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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나 “대한민국의 좌경화를 걱정한 적 있는가”
  • 임요희 기자
  • 등록 2026-02-12 22:5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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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민당의 압승, ‘좌경화의 독소’ 온몸으로 막아낸 결과
  • 한국의 정치·교육·역사·문화… 이미 특정 이념에 잠식

토요일 도쿄 레키센 공원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중의원 선거 유세 연설을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 경찰관들이 경비를 서고 있다. [재팬타임스 캡처]

중의원 해산 이후 실시된 일본 총선에서 집권 여당인 자민당이 총 316석을 확보하며 전체 의석 중 3분의 2가 넘는 압도적 지지를 확인시켰다. 


김규나 작가는 페이스북에 연재 중인 ‘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299회)에서 사사키 조의 ‘경관의 피’를 언급하며 일본의 이번 선택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역설한다. 

 

체제의 근간 지킨 일본 경찰 가문 이야기

 

사사키 조의 소설 ‘경관의 피’에는 3대에 걸쳐 시대의 어둠과 싸운 경찰 가문이 등장한다. 김 작가는 이 소설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사사키 조의 소설 ‘경관의 피’

“특히 2대 안조 다미오가 홋카이도 대학 적군파의 심장부에 침투해 공산주의 파급을 막아내던 웅크린 세월은 일본 현대사의 뼈아픈 기록이다. 

 

잠입 수사의 압박에 영혼이 마모되면서도 그들이 지키려 했던 것은 단순한 치안이 아니라 체제의 근간이었다. 

 

일본이 전후(戰後) 좌익 세력의 집요한 분열 책동을 이겨내고 오늘날 자민당의 압승을 통해 사회 저변의 공산당 그림자를 걷어낼 수 있었던 바탕에는, 이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좌경화의 독소’를 온몸으로 막아낸 앞선 세대의 처절한 헌신이 있었다. 

 

타국의 우경화를 근심하는 한국 언론의 시선이 결코 닿지 못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일본은 이미 수십 년 전, 누군가의 영혼을 제물로 삼아서라도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처절하게 질문하고 답을 내렸던 것이다.”

 

김 작가는 “일본의 유권자들은 불안한 국제 질서의 파고 속에서 ‘강한 국가’라는 생존의 선택지를 집어 들었다”며 “그것은 누군가의 선동이 아니라, 시대를 온몸으로 겪어낸 시민들이 체감 온도로 써 내려간 준엄한 답변이었다”고 강조한다.

 

압승 직후 다카이치 총리는 “승리에 취해 있을 시간이 없다”는 일성으로 국가 안보와 인텔리전스, 경제를 최우선 과제로 올렸음을 환기시켰다. 

 

일본 사회의 위대한 합의 비웃는 한국 언론


김 작가는 “내 나라는 내 손으로 지킨다는 그의 일념은 선언을 넘어 일본 사회의 거대한 합의가 되었다”며 “미국을 비롯한 자유 진영은 이를 반가운 신호로 읽었고, 중국의 압박이 역설적으로 일본 정치의 구심점을 단단하게 벼려냈다고 분석했다”고 전했다.

 

자민당의 총선 압승 직후 다카이치 일본 총리는 “승리에 취해 있을 시간이 없다”는 일성과 함께 국가 안보와 인텔리전스, 경제를 최우선 과제로 올렸다. [EPA=연합뉴스]

아울러 “이와 같은 맥락은 한국의 주류 언론 보도에서 좀처럼 중심에 놓이지 않는다”며 대신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되나’ ‘강한 일본, 위험한 우경화’ ‘군국주의의 부활’ 같은 문장이 헤드라인을 장식한다고 개탄했다. 

 

이어 “안보 환경의 변화, 중국의 압박, 미·일 동맹의 재조정이라는 현실적 배경은 뒷전으로 밀어내고, 일본 국민을 마치 위험한 버튼을 누른 철부지 아이들처럼 묘사한다. 일본 사회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를 분석하기보다, 자신들 눈에 ‘잘못된 선택’을 한 그들을 훈계하는 것이 한국 언론의 도덕적 사명인 것처럼 ‘우경화’라는 낙인만 반복한다”고 덧붙였다.

 

또 “이 낯익은 훈계는 ‘군국주의의 전철을 밟지 말라’며 짐짓 점잖게 압박하는 중국의 엄포와 닮아 있다. 총을 들지 않은 간섭, 논리가 아닌 도덕의 탈을 쓴 겁박. 한국의 주류 언론은 일본을 향해 늘 그 문장을 대독(代讀)해주고 있는 셈이다. 

