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방민호 칼럼] ‘징후들…’ 세상이 바뀌고 있다
  • 방민호 교수
  • 등록 2026-02-05 16:18:10
기사수정
  • 터져 나오는 반성의 목소리, 달라지는 기류
  • 성찰과 회심의 시간… 진정한 자유 생각할 때

윤석열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성찰과 회심의 시간이다. 어둡고 괴로운 긴 밤이 깊더라도 삼천리 이 강산에 먼 동틀 날은 멀지 않았으려니 한다. 동포들이 자리 차고 일어날 날 있으리라 여긴다. 산 넘고 바다 건너 태평양까지 자유의 종 울릴 날 있으리라 생각한다. 

 

어둠이 흐린 바다 건너 물러가고 눈물과 한숨도 함께 물러가고 동포들이 두 손 모아 함께 만세 부를 날 있으리라 생각한다. 휴전선 너머 압록강 두만강 너머 광막한 시베리아 벌판 넘어 해방의 깃발 날릴 날 있으리라 여긴다.

 

“계엄 하는 것이 나았다” 반성의 목소리

 

역사는 다른 방식으로 반복되는 것도 같다. 어둠이 깊고 길면 사람들 의식도 밤을 닮아 명징함을 잃는다. 전도된다. 거꾸로 선다. 올바른 것이 잘못된 것이 되고, 부정의가 정의의 탈을 쓰고 강압과 억압이 자유의 확성기를 흉내 낸다. 그러나 진정한 자유와 해방의 날 있으리라. 인인이 강탈당한 주권을 되찾는 날 오리라. 

 

조짐들,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우선, 한 작가가 보내온 어떤 분의 ‘반성문’이다. 

 

“계엄 직후에는, 부정선거의 증거가 확실하다면 계엄은 정당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이 부적절하다고 생각하며, 계엄은 너무 극단적이며 다른 방법을 썼어야 한다는 취지로 대통령을 비판하는 글을 썼었는데, 지금 한국의 사법부, 선관위, 언론, 국민의힘 상태와 미국에서 일어났던 부정선거와 그 뒷배경을 보니 계엄을 하는 것이 나았다는 생각이 든다. 윤 대통령이 계엄을 선언했던 것에 대해 비판했던 것에 대해 사과한다.”

 

돌이켜 보면 사고의 프레임이란 무섭다. 사고가 어떤 틀에 갇혀 버리면 거기서 빠져나오기란 결코 쉽지 않다. 

 

계엄이 부정선거에 결정적 요인이 있고, 그것이 내란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비판했던 것을 사과할 수 있는 용기마저 보였다면, 이분은 자신의 눈을 가리고 있던 어떤 ‘프레임’에서 빠져나온 것이다. 어쩌면 이분은 프레임에 쉽게 갇히지 않는 내성을 갖추었을 수도 있다.

 

용인시 공무원 1385명의 지선 거부 

 

다음, 용인시 공무원 1385명이 6월에 있을 지방선거 거부를 표명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용인시 공무원노조 소속 공무원 가운데 절반이 넘은 숫자라 한다. 언론은 이를 최근 들어 부정선거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는 데다 선거사무에 차출된 공무원이 고발당하는 사례도 있기 때문이라 해석했다. 

 

그러고 보니, 지난해 선거에서 회송용 봉투 안에서 이미 기표된 투표지가 발견되었던 것이 바로 이 용인의 한 지역이었다. 공무원들의 ‘집단 거부’ 사태는 작년의 부정선거 사례에 대한 반응이라 평가될 수 있다.

 

레거시 미디어, 미국발 부정선거 언급 

 

이른바 레거시 미디어에서 미국 대통령의 부정선거 관련 언급을 ‘여과 없이’ 내보낸 것도 변화라면 큰 변화로 해석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채널A의 보도. 현지 기자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국가가 선거를 관리해야 한다는 말의 뜻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선거가 정직하게 치러지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부정선거가 벌어지는 걸 보면, 우리는 그런 사례를 충분히 봤습니다. 연방 정부가 개입해야 합니다. 2020년을 보세요. 지금 드러나고 있는 사실들을 보면 조작되고 부패한 선거였습니다. 디트로이트를 보세요. 펜실베니아를 보세요. 필라델피아를 보세요. 애틀랜타를 보세요. 선거에서 엄청난, 끔찍한 부패가 있었던 지역들입니다. 연방정부는 이런 상황을 그냥 두어서는 안 됩니다. 만약 합법적이고 정직하게 표를 셀 수 없다면 다른 누군가가 그 역할을 맡아야 합니다.”

 

‘전 학원 강사’의 귀국이 말하는 것

 

징후들은 계속된다. 미국에 오래 체류하며 유튜브 영상으로나 만날 수 있던 ‘전 학원 강사’께서 급기야 부정선거 영화 ’2024.12.3. 그날-조작된 내란 감추어진 진실’의 시사회에 맞춰 귀국을 결행했다. 

 

인신을 구속당할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162일 만에 이 나라로 돌아오기를 결심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법률을 피하고 싶지도 않다고 말했지만, 그보다도 이를 감수할 만큼 때가 무르익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다가오는 2월19일 지귀연 판사의 재판에서도 오직 헌법과 법률과 실체적인 진실에 근거해서 선고되기를 소망합니다.” 

 

해석하기에, 이 나라의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선고를 앞두고, 그 판사에게 정직함을 요구할 수 있으려면 그 자신이 먼저 신변의 위험을 무릅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자신이 먼저 희생할 수 있다면 다른 이들도 함께 같은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이다. 

 

707 특수임무대 단장의 다짐

 

또한, 그 12월3일 밤 국회로 출동했던 707 특수임무대 단장께서 자신의 태도를 분명히 하고 나선 일도 있었다. 

