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11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에서 열린 국민성장펀드 출범식에서 이억원 금융위원장과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박상진 한국산업은행 회장 등이 기념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20일 발표한 ‘국내 자본시장 활성화·외환시장 안정 세제 패키지’는 제목만 보면 파격적이다.
국민참여형 국민성장펀드 소득공제 확대, 해외주식을 팔고 국내로 복귀할 경우 양도소득세 감면, 환헤지 투자에 대한 세제 혜택 등이 한꺼번에 제시됐다.
해외로 빠져나간 자금을 국내로 되돌려 외환시장을 안정시키겠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번 대책은 정책이라기보다 ‘조건부 미끼상품’에 가깝다.
외환 불안이라는 거시경제 문제를 개인투자자 통제로 풀겠다는 발상, 형평성 대신 자율 포기를 요구하는 세제 설계, 그리고 근본 처방이 보이지 않는 단기 이벤트성 접근이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내놓은 제도의 골격은 세 갈래다.
먼저 국민참여형 국민성장펀드는 3년 이상 장기 투자할 경우 최대 40%의 소득공제를 제공한다.
투자금 2억원 한도로 배당소득을 9% 분리과세하고, 3천만원 이하 투자분에는 40%, 3천만~5천만원 구간에는 20%, 5천만~7천만원 구간에는 10%의 소득공제를 적용한다는 내용이다.
두 번째 축은 국내시장 복귀계좌(RIA)다. 해외주식을 매도한 자금을 이 계좌로 옮겨 국내 주식이나 주식형 펀드에 1년 이상 투자하면 해외주식 양도소득세를 감면해 주겠다는 제도다.
1인당 공제 한도는 5천만원이며, 복귀 시점에 따라 공제율이 달라진다. 1분기 매도 시 100%, 2분기 80%, 하반기 50%가 적용된다.
세 번째는 환헤지 투자 특례다.
환헤지 상품에 투자하면 해외주식 양도소득에서 투자액의 5%(최대 500만원)를 공제해 준다. 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유인책이라는 설명이 붙는다.
겉으로는 파격 혜택, 실제로는 조건부 세제
표면적으로는 투자자를 위한 혜택처럼 보이지만 설계 구조는 단순하지 않다.
RIA 계좌로 들어온 돈은 국내 자산에만 투자해야 하고, 일반계좌에서 해외주식을 순매수하면 그만큼 세제 혜택이 줄어든다.
요약하면 “혜택을 받고 싶다면 해외투자를 줄이고 국내에 자금을 묶어 두라”는 조건이 붙는다. 세제가 투자 자유를 제한하는 도구로 변한 셈이다.
이 구조는 일상에서 흔히 보는 ‘미끼상품’ 방식과 거의 동일하다.
카드사가 “초저금리 대출”을 내세우지만 일정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혜택이 사라지고, 통신사가 “공짜폰”을 홍보하지만 고가 요금제와 장기 약정을 요구하는 방식과 다르지 않다. 달콤한 혜택 뒤에 강한 제약이 붙는 구조다.

표에서 보듯, 이번 대책은 혜택의 형식을 빌렸지만 실제로는 행동을 제한하는 구조다.
투자자가 자유롭게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권리를 일부 포기해야만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세제가 시장을 지원하는 도구가 아니라 시장을 관리하는 장치로 변질된 것이다.
외환 불안의 원인은 세금이 아니다
이번 대책의 출발점은 원화 약세와 외환시장 불안이다. 해외주식 투자 증가로 달러 수요가 커지자, 정부는 개인 자금을 국내로 돌리면 외환 수급이 안정될 것이라는 계산을 세웠다.
그러나 이는 문제의 본질을 비켜간 처방이다.
외환 불안의 근본 원인은 개인투자자의 선택이 아니라 한국 경제의 구조적 약화에 있다.
지금 한국 시장의 가장 큰 약점은 세금이 아니라 성장동력의 부재다.
△ 반도체 이후를 이끌 신산업이 보이지 않고
△ 기업 지배구조 개혁은 더디며
△ 규제의 예측 가능성은 낮고
△ 주주환원 문화는 여전히 취약하다.
이런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국내 자본은 더 높은 수익을 찾아 해외로 이동하고, 외국 자본은 한국을 장기 투자처로 쉽게 선택하지 않는다. 그 결과 외환시장은 구조적으로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시장 매력 대신 통제를 택한 처방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내놓은 해법은 근본 처방과 거리가 멀다.
조세정책의 기본 원칙은 보편성과 형평성이다.
그러나 이번 제도는 혜택을 받으려면 투자 자유를 일부 포기해야 하는 조건부 구조다. 해외주식을 다시 사면 혜택을 축소하고, 다른 계좌의 투자 행태까지 사실상 감시한다.
세제가 시장 자율성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변질된 것이다.
외환 불안을 진짜로 완화하려면 순서는 정반대여야 한다.
신산업 육성, 기업 거버넌스 개혁, 규제 환경 개선, 자본시장 제도 정비 같은 거시·구조 정책이 먼저 제시돼야 한다.
세제 혜택은 그 보조 수단일 뿐이다. 지금은 보조 수단이 주연이 되고, 구조 개혁은 아예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세제는 신뢰를 대신할 수 없다.
미끼상품의 특징은 한 번 고객을 끌어들이면 이후 선택권을 좁히는 데 있다. 이번 세제 패키지도 다르지 않다.
단기적으로는 자금을 묶을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투자자 신뢰를 갉아먹는다.
외환시장의 안정은 조건부 혜택이 아니라 시장의 매력에서 나온다.
장기 자본이 스스로 찾아오게 만드는 진짜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