 

진정한 아이러니는 여기서 시작된다. 세계가 오른쪽으로, 즉 자국 우선주의와 실리적 안보의 길로 거침없이 나아갈 때, 한국만 거울을 거꾸로 든 채 남의 그림자만 비난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다음은 김 작가가 꼽은 ‘경관의 피’의 주요 대목이다. 

 

“쇼와 23년 이후로 일본의 내부 균열은 더욱 확장되었다. 힘을 키운 노동자들은 전쟁 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전투적인 운동을 펼치게 되었고, 공산당도 세력을 확장해 일부는 진심으로 폭력 혁명을 지향하고 있었다. 

 

노동자와 좌익 학생들이 파출소나 주재소를 뒤덮었고, 경관이 권총을 빼앗기는 사건도 몇 건이나 발생했다. 석 달 전에는 북한군이 삼팔선을 돌파해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맥아더가 이끄는 유엔군이 인천에 상륙하여 북한군을 삼팔선 이북으로 몰아낸 다음에야 일본 내의 공기도 겨우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았다. 

 

하지만 향후 한국의 정세에 따라서 일본 내에서도 급진적인 좌익운동이 고조될 것이다. 일본의 공공기관 내에서는 좌익운동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졌다.” 

 

‘애국’이 곧 ‘극우’와 동의어가 되는 현실

 

이어지는 김규나 작가의 글은 대한민국의 현실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미 우리 주변의 풍경은 특정 방향으로 완전히 기울었다. 근로 현장은 강성 노조의 영향력이 깊숙이 자리 잡았고, 정치·교육·역사·문화 영역은 특정 이념에 잠식되었다. 

 

이 땅에서는 애국이 곧 극우의 동의어가 되고, 안보는 전쟁광의 서사가 된다. 자유와 동맹의 가치를 설파하면 냉전의 유령을 불러냈다는 죄목이 붙는다. 

 

이른바 586세대를 중심으로 한 친중·친북 노선은 지성의 한 갈래처럼 포장되고, 친미·친일은 매국의 언어처럼 취급된다. 총칼만 들지 않았을 뿐, 한국 사회는 이미 치열한 이념 전쟁의 한복판에 서 있다.

 

그럼에도 한국 언론은 일본의 우경화만을 걱정하며 부적처럼 ‘극우’를 외친다. 그들에게 ‘좌경화’라는 단어는 입 밖으로 내뱉어서는 안 될 금기어다. 

 

질문은 늘 담장 밖을 향하고, 병든 내부는 성역으로 남겨둔다. 균형을 입에 올리지만 저울의 한쪽 접시는 이미 바닥에 닿아 있다. 

 

민주주의가 가장 치명적인 위기에 봉착하는 순간은, 타인의 선택을 도덕적으로 난도질하면서 자신이 앓고 있는 고질병은 애써 외면할 때다. 우경화가 위험의 징후라면, 좌경화야말로 파멸의 전조다.”

 

마지막으로 김 작가는 “오랫동안 한쪽으로만 고개를 돌려온 당신들에게 묻는다”며 “타국의 우경화를 감시하느라 정작 우리 영혼을 잠식한 좌경화의 검은 그림자를 단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걱정해 본 적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한, 그들이 외치는 ‘평화’와 ‘균형’은 허구일 뿐”이라고 일갈했다.

 

깨어나라, 개인이여!

일어나라, 자유 대한민국이여!

 

김규나 작가는 ‘소설 같은 세상’을 페이스북에만 싣고 있다. 자율 구독료는 1만 원이다.

 

신한은행 110-072-537351 

예금주: 김규나





◆ 김규나 작가

 

작가는 2006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내 남자의 꿈’이, 200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칼’이 당선돼 등단했다. ‘트러스트 미’ ‘체리레몬칵테일’ 등의 장편소설을 출간했으며 최근 ‘소설로 읽는 세상’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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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NSKim33162026-02-13 03:38:24

    어느 집 머슴이 백정을 찾아가서 주인 집 소를 훔쳐 올테니 당신이 그걸 도축해서 팔아서 반씩 나누어 갖으면 어떻겠느냐고 제의를 했다.
    그러자 백정은 얼른 수락을 했다
    소를 훔쳐온 머슴은 백정이 소고기를 판 값을 가지고 오기를 기다렸으나 꿩궈먹은 소식이었다.
    머슴은 백정을 찾아가서 어떻게 된거냐고 따졌으나 백정은 “무슨 소 말이냐?” 하면서 오리발을 내밀었다.
    애가 탄 머슴은 그러지 말고 소를 훔쳐온 수고값으로 다만 소고기 몇 점만이라도 달라고 애걸하였지만 백정은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했다.
    머슴은 소 주인을 찾아가 백정이 소를 훔쳐갔다고 하면서 그걸 되찾아와야 한다고 했다.
    소가 없어진 것 때문에 속이 상해있던 소 주인은 그제야 진상을 눈치채고 머슴을 내 쫓았다.