 

“레거시 미디어보다 유튜브를 신뢰하시던 부모님께 그건 가짜뉴스다, 너무 믿지 마시라, 했던 제가 이제는 진실에 눈을 뜨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국회는 무너졌고 언론은 이미 좌편향되었습니다. 검찰과 판사도 정치의 도구가 되었고 제가 사랑하는 군대마저 정치화되고 정치군인들로 인해 무너져가고 있음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제 한국군대는 싸워 이길 수 없는 군이 되고 있습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고, 이것을 방치하고 동조하고 있는 군 수뇌부는 역사의 죄인이 될 것입니다.”

 

본분을 잃지 않은 군인들이여, 정의롭기 위해 파면과 감옥을 두려워하지 않는 군인들이여, 그대들은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그러나 그대들은 부끄럽지는 않으리라. 시간이 곧 당신들의 명예를 되돌려 주리라.

 

“숨길 수 없는 한밤중의 등불이 켜졌다”

 

이제 마지막 하나의 일에 관해서 써야 하겠다. 그는 ‘바터팽대부암’이라는 희귀한 병을 앓고 수술해서 완치 판정까지 받았지만 재발, 폐로까지 다발성 전이가 되어 “기적이 아니면 완치가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고 썼다. “나는 요즘 남은 날을 계산하는 습관이 생겼다”고 그는 썼다. 

 

이 문장들이 포함된 그의 문장은 삶의 모든 무거움을 초극해 버린 영혼의 ‘내면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 투명한 영혼의 상태에서 그는 12월3일에 대해 이렇게 썼다. 

 

“2024년 12월3일 윤통의 계엄은 드디어 내 인생의 한 텀에 하나의 마침표를 찍었다. 내가 해오던 일이 이제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는 최상위 담론에 걸려버렸기 때문이다. 숨길 수 없는 한밤중의 등불이 켜졌다. 그래서 나는 윤통에게 인생의 빚을 지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그는 나와 같은 대학 5년 후배였다. 학창시절에 알고 지낸 것도 아니었고 무슨 일을 하며 살아가는지도 몰랐던 한 사람의 삶이 이처럼 절실하게 느껴진 적이 없다. 

 

지난 몇 년 사이에 내 곁에서 소중한 사람들이 죽음이라는 ‘사건’으로 떠나갔다. 그들 중에는 차마 깃든 정을 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들도 있었다. 

 

이제 생면부지의 그가 “엘리야 같이 로뎀나무 아래에서 쉬고 싶다”고 쓴 것을 보며, 찾아본다. ‘로뎀나무’는 “사막이나 광야에서 드물게 자라는 나무”이고, “그늘도 작고, 열매도 쓸모없는 나무”라고 한다. 

 

그래서 ‘로뎀나무’는 “잠시 술 돌리는 최소한의 쉼”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래서 이 장면은 “사명이 끝났다고 느낀 예언자의 탈진(burnout)”을 뜻한다고 한다. 계속 설명한다. “엘리야는 큰 기적을 행했지만, 세상은 바뀌지 않았고, 혼자 싸운 느낌만 남았다”고 한다. 

 

그래서 ‘로뎀나무’ 아래는 “승리 후의 허무, 영적 탈진, 완전한 고립의 자리”라고 한다. 나는 성경을 모르므로 엘리야의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먹을 것을 주고 재우고 다시 먹이고 다시 재웁니다.” 그래서 ‘로뎀나무’는 “실패의 장소”가 아니라 “회복이 시작되는 지점”이라고 한다. 

 

진정한 ‘자유’와 ‘해방’이란 무엇인가 

 

이렇게까지 알게 되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그동안 얼마나 외로웠느냐, 힘들었으냐, 안아주고 싶어진다. 성찰과 회심(repentance)의 시간이다. 

 

그와 내가 어쩌면 여러 번 마주쳤을 수 있는 그 1980년대 말에 나는 전혀 다른 사유틀 ‘속’에 있었다. 마치 종교처럼 숙명처럼 그 사상을 내 것으로 만들고자 애썼다. 적어도 북녘땅의 종교는 아니었지만 그로부터 오랫동안 나는 ‘낡은’ 사상의 프레임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오늘에 이르는 동안 나는 사상의 방랑자였다. 눈보라와 황사바람 속에서 눈도 제대로 못 뜨고 나아가야 했다. 지난 1년 2개월, 나는 내가 단단히 디디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까지 다시 한 번 회의하고 또 회의하고자 했다. 

 

가난한 이를 위한다는 마음이 곧 사상인 것은 아니다. 살상과 전쟁을 미워한다는 것도 아직은 사상의 걸음마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 어떻게 추구할 것인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그때 부르던 노래 속에 나오는 ‘자유’와 ‘해방’이란 무엇이어야 하는가. 

 

나는 묻고 또 물어야 한다. 그러나 내가 미처 해답을 얻기도 전에, “구석지고도 어두운 마음의 거리에서” “어느덧 첫닭이 울고 뭇 개가 짓도다.” “벗들아, 너도 듣느냐?” 

 


 


◆ 방민호 교수

 

문학박사, 서울대 국문과 교수. 계간문학잡지 ‘맥’ 편집주간(2022년~)이자 시인, 소설가, 문학평론가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저서로 ‘연인 심청’(2015), ‘통증의 언어’(2019), ‘한국비평에 다시 묻는다’(2021), 서울문학기행(2024) 등이 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0
좋아요
0
감동이에요
0

이 기사에 1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 프로필이미지
    guest2026-02-05 19:31:54

    멍청도 견찰은 국민신문고 등 공문서 무단유출 은닉자도 불송치하는데 ㅋ 꼴통 새끼들 ㅋ 홍홍홍ㅋ

유니세프-기본배너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