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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 한미칼럼] ‘반미 제국주의 사관’의 뿌리 5·18, 그 허상을 깨는 6·25
  • 김영 기자
  • 등록 2026-08-31 12:2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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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L·PD 거쳐 교육현장까지 확산…대한민국을 ‘미제 종속국’으로 재구성
  • 평화는 전쟁의 반대말 아니다…6·25는 공산 침략에 맞선 체제 수호전쟁
  • 미국 밀어낸 자리에 들어선 중국…부채·핵·할인 원유로 새로운 종속 구축

왼쪽은 1950년 7월5일 오산 죽미령에서 벌어진 유엔군의 한국전 첫 전투 당시 모습. 오른쪽은 1980년 5·18 당시 광주 금남로에 모인 시민들. [사진=5·18기념재단 ·연합뉴스 자료] 한국의 근대사를 지배한 역사 언어는 ‘반일’이었다. 일제 침략과 식민지 수탈, 친일파 청산 실패가 근대사를 해석하는 중심축이 됐다. 그러나 1980년 5·18을 거치면서 운동권 역사관의 표적은 일본에서 미국으로 이동했다. 미국이 신군부의 집권과 광주 진압을 묵인하거나 승인했다는 인식이 대학가에 확산하면서 미국은 해방자나 동맹국이 아니라 일제의 지배구조를 이어받은 새로운 제국주의 세력으로 규정됐다.

5·18의 발생 과정과 배후, 미국의 역할, 북한 관련 의혹을 둘러싼 논쟁이 모두 끝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국가는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공식 규정했고 정부 조사위원회는 북한군 개입을 인정하지 않았다. 반면 북한 개입 가능성을 제기하는 일부 증언과 해외 정보문서에 대한 다른 해석도 존재해 왔다. 공개 보도 상당수가 삭제되고 원자료에 대한 접근도 제한된 상황에서 어느 한쪽의 결론을 역사의 최종 판정으로 못 박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5·18 이후 미국은 ‘동맹’에서 ‘투쟁 대상’이 됐다

이 칼럼은 5·18의 성격을 최종 판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5·18 이후 운동권의 투쟁 대상과 역사 인식이 어떻게 달라졌느냐는 점이다. 반미 의식은 미군정과 분단 과정에서도 존재했지만, 일부 좌파의 주변적 담론을 넘어 대학 운동권의 중심 사상과 조직적 행동으로 전환된 기점은 5·18이었다.

그 변화는 이후의 행동에서 확인된다. 1982년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사건 관련자들은 전두환 정권에 대한 미국의 지원과 광주 진압에 항의하기 위한 행동이었다고 밝혔다. 1985년 서울 미국문화원 점거 학생들도 미국의 5·18 관련 책임 인정과 사과를 요구했다. 반독재 투쟁의 표적이 국내 군사정권에서 미국으로 확장된 것이다.

미국 책임론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미국이 군사정권을 지탱하고, 군사정권이 광주를 진압했으므로 대한민국은 미국에 종속된 국가라는 논리로 발전했다. 5·18은 한국 반미주의의 최초 발생점은 아니지만, 반미가 대한민국의 건국과 분단, 군사정권과 자본주의까지 하나로 설명하는 제국주의 사관으로 체계화된 결정적 분기점이었다.

이 인식은 종북 성향으로 발전한 민족해방(National Liberation·NL) 계열만의 것이 아니었다. NL은 핵심 모순을 ‘민족 대 미제’로 보고 자주·반미·통일을 앞세웠다. 민중민주(People’s Democracy·PD) 계열은 계급모순을 중심에 놓았지만 미국을 세계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체제의 정점으로 규정했다. 두 계열은 북한과 혁명 전략을 놓고 충돌하면서도 대한민국을 미국에 종속된 체제로 해석하는 데서는 만났다.

이 반미 제국주의 사관은 대학 운동권과 출판·문화계를 거쳐 교사운동과 전교조로 이어졌다. 김대중 정부의 전교조 합법화와 이해찬 교육개혁이 진행된 시기는 운동권 출신 교육세력이 제도권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던 전환기와 겹쳤다. 오늘날 좌파 정권의 핵심을 이루는 50대와 60대 초반 세대의 역사 인식 역시 전교조 하나가 아니라 학생운동과 좌파 언론·문화계, 교육현장이 함께 재생산한 반미 담론의 영향을 받았다.

