 관세가 적용됐다.

‘거부’는 명시하지 않았지만 도입도 약속하지 않았다

공개 속기록 어디에도 한국 정부가 “수입금지법을 만들지 않겠다”고 직접 선언한 대목은 없다. 따라서 중국의 보복이 두려워 수입금지를 거부했다고 단정하는 것은 사실의 범위를 넘어선다.

그러나 한국은 미국이 요구한 금지법과 시행계획을 제시하지 않았고, 오히려 기존 정책만으로도 미국의 추가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는 적어도 공청회 시점에는 국가가 통관을 직접 차단하는 강제규제보다 기업의 공급망 관리와 공시를 우선하겠다는 의사표시로 읽힌다.

K-ESG는 애초 기업이 필요에 따라 선택해 활용하는 가이드라인이다. 산업통상부도 평가·인증을 기업의 자발적 선택으로 운영한다고 설명해 왔다.

2026년 7월 확정된 지속가능성 공시 로드맵 역시 2028년부터 자산 30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를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정보를 공개하게 하는 제도다. 어느 제도도 관세청에 강제노동 의심 상품의 통관을 보류하거나 반송할 권한을 주지 않는다.

왜 ‘기업 자율’을 택했나

확인된 정부 내부 문건이 없는 만큼 이유를 하나로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공개 자료에서 세 가지 구조적 배경은 읽힌다.

첫째는 공급망 충격이다. 강제노동 수입금지를 시행하려면 원료 채굴지와 제련소, 부품공장까지 추적할 자료체계와 세관의 조사권한, 수입업자의 입증책임을 새로 설계해야 한다.

USTR는 이런 실사 비용이 강제노동 고위험 중국산 상품에서 약 2.5%의 관세에 맞먹을 수 있다는 연구도 인용했다. 법을 만들면 자율규제 아래 드러나지 않았던 비용이 즉시 현실화한다.

둘째는 중국산 원료와 중간재에 대한 산업 의존이다. USTR 보고서는 중국산 폴리실리콘 웨이퍼의 주요 목적지로 한국·태국·베트남을 들었다. 강제노동 위험은 태양광뿐 아니라 면화·섬유, 알루미늄, 전자제품과 각종 후방제품으로 번질 수 있다.

수입금지 체계를 도입하면 특정 품목 하나가 아니라 중국과 연결된 공급망 전반을 조사해야 한다.

셋째는 외교적 책임이다. 국가가 수입금지 기준을 만들고 세관에서 중국 연계 상품을 막으면 중국과의 통상마찰은 정부가 감당해야 한다.

반면 ESG와 공시 중심으로 남겨두면 어떤 원료를 계속 사용할지, 미국·유럽 수출용 공급망을 어떻게 분리할지, 통관 지연과 계약 취소 위험을 어떻게 부담할지를 기업이 결정하게 된다.

‘기업 자율’이 선택의 자유라기보다 국가가 져야 할 통상 책임과 비용을 기업에 넘기는 장치가 됐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미국은 관세를 매겼고 유럽은 시장을 닫는다

한국이 자율규제로 버틸 수 있는 시간도 길지 않다. 유럽연합(EU)의 강제노동 상품 금지 규정은 2027년 12월14일부터 본격 적용된다.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상품은 EU 시장 출시와 판매, 역외 수출이 금지되며 조사 결과에 따라 이미 유통된 제품도 회수·처분 대상이 될 수 있다. 미국과 절차는 다르지만 기업의 공시만으로는 부족하고 국가가 상품을 실제로 차단해야 한다는 방향은 같다.

한국 기업은 국내법이 없어도 미국에서는 공급망을 입증해야 하고, 유럽에서는 상품금지 조사에 대응해야 한다. 정부가 수입금지를 미룬다고 기업 부담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수출용과 내수용 공급망을 따로 관리해야 하는 비용만 커질 수 있다.

팩트체크 판정

한국 정부가 강제노동 수입금지를 명시적으로 거부했다는 표현은 절반만 사실이다. 직접적인 거부 선언은 없었다. 그러나 미국이 실제 도입 조치와 일정을 물었을 때 한국은 답하지 않았고, 법적 금지 대신 K-ESG와 공시 등 기업 중심의 간접규제를 제시하면서 미국의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중국의 제재가 두려워 관세를 감수했다는 주장도 아직 확인된 사실은 아니다. 다만 중국 공급망은 끊기 어렵고 미국과 유럽 시장은 포기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정부가 법적 기준을 세우지 않고 선택과 입증책임을 기업에 넘긴 구조는 분명하다.

미국은 이미 관세를 부과했고 유럽도 2027년 말 시장금지에 들어간다. 한국이 얻은 것은 규제의 면제가 아니라 짧은 유예에 가깝다.

결국 한국도 특정 국가를 직접 적시하지 않으면서 모든 원산지에 적용되는 강제노동 상품 수입금지법과 세관 집행체계를 마련할 수밖에 없을 가능성이 크다.

※이 기사는 주간 한미일보 20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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