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혁명당에 가담했던 신영복(왼쪽)과 ‘JMS’ 교주 정명석.통일혁명당(통혁당) 사건은 1960년대를 떠들썩하게 한 최대 규모의 간첩단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총 158명이 검거되고 50명이 구속됐으며 이 가운데 주범 격인 김종태·김질락·이문규는 사형에 처해졌다. 우리가 잘 아는 ‘처음처럼’의 신영복 전 성공회대 교수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20년 복역 후 전향서를 쓰고 석방됐다.
이상향을 꿈꾸는 사람들
그들의 표적이 된 명문대생
그런데 이 땅에는 통혁당 말고도 지상천국을 건설하는 것이 최종 목적인 단체가 또 있다.
기독교복음선교회(JMS) 같은 사이비 종교 단체가 바로 그들이다. JMS는 천국은 사후에만 가는 곳이 아니라, 이 땅에 ‘새 하늘과 새 땅’을 건설함으로 실현되는 지상천국이라고 주장한다.
JMS의 교주 정명석은 ‘메시아’ ‘재림예수’를 자처하며 신도들을 금전적으로, 성적으로 착취했는데 누가 이런 허접한 논리에 속을까 싶지만 놀랍게도 이 단체를 이끄는 이들은 명문대생으로 대표되는 사회 엘리트층이었다.
JMS는 키가 크고 외모가 뛰어난 젊은 여성과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재학생 등 명문대생을 주요 타겟으로 삼아 댄스나 미술 수업, 봉사 활동을 빙자해 그들에게 접근했다.
포교자는 대상자의 고민을 들어주는 등 친밀감을 형성한 후 정명석을 ‘메시아’ 또는 ‘선생님’으로 세뇌시켰다.
JMS는 신도를 유입할 때 ‘포섭–보고–지시–실행’이라는 단계적 전략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통혁당 역시, 조직의 세를 넓히는 데 이 방법을 따랐다는 것이다.
통혁당은 조직원을 포섭하는 단계에서 ‘선(先) 진보적 인텔리, 후(後) 기층인자’라는 원칙에 따라 대학가 지식인, 언론인 등 엘리트층에 먼저 접근했다. 특히 서울대생이 주요 타겟이었는데 그들의 학내 운동 조직에 침투해 학생들을 지하당 당원으로 영입하는 데 주력했다.
보고하면 지시하고, 지시하면 실행한다
정명석이 교인을 끌어들이는 두 번째 절차는 ‘보고 단계’였다. 이 단계에서 JMS의 2인자 정조은은 신도들의 명단, 사진, 키, 성격 등을 정리하여 정명석에게 보고한 뒤 미모와 기타 조건을 갖춘 여성들을 ‘스타’라는 조직으로 구성하여 관리했다.
통혁당 역시 주범인 김종태 등이 남한 내 조직 활동 상황과 군 정보, 시위 상황 등을 정리해 북한에 보고하는 절차가 있었다.
세 번째 ‘지시 단계’에서 JMS의 정명석은 간부들에게 특정 신도를 충남 금산군 월명동 수련원이나 해외 본거지로 부르도록 지시했다.
마찬가지로 북한 수뇌부도 남한의 지하당인 통혁당에 무장 폭동과 인민봉기를 목적으로 한 지하당 건설, 군부 내 침투 공작 등을 지시했다.
네 번째 ‘실행 단계’에서 JMS의 간부들은 정명석이 특정 신도와 단둘이 있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 뒤 신도에게 행동 지침을 전달했는데 그들은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은폐하고, 구성원을 회유하여 이탈을 방지했다.
이적단체인 통혁당도 ‘청맥’이라는 합법적인 잡지를 통해 사회과학·문학·시사 담론으로 손쉽게 대중에 접근한 뒤 지하신문인 ‘혁명전선’을 통해 조직의 정체성과 노선, 행동강령을 유포했다.
또 학원가에 침투해 학내 동향을 파악하고 민족해방전선’ ‘조국해방전선’ 등을 조직해 지하당 조직을 체계적으로 확장했다. 이 과정에서 김종태는 북한으로부터 6만6000달러(당시 환율로 약 1815만 원)의 공작금을 받아 조직 운영비로 사용하기도 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종교 집단인 정명석과 정치 집단인 통혁당이 공통적으로 엘리트층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는 점이다.
엘리트층 통해 사회적 영향력과 정통성 확보
임요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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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가 ‘사회악’ 혹은 ‘사이비’로 낙인찍히게 된 출발점은 범죄가 아니었다. 그것은 성경을 어떻게 읽느냐는 문제였다. 기독교 역사에는 두 해석 방식이 늘 공존해 왔다. 하나는 성경을 문자 그대로 고정해 읽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성경을 비유와 상징으로 기록된 계시로 읽어 그 성취를 역사 속에서 분별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후자를 택했다. 이 선택은 단순한 해석 차이를 넘어, 기존 보수 기독교의 교리 권위와 신앙 질서를 직접 흔들었다.
(2) 실제로 보수 기독교 진영에서 많은 성도들이 보다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성경 해석을 찾아 우리의 말씀을 접하고자 해 왔다. 성경 본문을 구조적으로 풀고, 예언을 현실 역사 속 성취로 설명하는 강의는 설득력을 가졌다. 이 흐름이 반복되자, 일부 보수 교단은 교리 논쟁만으로는 이를 막기 어렵다는 위기의식에 이르렀다. 그 시점부터 논쟁의 장은 해석에서 도덕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3) 우리의 교리는 네 가지 축으로 정리된다. 이는 새로운 교리를 만든 것이 아니라, 성경이 스스로 말하는 구조를 강의식으로 체계화한 것이다.