6·25, 반미사관이 넘지 못한 역사적 장벽

그러나 이 역사관이 끝내 넘지 못한 거대한 장벽이 있다. 1950년 6월25일 북한의 남침이다.

미국이 한반도를 지배한 침략적 제국주의 세력이라면 북한의 남침으로 대한민국이 소멸할 위기에 놓였을 때 미군과 유엔군이 참전해 이 나라를 지켜낸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전쟁을 시작한 쪽은 북한이었고 소련과 중국은 김일성의 전쟁 준비와 수행을 지원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유엔군이 참전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존재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반미사관은 6·25의 남침 책임을 흐려야 했다. 내전론과 남북 공동책임론, 미국의 전쟁 유도설, 북한의 남침을 민족해방전쟁으로 미화하는 논리가 등장했다. 북한의 침략 책임을 인정하는 순간 미국은 침략자가 아니라 대한민국을 방어한 국가가 되고, 북한은 해방세력이 아니라 침략자가 되기 때문이다.

반미 제국주의 사관의 더 근본적인 오류는 평화를 전쟁의 단순한 반대말로 사용한다는 데 있다. 미국이 군대를 움직이면 전쟁이고 제국주의이며, 미국이 물러나면 평화가 온다는 이분법이다.

그러나 침략에 굴복해 저항이 사라진 상태도 총성은 멎는다. 독재자가 반대세력을 모두 가둔 사회도 거리는 조용하다. 핵과 테러로 주변국을 위협하며 상대의 대응만 억제하는 상태도 당장은 전면전이 아니다. 그것을 평화라고 부를 수는 없다.

평화는 개인의 생명과 자유가 보호되고 국가의 주권과 국제질서가 유지되며 침략과 테러가 억제되는 상태다. 전쟁의 부재만을 평화로 규정하면 침략자에게 저항하지 않는 것이 평화가 되고, 침략을 막기 위한 무력 사용은 오히려 평화를 깨뜨리는 행위가 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모든 전쟁이 정의로웠던 것은 아니다. 미국도 베트남전쟁과 이라크전쟁에서 중대한 오판을 남겼다. 그러나 전후의 모든 무력충돌을 식민지 획득을 위한 제국주의 전쟁으로 설명할 수도 없다. 6·25는 공산 침략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킨 체제 수호전쟁이었고, 걸프전은 이라크에 병합된 쿠웨이트의 주권을 회복하기 위한 다국적군의 전쟁이었다. 9·11 이후의 전쟁도 그 결과와 별개로 국제 테러에 대한 대응에서 출발했다.

6·25 당시 유엔군이 참전하지 않았다면 전쟁은 더 빨리 끝났을 수 있다. 그러나 그 결과는 평화가 아니라 김일성 정권에 의한 적화통일이었을 것이다. 전쟁의 조기 종결과 평화의 수호는 같은 말이 아니다. 때로는 싸우지 않는 선택이 평화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침략자의 승리를 인정하는 일이 된다.

왼쪽은 6·25전쟁에서 전사한 유엔군 장병들이 안장된 부산 재한유엔기념공원. 오른쪽은 광주 국립5·18민주묘지. [사진=연합뉴스·국립5·18민주묘지관리소] 

현대판 제국주의는 군대 대신 부채를 보낸다

반미사관은 21세기의 제국주의가 어디에서 작동하는지도 보지 못한다. 오늘날 다른 나라의 주권을 잠식하는 수단은 군대만이 아니다. 중국의 일대일로는 차관과 항만·철도·발전소·광물·통신망을 결합해 경제적 의존을 정치적 영향력으로 바꾼다. 과거 제국주의가 총독부를 보냈다면 현대 중국은 국유은행과 국유기업을 보낸다.

모든 일대일로 사업이 실패했거나 처음부터 부채 함정으로 설계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시설의 완공과 참여국의 성공은 별개의 문제다. 일대일로의 성패를 판단하려면 세 가지를 물어야 한다. 그 사업은 성공했는가. 중국이 성공했는가. 아니면 참여국이 성공했는가.

