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의 ‘케인호의 반란’(2023). [사진=영화 스틸컷]
김규나 소설가가 ‘소설 같은 세상’ 300회를 맞아 소설 ‘케인호의 반란’을 재조명했다.
우리에게 영화로 이름을 알린 알려진 ‘케인 호의 반란(The Caine Mutiny)’(1954)은 소설가 허먼 워크의 퓰리처상 수상작이 원작이다.
반란의 배후 조종자 ‘케인호의 세익스피어’
2차 세계대전 중, 미 해군 소해정 케인호에 새로 부임한 퀴그 함장은 강박적이고 불합리한 규율로 승조원들을 괴롭힌다. 폭풍우가 몰아치던 어느 날 퀴그 함장이 이성을 잃고 함선을 위험에 빠뜨리자 부함장 메릭 중위는 그의 지휘권을 박탈해 버린다.
이 사건으로 메릭과 그에 동조한 장교들은 군법재판에 회부되는데 이들의 변호인인 그린월드는 퀴그 함장의 불안정한 정신 상태를 폭로하며 반란이 정당했다고 변호한다.
한편 소설 속 톰 키퍼 대위는 ‘케인호의 셰익스피어’로 불리는 인물로 통신장교로 근무하면서 소설에 열중한다.
지식인인 키퍼는 퀴그 함장을 끊임없이 조롱하면서 함장의 편집증적 행동을 기록하도록 메릭 부함장을 부추긴다. 실질적인 반란자는 문학적 야망이 가득한 키퍼였던 것이다.
김규나 작가는 소설 번역본을 구할 수 없었다며 1954년도 판과 2023년 리메이크작 속 변호사 그린월드의 대사를 발췌해 실었다.
“함장이 좋아서 같이 일하는 게 아니야. 함장으로 있으니까 같이 일하는 거야. 퀴그는 함장이 되면 안 됐지만, 그의 부하들도 그를 망쳤지. 그러나 재판은 끝났어. 모두 안전해. 어항 속의 물고기 쏘기였어. 정말 재판을 받아야 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말야.
케인호 최고의 작가, 케인호의 셰익스피어. 당신은 처음부터 해군을 싫어했어. 그러다 이 모든 걸 생각해낸 거지. 그러고는 자기 앞가림을 빈틈없이 했어. 메릭은 반란자로 기억될 테지만, 당신은 소설을 출판해서 백만 불을 벌고 영화스타처럼 결혼하겠지.
평생 당신의 양심과 함께 잘살아보라고. 양심이 있다면 말이야. 케인호 반란의 진정한 작가를 위해 건배!”
“전쟁도 아닌데 31개의 별이 사라졌다”
지난 19일, 법원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 징역 30년,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에게 징역 18년이라는 중형을 선고했다.
왼쪽부터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문상호 정보사령관. [사진=연합뉴스]
김 작가는 “지금까지 12·3의 책임을 물어 ‘내란’에 직간접으로 연루되었다는 이유로 수사 의뢰되거나 징계 대상이 된 군인이 무려 180명에 달한다”며 “그중 파면·해임된 16명의 장성을 포함해 35명의 군인이 징계를 받거나 군복을 벗었다”고 전했다.
그 이유는 모두가 알다시피 “군 통수권자의 명령을 받고, 지휘 체계에 따라 움직였기 때문”이다.
또 김 작가는 ‘방위 출신 현 국방부 장관’을 호출하며 “이렇게 참혹한 숙청 과정을 거쳐야 ‘군사 쿠데타’나 ‘광주의 비극’을 막을 수 있다고 강변”한 것을 비판했다.
김규나 작가는 “31개의 별이 한꺼번에 떨어진 셈”이라며 “가히 ‘군 해체 선언’이라 부를 만하다”며 다음과 같이 전했다.
“전쟁 중에도 이렇게 많은 장군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일은 드물다. 이것은 단순한 인적 쇄신이 아니다. 대한민국 국군의 수장이 내린 명령에 항거하지 않은 것을 단죄하는 행위다. 즉, 군인에게 상관의 명령이 정당한지 스스로 판단하고, 의심스러우면 항명하라고 법과 국가가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김 작가는 군의 생명인 상명하복(上命下服)을 ‘내란 동조’로 치부하는 순간, 군대는 더 이상 군대가 아니라며 케인호의 예를 들었다.
즉 ‘케인호의 반란’은 항명이 정당한 것처럼 보이는 순간, 군 조직의 본질이 어떻게 파괴되는지 증언한다며 “지휘관의 명령보다 법원의 판례를 먼저 떠올려야 하는 군인이 전장에서 목숨을 걸고 전진할 수 있겠는가”라고 꼬집었다.
“함장에게 반기를 든 메릭은 재판 결과 무죄를 선고받는다. 모두가 승리를 자축하며 술잔을 높이 들 때, 피고 메릭을 변호해 승리로 이끌었던 변호사 바니 그린월드가 비틀거리며 파티장에 나타난다. 그는 기뻐하는 대신, 차가운 냉소를 머금은 채 승리자들의 얼굴에 차가운 술을 끼얹는다.”
그린월드는 “다른 이의 죄까지 억울하게 덮어쓴 메릭을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퀴그 함장을 희생시켜야 했던” 자신의 선택이 부끄러웠던 것이다.
군 흔들고 있는 손은 누구의 것인가
김규나 작가는 “태풍이 몰아치는 극한의 상황에서 메릭이 함장의 지휘권을 찬탈하게 만든 동력은 퀴그의 무능보다 키퍼가 정교하게 설계한 ‘미친 함장’이라는 허상”이라며 변호사의 결론, “함장이 아무리 무능하고 편집증적인 환자일지라도, 그가 바다 위에서 나라를 지키는 동안 키퍼 같은 지식인들이 뒤에서 비웃고 냉소하며 군의 위계질서를 흔들었다”는 사실을 짚는다.
‘케인호의 반란’ 1954년(왼쪽)과 2023년 포스터.
김 작가는 묻는다.
“퀴그 함장의 몰락을 치밀하게 설계하고 완성한 키퍼처럼, 뒤에 숨어 군을 조롱하고 파괴하면서 자신들만이 정의롭다고 믿는 ‘내란의 진정한 작가들’이여. 항명하지 않고 명령 체계를 따른 군인에게 죄를 물어 중형을 내리고 군복을 벗기는 판사들과 위정자들은 최소한의 미안함과 부끄러움이라도 느낄 양심이 있는가.”
아울러 “군인이 명령을 거부하는 것이 미덕이 된 나라, 그 나라의 안보는 누구의 양심에 맡겨야 하는가”라며 개탄한다.
마지막으로 김 작가는 “모두가 승리를 자축하는 파티장에서 그린월드가 뿌린 술잔의 의미를 우리는 뼈아프게 되새겨야 한다”며 “군의 위계가 무너진 자리에는 평화가 아니라, 거대한 혼돈과 몰락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라고 꼬집는다.
깨어나라, 개인이여!
일어나라, 자유 대한민국이여!
김규나 작가는 ‘소설 같은 세상’을 페이스북에만 연재하고 있다. 구독료는 1만 원이다.
신한은행 110-072-53735(김규나)

◆ 김규나 작가
2006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내 남자의 꿈’이, 200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칼’이 당선돼 등단했다. ‘트러스트 미’ ‘체리레몬칵테일’ 등의 장편소설을 출간했으며 최근 ‘소설로 읽는 세상’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