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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무엇이 중한가… “선거인가, 자유민주주의인가”
  • 관리자 관리자
  • 등록 2026-02-27 12: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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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진 17명의 ‘걱정 정치’
  • 반복되는 순진한 협치 기대
  • 표보다 먼저 지켜야 할 체제의 기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26일 국회에서 중진 의원들과 면담하고 있다. 2026.2.26 [사진=연합뉴스]

4선 이상 중진 17명이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를 만났다. 일부 매체는 이를 두고 내홍이라 호들갑을 떨었지만, 실제 내용은 다르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관계 정리를 공개적으로 주장한 인사는 조경태 의원 한 명뿐이었다. 회동의 핵심은 민주당의 입법 독주에 대한 우려와 지방선거 전망에 대한 걱정이었다.

 

문제는 바로 그 대목이다.

 

중진들이 모여 내놓은 것이 행동 계획이 아니라 ‘걱정’이었다는 점이다. 

 

정치는 상황 인식에서 출발하지만, 인식이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그것은 정치가 아니라 평가에 머문다.

 

최근 송언석 원내대표가 국민의힘 몫인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상임위원 임명 문제와 관련해 민주당의 동의를 기대했다가 불발되자 “뒤통수를 맞았다”고 토로한 장면은 상징적이다. 

 

협치를 시도하는 태도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반복적으로 무력화된 경험 앞에서도 같은 기대를 유지하는 것은 전략이 아니라 순진함에 가깝다.

 

다수 의석을 앞세운 입법 독주, 합의 구조의 형해화, 사법 절차를 둘러싼 정치적 해석의 확산. 이 모든 현상은 단순한 정쟁을 넘어 체제 신뢰의 문제로 이동하고 있다.

 

야당의 존재 이유는 집권 계산이지만, 그러려면 권력 균형의 수호부터 맞춰야 한다.

 

정권을 되찾는 것이 목적일 수는 있어도, 체제를 지키는 것이 본령이기 때문이다.

 

보수층 일각에서 “이재명 재판 재개”를 요구하며 사법 절차의 정상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그 외침이 옳고 그름을 떠나, 그것이 체제 신뢰와 직결된 문제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국회의원 100명이 집단행동에 나서면 100만 명이 동참할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치는 상징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중진이라는 자리는 연차의 문제가 아니다. 위기 국면에서 책임을 먼저 지는 자리다. 

 

다수 권력이 견제를 벗어나고 있음에도 “입법독재”라는 말만 반복한다면 공감은 생기지 않는다. 행동 없는 경고는 울림이 약하다.

 

여기서 질문은 선거 전략이 아니다.

 

선거는 질 수 있다. 다시 치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는 다르다.

 

입법 권력이 견제를 벗어나고, 협치가 형식으로 전락하며, 다수의 힘이 절대적 정당성으로 오인되는 순간 민주주의는 서서히 약화된다. 그 과정은 조용하지만 결과는 치명적이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비교적 조용하다.

 

이 조용함이 오히려 더 놀랍다.

 

민주주의는 소란 속에서 무너지지 않는다. 때로는 침묵 속에서 약해진다. 논쟁이 사라지고, 원칙이 전략 뒤로 밀릴 때 체제는 균열을 시작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계산된 침묵이 아니라 책임 있는 선택이다.

 

표를 잃을 수는 있다. 그러나 기준을 잃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 정치에 던져진 질문은 분명하다.

 

무엇이 중한가.

 

“선거인가, 자유민주주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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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1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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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doomok2026-02-27 15:50:34

    체제가 무너지면 20년 30년 독재와 피터지는 투쟁을 감수하면서 자유를 찾아야 한다. 한번 무너진 체제의 장벽은 100년도 넘길 수 있다. 북한의 김일성체제에서 죽은 목숨이 1,000만도 넘을 것이다. 그래도 아직 북한주민은 밥통에 줄선 돼지 모양 살면서도 빛도 자유도 모른다. 지방선거는 져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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