    위의 이야기는 구성이 다소 엉성하긴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시작해서 오늘의 이재명 정권이 들어서게 되기까지를 “제깐엔 약게 군다고 잔머리 굴리면서 주인집 소 훔쳐서 백정에게 통째로 갖다 바치고 빈손으로 쫓겨난 머슴의 이야기”를 박근혜 탄핵의 주역이었던 수구꼴통 정당 새누리당과(미통당)과 그 후신인 국힘당에 비유를 해 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것이 현재 한국의 모습인 것이다
    어차피 소는 백정 손에 도축되어 없진 것이고 백정은 머슴이 훔쳐다 준 소를 받은 죄 밖에 없으니 백정의 장물아비 죄는 경찰에서 알아서 할 일이었다.
    대한민국도 도축되어 사라진 소 마냥 수구꼴통들(머슴)에 의해 문재인(백정)에게 팔렸고 다시 이재명에 의해 중공과 북한의 손에 넘어갔으며 박근혜 탄핵 이후 전개된 좌우의 대결에사 수구꼴통들은 완패했다.
    수구꼴통들의 뒷배들인 조중동 주류 언론사 사주들은 이제 장사 안되는 회사(국힘당) 부도내 버리고 다른 사업꺼리 찾는 전주들처럼 자기들끼리 수군거리고들 있을 것이다.
    수구꼴통들은 이제 사실상 영구 퇴출이다. 다들 헤쳐모여 식으로 권토중래를 꾀하겠지만 옛날같이 큰소리치고 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로 자기 소신을 내 놓고 투쟁하던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무언가 참신한 재 출발들을 하면서 새로이 민심을 모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기회주의와 보신주의로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던 자들은 정말 오갈데 없어 이리저리 헤매다가 더불어 민주당에 빌붙어서라도 구차한 정치생명을 이어가 볼까 하는 한심한 자도 나올 것이다.

    그런데 머저리 수구꼴통들은 자기들이 왜 퇴출되고들 있는지를 모르고 있다.
    나는 여기서 그 이유가 무엇인가 나 나름데로 주장하고픈 것이 있어 붓을 든다.
    수구꼴통들이 이번 총선에서 참패하고 퇴출의 위기에 몰린 이유는 단 하나다.
    수구꼴통들은 빨갱이들이 수구꼴통들에게는 없는 무기가 하나 있는 것을 모르고들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국가관(國家觀)”이라는 것이다.
    국가관이란 한마디로 “어떠한 국가를 세워야 국태민안(國泰民安)을 이룩할 수 있는가?”에 대한 해답을 말한다.
    나는 빨갱이 그들의 공산주의적인 이념을 절대로 반대하지만 그래도 어쨌든 빨갱이들은 그 공산주의를 토대로 한 국가관이란게 정립이 되어있고 그렇기에 빨갱이들은 일사불란하게 “어떠한 국가를 세워야 하는가?” 하는 자기들 나름데로의 하나의 확실한 목표를 향해 투쟁을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수구꼴통들에겐 “국태민안을 이룩할 수 있는 국가란 어떤 국가라야 하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이 전혀 준비되어 있지를 않다.
    이들은 그저 어릴 때부터 선대가 만들어 놓은 온상속에서 호의호식하며 자란 탓에 한번도 세상사를 놓고 고민을 해 본 일이 없으니 그저 한자리 주면 시키는 일이나 하면서 자리나 지키는 것이 할 줄 아는 것의 전부일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이런 류의 사람들에겐 정당을 옮기고 정치 노선을 바꾸는 것이 마치 회사를 옮기는 일마냥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나 어려움을 느낄 필요가 없는 일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문제가 생길 때 마다 문제의 핵심을 정의하는 일과 활동의 구심점을 잡는 일에 실패하고 자기들끼리 패가갈려 우왕좌왕 하다가 와르르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또한 수꼴들은 성장 환경상 국가관이란 개념보다는 개인의 출세욕에 의해 길들여지며 자랐기에 언제나 사욕이 앞서게 되어 이미 선대의 지도자들이 만들어 놓은 국가의 토대마저 흔드는 실수를 범하게 되는데 그 중 가장 치명적인 사건이 바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15세기에 영불간에 있었던 백년전쟁에서 연전연패를 거듭하면서 사실상 멸망의 위기에 있었던 프랑스에서 영국군을 몰아내고 프랑스를 해방시킨 여전사 쟌다크에 비유될 만한 여걸이었다.