(4) 첫째 교리는 비유·상징 해석의 교리다. 예수는 “이 모든 것을 비유로 무리에게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다”(마태복음 13:34)고 했다. 또 “너희에게는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마태복음 13:11)라고 하여, 성경의 핵심이 아무에게나 자동으로 열리는 문서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 이는 예언이 문자 이전에 비유와 상징으로 기록되었고, 풀어야 할 비밀의 구조를 갖고 있음을 전제한다.
(5) 이 교리는 문자주의와 충돌한다. 문자주의는 예언을 이미 정해진 틀로 고정하지만, 우리는 성경 전체의 전후 맥락과 시대적 흐름 속에서 비유를 풀어야 한다고 본다. 이 해석 차이가 이후 모든 교리 갈등의 출발점이 되었다.
(6) 둘째 교리는 재림에 대한 교리다. 재림은 하늘에서 물리적으로 내려오는 장면을 기다리는 사건이 아니라, 약속된 말씀이 다시 나타나 성취되는 것이라는 이해다. 예수는 “볼지어다 내가 도둑같이 오리니”(요한계시록 16:15)라고 했다. 도둑같이 온다는 말은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는 방식의 임함을 뜻한다. 또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마태복음 24:27)는 말씀은 외형적 퍼포먼스가 아니라 인식의 전환과 말씀의 확산을 가리킨다.
(7) 우리는 재림의 핵심을 인물의 외형이 아니라 사명의 내용과 말씀의 성취에 둔다. 반면 보수 기독교는 재림을 미래의 초자연적 사건으로 고정해 기다린다. 이 차이는 ‘기다리는 신앙’과 ‘분별하는 신앙’의 충돌로 이어졌다.
(8) 셋째 교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의 교리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이사야 65:17),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요한계시록 21:1)라는 말씀에서 하늘은 통치와 사상, 땅은 인간 사회를 상징한다. 이는 우주의 물리적 교체가 아니라, 사상·가치·삶의 질서가 새롭게 창조되는 변화를 말한다.
(9) 그래서 천국은 죽어서 가는 장소 이전에, 말씀을 중심으로 바뀐 삶의 질서다. “하나님의 나라는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누가복음 17:21)는 말씀은 신앙의 초점을 현재의 변화에 둔다.
(10) 넷째 교리는 구원과 책임의 교리다. 구원은 고백 한 번으로 끝나는 결과가 아니라, 깨달음과 행함으로 이어지는 과정이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야고보서 2:17),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야고보서 1:22)는 말씀은 구원이 삶으로 증명되어야 함을 분명히 한다.
(11) 이 네 가지 교리는 보수 기독교의 문자주의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교리 논쟁이 깊어질수록 신앙의 주도권 문제와 신도 이동 문제가 겹쳤다. 그 결과, 교리로는 더 이상 설득이 어렵다는 판단이 형성되었고, 논쟁의 장은 급격히 이동했다.
(12)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이 사회악·사이비 프레임이었다. 교리를 반박하기보다 집단을 도덕적으로 규정하는 편이 훨씬 빠르고 강력했기 때문이다. 이 프레임은 교리를 읽지 않아도 즉각적인 분노를 유발했고, 토론은 중단되었다.
(13) 이 전환에는 내부의 취약성이 작용했다. 내부에서 이성 문제나 금전 문제를 일으킨 일탈자들이 있었고, 더 심각하게는 이들과 이해관계를 맺고 사실을 은폐·왜곡한 변질된 소수 비리 지도자들의 문제가 있었다. 이들은 탈퇴한 일탈자들과 결합해 사실을 조작했고, 언론에도 왜곡된 정보를 흘렸다. 그 과정은 다수의 일반 지도자들과 평신도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장기간 누적되었다.
(14) 이 사실을 뒤늦게 인지한 평신도들과 일부 지도자들, 그리고 변질된 내부 비리 소수 지도자들 사이에서 격렬한 분쟁이 발생했다. 다수의 성도들은 자신들이 모르는 사이 벌어진 내부 조작과 권력화의 실체를 알게 되었고, 현재 우리는 이 문제를 정리하고 바로잡는 과정에 있다. 이는 회피가 아니라, 늦었지만 반드시 거쳐야 할 내부 정화다.
(15) 그러나 이 내부 문제가 해결되는 동안, 우리는 사회적으로 이미 ‘사회악’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수십 년간 집단 전체가 하나의 범죄 서사로 묶였고, 다수의 평범한 성도들은 아무런 설명의 기회도 없이 마녀심판의 대상이 되었다. 교리는 검토되지 않았고, 내부의 제지와 훈계는 지워졌다.
(16) 이 상황은 지양되어야 한다. 종교의 옳고 그름은 교리로 토론되어야 한다. 범죄가 있다면 개인의 책임으로 다뤄져야 하고, 조직의 제도적 실패는 시민사회적 기준으로 비판받아야 한다. 그러나 교리 논쟁을 건너뛰고 사회악 프레임으로 단정하는 방식은 사회의 사고 능력을 약화시킨다.
(17) 이제 논쟁은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이단이냐 정통이냐의 문제는 다시 성경 구절과 해석의 타당성으로 검증받아야 한다. 동의하지 않을 자유는 존중되어야 하지만, 해석의 차이를 이유로 집단 전체를 사회적으로 제거해서는 안 된다.
(18)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면죄가 아니다. 정확한 토론이다. 빠른 분노가 아니라, 성경과 사실에 근거한 판단이다. 그때에야 비로소 이 문제는 사회적 낙인이 아니라, 신앙적 논쟁으로 다뤄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