항만의 물동량이 늘고 철도가 달리면 시설사업은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 기업이 공사대금을 가져가고 중국이 물류망과 자원 접근권을 확보하는 동안 참여국에 부채와 운영손실이 남았다면 실질적인 성공자는 중국이다. 철도가 달린다고 국가가 전진한 것은 아니다.

일대일로와 독재가 결합하면 중국의 돈은 국가 발전 자금이 아니라 정권의 생명 유지비가 된다. 베네수엘라에서 중국은 차베스·마두로 정권에 막대한 자금을 공급하고 대출을 석유 상환과 연결했다. 정권은 연명했지만 산업 다각화는 실패했고 국가 경제와 공공 서비스가 무너졌다. 계약은 중국과 정권이 체결했지만 최종 비용은 국민이 부담했다.

이란 핵 문제도 미국과 이란의 양자 갈등으로만 볼 수 없다. 이란은 핵확산금지조약(NPT) 가입국으로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검증을 받을 의무가 있었다. 핵확산 위험이 커지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제재에 나섰고 중국과 러시아도 관련 결의에 참여했다. 그러나 반미사관은 핵 개발보다 제재를 먼저 말하며 원인과 대응의 순서를 뒤집는다.

핵은 이란에 평화를 보장하지 않았다. 핵무기 문턱에 접근할수록 제재와 고립, 군사공격 위험은 커졌다. 핵은 독재자의 생존 보험이 될 수는 있어도 국민의 평화와 번영을 보장하지 않는다. 북한의 핵은 정권의 안전을 강화했을지 모르지만 주민을 가난과 억압에서 구하지 못했다.

중국이 이란과 러시아를 구한 것도 아니다. 중국은 서방시장에서 밀려난 이란·러시아산 원유를 할인된 가격에 사들였다. 이란 정권에는 생명줄이지만 중국에는 에너지 할인권이다. 두 나라가 서방과 멀어질수록 중국에 대한 의존은 커지고 중국의 구매 협상력은 강해진다. 중국은 죽지 않을 만큼의 시장은 제공하지만 자립할 만큼의 선택권은 주지 않는다.

트럼프가 제시한 대이란 정책의 목표는 이란이라는 국가 자체의 파괴가 아니라 핵무장 저지다. 베네수엘라에 대해서는 독재·마약 카르텔·불법이민이 미국 안보에 가하는 위협의 차단을 내세운다. 이를 무조건 제국주의적 침략으로 규정하면 핵확산과 테러·마약, 독재정권의 책임은 사라지고 이에 대응하는 미국의 행동만 남는다.

미국의 모든 대외 개입이 정의로웠던 것은 아니다. 미국도 국익을 추구했고 수많은 오판을 저질렀다. 그러나 미국의 잘못을 비판하는 것과 대한민국의 건국·6·25 방어·산업화·한미동맹 전체를 미제 지배의 역사로 규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반미 제국주의 사관의 가장 큰 허상은 미국을 비판했다는 데 있지 않다. 세상의 모든 분쟁을 미국이라는 하나의 원인으로 설명하는 동안 북한의 남침과 중국의 팽창, 러시아의 침략, 이란 신정독재의 핵 야욕을 외면했다는 데 있다.

평화는 전쟁의 반대말이 아니다. 독재와 핵, 테러가 지배하지만 누구도 저항하지 못하는 침묵도 평화가 아니다. 자유와 주권을 지키기 위해 침략에 맞서는 행위까지 전쟁이라는 이유로 부정한다면 평화는 침략자에게 가장 유리한 언어가 된다.

역사를 이념의 포로로 만들면 침략자는 해방자가 되고 동맹은 지배자가 된다. 반미라는 낡은 안경을 벗어야 6·25도, 중국의 일대일로도, 베네수엘라와 이란의 비극도 제대로 보인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미국의 식민지사가 아니다. 자유를 지키기 위해 침략에 맞섰고 가난을 극복해 산업국가를 세웠으며 독재를 넘어 민주공화국을 일군 국민의 역사다. 그 역사의 주인은 미국도, 북한도, 중국도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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