    당시 쟌 다크는 열 일곱살의 어린 나이에 신의 계시를 받고 버들가지 같은 연약한 몸으로 무거운 칼을 들고 앞장서서 프랑스를 백년째 유린하고 있던 영국군과 싸워 이들을 몰아내고 프랑스를 해방시킨 여전사였다.
    박근혜 역시 대통령이 되자마자 과거 수천년 동안 역사적으로 언제나 우리 한국보다 우위에서 우리들을 눌러 왔었던 중국과 일본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 놓았던 여걸이었다.
    중국의 시진핑이나 일본의 아베가 국제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면 서로 자기 쪽으로 끌어가려고 안달을 했던 일들이며 영국을 방문하셨을 때 영국 여왕 엘리자베트 2세가 할머니가 손녀딸을 챙기듯 박 대통령이 쓰실 물건들을 일일히 챙기셨던 일을 모두들 기억하실 것이다.
    그러나 쟌다크도 박근혜도 두 여인 모두 부패한 기득권자들의 시샘을 받아 억지로 끌어내려져서 감옥에 갇히었으며 쟌다크는 결국 화형에 처해졌고 박근혜 역시 미국같은 나라가 개입하지 않으면 언제 어떻게 수구꼴통들과 빨갱이들 손에 위해를 당하실지 모르는 상황이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의 부활을 가장 두려워하는 자들은 의외로 빨갱이들이 아니라 수구꼴통들임을 다들 알아야 할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더 이상 길게 이야기 하지 않겠다.

    한마디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대한민국의 명맥을 끊어놓은 민족사적인 대 사변이요 비극이라 해야 할 것이다.
    이 것이 대한민국 핵심계층 중에서도 최고 엘리뜨들에 의해 저질러졌다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어도 너무나 없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입맛이 써서 더 이상 말을 안 하겠다.

    故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실 무렵 대한민국의 경제력은 아직 선진국의 대열에 진입하기는 미진한 상태였다.
    그러나 그때 이미 산업화의 기초산업이라 할 중화학 공업이나 철강산업, 그리고 전자산업 등이 이미 그 토대가 완전히 다져진 상태였다.
    그래서 그 분이 돌아가시고 그분의 지도역량이 사라진 뒤에도 대한민국의 산업화는 마치 시동이 걸린 엔진처럼 자기혼자 쉬지않고 진행되어 21세기에 들어설 지음에는 이미 선진국의 문턱에 다 달았고 박근혜 대통령 때는 오천년 역사상 우리 한 민족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온 세계의 부러움을 살만큼 최 성기에 들어섰었으며 박근혜 대통령은 각종 국제회의에 참석할 때마다 꽃처럼 사랑을 받았었고 그때마다 빨갱이들과 수구꼴통들은 박 근혜 대통령을 시샘하여 폄훼하기에 바빴었다.
    오죽하면 탄핵소동이 한창이던 당시 탄핵반대 시위에 연사로 참석해서 기염을 토했었던 故 정미홍 여사가 박근혜 탄핵의 뒷배 노릇을 하던 두 언론사 중앙일보사 사주 홍석현과 조선일보사 사주 방상훈에게 “배가 아프시냐?” 하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었겠는가?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끝내 불법 탄핵으로 억지로 끌어내려 지자마자 대한민국의 국제적인 위상과 국격도 동시에 급속히 끌어내려져 이제 한국은 사실상 중국의 한 변방 속국으로 전락하였으며G20에서도 퇴출될 위기에 몰려 있다고 한다.
    이것에 안도하고 환호하기는 빨갱이들보다 수구꼴통들이 더 하다니 기가막히다 못해 허탈증마저 느껴진다.

