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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의 난중일기] ③ 이 억울하고 슬픈 날들이 지나면
  • 방민호 교수
  • 등록 2026-01-23 19: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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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은 죽음의 문턱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자료=정부표준영정]

순신은 효성스러웠다. 어머니와 멀리 떨어져 설을 쇠는 것을 한스러워했다. 

 

순신은 형제애가 깊었다. 맏형님, 둘째 형님이 먼저 돌아가신 것을 한스러워했다. 형님들의 잇따른 제삿날엔 일조차 걸렀다. 

 

그러나 순신은 일에 게으름이 없었다. 맑은 날에도 바람 부는 날에도 비오는 날에도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보았다. 공무에 준엄했다. 병사들을 점검하고 검열하고 새로 지은 석물이 허물어지면 석수를 벌주었다. 

 

지위로, 힘으로 방비할 수 있는 만큼 해 놓은 그

 

싸울 준비에 있어 탈이 나자 군관과 색리들을 죄에 맡게 처벌했다. 군무를 맡은 자를 잡아들이고 자리를 차지한 자를 쫓아 보냈다. 방어 준비에 최하급인 자를, 순찰사가 임금에게 포상을 주어야 할 자라고 올리자, 우습다고 썼다.

 

순신은 자신에게도 엄격했다. 일기는 순신이 늘 활을 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공무를 처리하고 활을 쏘았다. 공무를 처리하면 또 활을 쏘았다. 

 

어느 날은 화살을 열 순을 날렸다. 한 순은 화살 다섯 대, 쉰 개의 화살을 쏜 것이었다. 어느 날은 공무를 처리하고 열여덟 순을 쏘았다. 아흔 개의 화살을 쏜 것이었다. 

 

순신은 계속해서, 게을리하지 않고, 잊지 않으려는 듯 활을 쏘았다. 화살을 날렸다. 포구들을 돌아보고 와서도 활쏘기를 했다. 

 

열 순을 쏜다. 또 열 순을 쏜다. 열다섯 순을 쏜다. 열 순을 쏘아 다섯 순은 연달아 명중시키고 세 순은 세 번을 명중시킨다. 

 

순신만 혼자 눈 뜨고 있는 것 같다. 전란이 닥치는 것을, 전쟁이 시작될 것을, 그만 혼자 가슴 가득 수심을 안고, 남을 어떻게 대비시킬 수 없어, 자기 지위로, 힘으로 방비할 수 있는 만큼 해 놓으려 다짐한다. 

 

바야흐로 전쟁이 시작되매, 순신은 무섭다. 

 

“수군 황옥천이 적에 대한 소문을 듣고 자기 집으로 도망간 것을 붙잡아와 머리를 베고 효시했다.” 

 

“여러 장수를 독려하여 명령해 한꺼번에 달려 들어갔다. 화살을 빗발치듯 쏘았다. 각종 총통을 바람과 천둥이 치듯 어지럽게 쏘았다.” 

 

화살에 맞은 놈이 몇 백 명인지 셀 수 없었다. 왜군의 머리도 숱하게 베었다. 군관 나대용이 철환에 맞고 순신도 왼쪽 어깨 위를 철환에 맞았다. 철환이 등을 꿰었건만 중상은 아니라고 썼다. 

 

어둡다, 새날이 멀지 않았다

 

유성룡이 ‘징비록’에 이렇게 썼다. 

 

“피가 발꿈치까지 흘러내렸으나 이순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싸움이 끝난 뒤에야 비로소 칼로써 살을 베고 총알을 꺼내니 두어 치나 깊이 박혀 보는 사람들은 얼굴이 까맣게 질렸으나, 이순신은 말하고 웃고 하는 것이 태연하여 보통 때와 같았다.”

 

억울하게 죄를 입을 무렵, 순신은 몸이 부쩍 안 좋아진다. 자주 아프다. 몸이 아주 불편하다. 밤에는 낮보다 배는 아프다. 끙끙 앓으며 밤을 지샌다. 

 

밤이면 땀이 나고 옷이 두 벌이나 젖을 지경이 된다. 자려 해도 잠들 수 없다. 활을 쏜 날 밤에 땀이 흘러내려 등을 적신다. 계속해서 땀이 흘러내렸다고 쓴다. 이것은 무슨 예감이었을까. 무의식이 몸을 통하여 의식에 보내는 불길한 전갈이었을까. 

 

순신의 일기는 정유년 음력 1월부터 3월까지는 없다. 역적으로 몰려 죽을 수도 있었던 것을, 4월1일에 감옥문을 나와, 3일에 동작나루로 한강 건너 남행길에 오른다. 

 

애통하게도 어머님이 13일 세상을 떠나시니 “뛰쳐나가 가슴을 치고 발을 구르며 슬퍼”한다.

 

고통은 어찌하여 한꺼번에 닥치는가.

 

“서러움에 찢어지는 아픈 마음을 어찌 다 말하랴. 어찌 다 말하랴.” 

“울부짖고 울부짖었다.” 

“목놓아 소리치며 울었다. 어찌하랴. 어찌하랴. 하늘과 땅에 어찌 나 같은 일을 당한 사람이 있으랴.”

 

어머니의 죽음조차 뒤로 하고 순신은 길을 떠나야 한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억울했을까. 정의는 땅끝에 떨어지고 나라를 팔아먹는 자들이 의기양양 의로운 자를 사납게 핍밥하는도다. 

 

판결이 무엇인지 모르는 자들이 사납게 ‘가벨(gavel)’을 두드리는도다. 주문이랍시고 헛소리를 외는도다. 

 

“슬프고 서러운 마음을 어찌 견디랴. 슬프고 서러운 마음을 어찌 견디랴.” 

 

누구에게 눈물 펑펑 흘리며 원균의 일을 말하랴. 흉악한 자들에 관해 말하랴. 순신의 옛날도 아닌 것을 어째서 이토록 처참해야 하나. 

 

“꿈에서 돌아가신 두 형님을 만났다. 서로 붙잡고 울부짖으며 가슴아파했다.” 

“펑펑 쏟아지는 눈물이 피눈물이 되었다.” 

 

하늘은 어찌하여 대답이 없으신가.

 

7월16일 새벽, 수군이 새벽에 기습을 당하여 크게 패한다. 비겁한 원균도 더 숨지 못하고 죽임을 당한다. 적을 보고 먼저 달아났다는 그였다. 이윽고 임금이 새로 명을 내리니, 이는 임금의 일이 아니라 천명이었을 것이다.

 

이틀 전 새벽, 미국에서 마두로의 자백 소식이 날아왔다 한다. 모든 일이 하늘의 뜻대로 돌아가리란 뜻일까. 

 

어두운 시대다. 캄캄한 암흑이 밀려오는 시대다. 그러나, 밤하늘, 별같은 이들이 있다. 발을 구르도록 억울하고 슬퍼도 인고의 힘으로 의연하게 버틴 이들. 새날이 바야흐로 멀지 않았다. 

 




◆ 방민호 교수

 

문학박사, 서울대 국문과 교수. 계간문학잡지 ‘맥’ 편집주간(2022년~)이자 시인, 소설가, 문학평론가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저서로 ‘연인 심청’(2015), ‘통증의 언어’(2019), ‘한국비평에 다시 묻는다’(2021), 서울문학기행(202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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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1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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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6-01-24 13:41:28

    마두로의 자백,,, 다왔네요 고지가 바로 앞이군요. 돌격 앞으로만 남은 것 같네요. 교수님,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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