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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의 시대] ⑤ 해법은 신뢰 회복 아닌 불신 관리
  • 김영 기자
  • 등록 2026-01-14 20:2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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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뢰는 요구할 수 있지만 설계할 수는 없다
  • 불신은 제거 대상이 아니라 관리 대상이다
  • 사회가 작동하려면 불신을 견디는 구조가 필요하다
이 연재는 불신을 감정이나 정치 문제가 아닌, 반복된 경험과 학습, 제도 설계의 결과로 분석한다. 정책 실패보다 설명 실패와 책임 없는 결정이 어떻게 사회적 불신을 구조화했는지를 추적한다. 본 시리즈는 해답을 제시하지 않고, 독자가 사회를 바라보는 판단의 기준선을 복원하는 데 목적이 있다.

 

Ⅰ부. 불신의 구조를 해부하다 (1~5편)


① 불신은 감정 아닌 학습

② 확증편향 사회의 등장

③ 정책이 안정 장치 아닌 위험 변수

④ 불신 사회의 다섯 가지 징후

⑤ 해법은 신뢰 회복 아닌 불신 관리


불신 사회를 두고 가장 자주 등장하는 해법은 ‘신뢰 회복’이다. 


정부가 더 설득해야 하고, 제도가 더 투명해져야 하며, 시민이 다시 믿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처방은 현실과 잘 맞지 않는다. 신뢰는 명령할 수 없고, 설득만으로 회복되지 않기 때문이다.

 

신뢰는 결과이지 출발점이 아니다. 신뢰를 요구하는 순간, 이미 신뢰는 무너진 상태일 가능성이 크다. 


반복된 경험을 통해 불신을 학습한 사회에서 “믿어 달라”는 말은 해법이 아니라 추가적인 위험 신호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그래서 질문을 바꿔야 한다.

 

불신을 없앨 수 있는가가 아니라, 불신이 존재하는 상태에서도 사회가 작동할 수 있는가다.

 

불신은 감정이 아니라 학습이었다. 그렇다면 그 학습을 되돌리는 대신, 그 학습 위에서 작동 가능한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이 지점에서 필요한 개념이 바로 불신 관리다.

 

불신 관리는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선언이 아니다. 불신을 전제로 제도를 설계하고, 정책을 설명하며, 책임을 기록하는 방식이다. 


사람들이 믿지 않을 가능성을 포함한 상태에서, 그래도 선택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조건을 마련하는 일이다.

 

불신 관리의 첫 번째 조건은 정책의 사전 계약화다. 


정책이 시행되기 전에 무엇을 목표로 하고, 어떤 조건에서 수정되며, 실패 시 어떤 조정이 이뤄지는지가 미리 제시되어야 한다. 사후 설명이 아니라 사전 약속이 있을 때만, 불신은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 머문다.

 

두 번째 조건은 예측 가능성과 불변 기간이다. 


정책의 방향이 자주 바뀌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언제까지 유지되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 문제다. 일정 기간 동안 기준이 유지된다는 신호는 신뢰를 요구하지 않아도 행동의 기준을 제공한다.

 

세 번째 조건은 외부 검증과 기록의 제도화다. 


정책의 성공과 실패를 내부 평가에만 맡길 경우, 불신은 더 강화된다. 외부에서 검증 가능하고, 그 과정과 기준이 기록으로 남을 때만 사회는 실패를 학습 자산으로 전환할 수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평가 결과보다 평가 과정이 남는지 여부다. 잘했다는 결론보다,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가 기록되어야 한다. 그래야 다음 선택이 가능해진다.

 

불신 관리는 윤리의 문제도, 시민의식의 문제도 아니다. 그것은 제도 설계의 문제다. 


불신 사회에서 도덕을 호소하는 것은 효과적이지 않다. 대신 불신을 견딜 수 있는 구조를 제공해야 한다.

 

이 구조가 작동하면 신뢰는 다시 생길 수도 있고, 생기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신뢰의 회복 여부가 아니라, 사회가 멈추지 않는다는 점이다. 


불신 관리의 목적은 화해가 아니라 지속 가능성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1~5편은 불신을 비난하지 않는다. 불신을 설명한다. 왜 사람들은 믿지 않게 되었는지, 그 선택이 왜 합리적으로 보이게 되었는지를 구조적으로 정리했다.

 

이제 다음 단계는 불신이 어떻게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각 제도에 어떻게 고착되는지를 살펴보는 일이다. 불신은 개인의 태도에서 멈추지 않는다. 구조가 되는 순간, 사회 전체의 작동 방식을 바꾼다.

 

불신 사회의 해법은 신뢰를 되찾는 데 있지 않다. 불신을 전제로도 사회가 작동하도록 만드는 구조, 즉 불신 관리에 있다.

 

Ⅱ부. 불신은 어떻게 확산되고 고착되는가 (6~10편)부터는 불신이 언론·정치·경제·교육·노동으로 어떻게 확산되고 고착되는지, 그 첫 번째로 언론의 기능 상실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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