    이야기가 잠시 빗나가서 다시 원위치로 돌린다.
    이들 수구꼴통들은 애초부터 국가관이란 것이 없었기에 이미 세워져 있는 국가의 국체가 어떤 것이든지 그저 한자리 주면 그 자리에 앉아 자기부서 아랫 사람들이나 관리하면서 옆엣부서에서 넘어온 서류나 처리해서 도장을 찍어 다음 부서로 넘기는 “사무능력”을 대통령의 “지도역량”이나 국회의원 같은 사람들의 “정치력”으로 착각들을 하고있는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기억력이 뛰어나서 무엇이든 달달 외우는 데 능하다는 것인데 그래서 이런 사람들이 나중에 사법고시나 행정고시, 외무고시 등 각종 고시를 통과하여 법조계나 정부 각 부처에서 남보다 이른 나이에 발을 디어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은데 가장 전형적인 인물이 바로 박근혜 대통령 시절 국무총리를 지내다가 후에 수꼴 사탄파에 붙어먹은 “황교안”이란 인물이다.
    이자는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자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있으면서 한 일이라곤 “대통령 권한대행 황교안”이란 금박시계나 만들어 측근들에게 돌린 후 자리나 지키다가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아무 말 없이 대한민국을 반미 친중 종북 정당인 더불어 민주당에게 넘겨준 것이 한 일의 전부였다.
    황교안 이 사람을 평가하라면 그저 책을 많이 읽어서 외우고 있는 것은 많지만 사물을 판단하는 능력의 수준은 “동회 서기” 수준 정도인 사람으로 평가하면 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황교안 같은 사람은 한마디로 전형적인 “한국식 수재” 에 속하는 인물이다.
    “한국식 수재”란 다름 아니라 뛰어난 기억력 덕분에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해서 똑똑하다는 소릴 듣고 자란 사람들로 커서도 모든 세상사가 그저 영어, 수학등 공부성적으로 해결되는 것이며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보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은 국민을 학교성적 순이나 수능 시험 성적순으로 줄을 세워서 사람을 분류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로서 명문학벌출신들, 특히 명문학벌에 고시출신들이 이런 경향이 강하다.
    대선에 출마했다가 김대중과 노무현에게 연속 고배를 마셨던 어떤 사법고시출신의 영감님은 대선운동당시 꼬붕들이새로 사람을 데려와 소개하면 의례이 "그래, 자넨 몇회인가?"하고 물었다고 한다.
    이 영감님은 자기가 다녔던 그 명문 고등학교에 대한 자부심이 어릴적 부터 머리에 각인이 되어있어 일단은 상대방이 어느 고등학교 출신인가부터 알아내서 자기와 비교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었던 것이다.

    이런 류의 사람들이 그렇게 되는 이유는 평생 자기가 쌓아온 인생경력이란게 영어수학을 바탕으로 하는 고교입시와 대학입시에서 시작해서 각종 고시, 학위논문작성에 이르기까지 시험공부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머릿속에는 언제나 자기의 학벌이나 학위등 사회적인 지위가 늘 자리잡고 있어서 항상 그것을 의식하고 있고 그래서사람을 볼 때 우선 그것부터 관심을 갖게되고 그것으로 자기와 비교를 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평생을 윗사람이나 학교 선배들에게 잘보여 고위직에 발탁되어 임명되는 것으로 자신의 이력을 쌓아온 탓에 모든 것이 그저 줄만 제대로 찾아 서면 그 다음부터는 선배들의 배려로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며 지나가는 개라도 자기를 보면 절을 하고 지나가야 한다는 그릇된 대인관을 가지고들 있는 것이다.

    다른 예로서 반기문이 있다.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이자는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오바마에게서 눈도장을 받아 그걸 믿고 유엔 사무총장 퇴임 후 귀국 비행기 안에서 기자들에게 자기는 촛불데모에 참가하겠노라는 말까지 했지만 귀국 직후 찾은 봉하마을에서부터 냉대를 받기 시작했다.
    미국 대통령 오바마에게서 차기 한국 대통령으로 “임명”을 받은 반기문은 자신의 출현에 대해 암행어사 출도 같이 떠들석한 반응이 있을줄 알았지만 기대와는 반대로 의외의 푸대접에 당황을 했을 것이다.
    거의 평생을 살벌한 정치판에서 풍찬노숙이나 다름없는 온갖 눈치밥을 먹어가면서 정치경력을 쌓아서 자신들의 입지를 굳혀온 한국 내의 기성 정치인들은 반기문을 그야말로 일제히 반갑지 않은 불청객 취급을 하며 문전박대를 했을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눈치없는 반기문이 그런 것을 예상했을 리가 만무했다.
    결국 반기문은 어디에도 발을 못 붙이고 사라져 버렸고 지금은 수소문해서 찾아보기 전에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지내는지도 모를만큼 파묻혀 버렸다.

    우리는 위에서 예를 든 황교안과 반기문에게서 한국의 수구꼴통들의 아주 잘못된 의식구조를 볼 수 있으며 어릴 적부터 자신이 문제 내용에 주어진 상황을 분석한 후 생각해 낸 답을 손수 문장으로 작성해서  내야 하는 선진국의 주관식 교육보다는 출제자가 골라서 보여주는 네가지 답 중에서 정답을 고르는 것이 전부인 사지 선다형 교육에 잘 적응해서 좋은 점수를 받아서 소위 “수재”소릴 듣고 자란 많은 한국식 수재형의 사람들 역시 사고방식에 있어 황교안이나 반기문 같은 사람들과 별로 다르지 않을 것으로 사료된다.

    소위 명문 학벌 출신들에게 흔한 이런 식의 태도는 자신이 위험을 무릅쓰고 앞장서서 개척하여 줄을 만들고 이의 선봉이 되기보다는 과거 고려 때부터 있어온 “科擧制度”에 길들여져 온 “나랏님 중심”의 사회에서 이미 만들어져 있는 인맥과 학맥과 혼맥의 줄을 잘 선택해서 그 줄에 서서 출세를 하는 “기회주의 의식구조”에 의해 생겨난 것이라 할 수 있다.

    다들 머리들이 좋으신 분들이기에 내가 더 이상 이런 저런 사족을 더 붙일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나는 대한민국이 부활할 희망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 것인가는 우리가 어디서 떨어졌는가를 보면 답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모든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의 불법탄핵”에서 기원한 것이다.
    우리는 그 시점으로 돌아가서 박근혜 대통령을 복권을 추진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믿는다.
    당장 닥친 일은 우선 윤석렬을 살려내서 다시 그 때로 돌려놓는 일인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윤석렬은 자신이 복권된 후 결국 손을 대야 할 일은 박근혜 대통령의 사기탄핵을 완전 무효로 돌려 놓고 최소한 그 분에게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모든 예우와 그리고 말도 안되는 이유를 붙여서 몰수했던 그 분의 재산과 사회적인 신분을 모두 돌려드려야 할 것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물론 이런 일은 제 2의 광복이라고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기에 해방 직후 처럼 친일이었든 반일이었든 과거 경력을 일체 불문하고 일단은 모든 생각있는 사람들이 모두 함께 팔 걷고 나서서 윤석렬에게 힘을 실어주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지금 국힘당에 몸담고 있는 자들이나 기타 재야의 자칭 “지식인”이란 자들에게 그런 일을 함께 추진할 만한 용기나 아량들이 있는가?
    묻고 나니 허탈감만 엄습해 온다.

    뿐 만 아니라 지금의 국힘당의 전신인 미통당 당대표로 있으면서 사상적 배경이 주사파로 보여지는 자들을 대거 영입하여 당을 지금처럼 좌익정당으로 만들어 놓고 4.15 총선에서도 사실상 져주고는 슬그머니 빠져나가 자기는 지금의 국힘당과 관계가 없는 참신한 정치인인양 사기를 치고 다니면서 “윤석렬 대신 나는 어떻소?” 하고 트럼프의 눈도장을 받으려고 쌩쑈를 하고 자빠졌는 황교안이란 자나, 자신이 마치 트럼프 대통령의 선택을 받은 아주 보수적인 노선의 훌륭한 인격의 목사인양 뻥을 치면서 설쳐대고 있는 전광훈이란 3류 부흥사 형의 목사를 구름떼 처럼 따라가는 한국의 민중의 한심무쌍한 꼬리지를 보며 그 간에 사람의 옷을 입고 사람이 먹는 음식을 먹으며 사람 대접을 받던 돼지가 자기 본성을 내려 놓지를 못해 다시 인분과 음식찌꺼기에 입맛을 다시며 돼지 우리로 돌아가는 광경을 보는 것 같아 이제는 그저 모든 기대를 저 버려야 겠다는 완벽한 절망 그 자체를 느끼게 된다.
    아듀- 꼬레아.

    현재 칠순의 불편하신 몸을 누이실 곳 조차 없어 다른 사람이 제공한 집에 칩거해 계시면서 설거지까지 손수 하시면서 말년을 보내시는 박근혜 대통령님의 마음 속의 한국의 미래 모습이 이 부족한 나의 한국의 미래관과 같지 않았으면 하는 가냘픈 희망을 지푸라기 붙잡듯 간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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