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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천스님 호국칼럼] 사악함 깨뜨려 바른 도리 드러낸다… “4.19가 묻고 역사가 답하다”
  • 응천스님 대한불교호국종 총무원장
  • 등록 2026-04-17 22:2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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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이 단행한 토지개혁과 헌법적 가치들은 신생 대한민국의 나아갈 길을 제시했다.  중국 삼론종의 대성자인 가조(吉藏) 스님은 ‘삼론현의(三論玄義)’를 통해 ‘파사(破邪)가 곧 현정(顯正)’이라 하였다. 사악한 견해를 깨뜨리는 것이 곧 바른 도리를 드러내는 길이라는 뜻이다. 

 

66년 전 4월의 함성 또한 이와 궤를 같이한다. 총칼 앞에 맞선 청년들의 용기는 단순한 저항을 넘어, ‘법화경’이 강조한 ‘무명(無明) 속에서 진실을 찾는 지혜’를 사회적으로 구현해 낸 치열한 실천이었다. 그날의 함성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 던지는 화두 또한 바로 이 지점에 있다.

 

80달러의 척박한 땅에서 피어난 민주주의

 

해방 직후 대한민국의 문맹률은 77.8%에 달했으며, 1946년 미군정의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 70%가 사회주의를 지지하고 자본주의 지지는 14%에 불과할 정도로 이념적 혼란이 극심했다. 1961년 고려대생 377명의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86%는‘서구민주주의는 한국에 적용될 수 없다’고 응답하였다.

 

6·25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국토에는 공장 대신 폐허가, 희망 대신 미군의 원조 물자가 그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전쟁의 폐허와 보릿고개의 굶주림이 일상이었던 이 혹독한 시기에 대한민국은 역사적인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다.

 

1960년 봄, 대한민국의 1인당 국민소득(GNP)은 80달러 안팎으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다. 당시 아프리카의 가나(GNP 약 180달러), 아시아의 필리핀(GNP 약 200달러)은 우리에게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쌀 한 가마가 한 달 생계비와 맞먹던 시절, 국민은 독재와 부패가 배고픔의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직시했다. 4.19혁명은 단순한 부정선거에 대한 분노를 넘어, 인간다운 삶을 위한 민주적 절차의 필연성을 깨달은 민중의 함성이었다.

 

그 시절 서민들의 삶을 지탱하던 경제적 척도는 쌀값이었다. 쌀 한 가마(80kg) 가격은 약 3500원에서 4,000원 선. 당시 도시 노동자들의 평균 임금을 고려하면 쌀 한 가마를 사는 것은 한 달 생계비와 같았다.

 

외식의 상징이었던 자장면 한 그릇이 15~20원 하던 시절, 국민은 ‘보릿고개’라는 가혹한 계절을 매년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했다. 농가 10곳 중 3곳이 식량이 없어 굶주려야 했던 것이 통계가 말해주는 1960년의 민낯이었다.

 

4·19혁명은 단순히 부정선거에 대한 분노만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다. 1인당 소득 80달러라는 처참한 현실 속에서 국민은 독재와 부패가 배고픔을 해결해 주지 못하며,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는 민주적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현대사의 비극적 분점(分點)에서 역사는 한 지도자의 고뇌와 마주한다. 1960년 4월23일, 이승만 대통령은 서울대학교병원을 찾아 병상에 누워 있는 부상 학생들을 문병했다. 총상 입은 학생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그는 눈시울을 붉혔던 것으로 전해진다.

 

“불의를 보고 일어서지 않는 백성은 죽은 백성이다. 장하다! 우리 학생들이 참으로 장하다” “내가 맞아야 할 총알을 너희들이 맞았구나”라며 비통해하던 그의 모습은 민심의 실체를 깨달은 지도자의 참회이기도 했다. 

 

이 참회 어린 위로와 학생들의 대의에 대한 인정은 사흘 뒤인 4월26일, 권력의 미련을 버리고 “국민이 원한다면 물러나겠다”는 하야 선언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 분수령이 되었다.

 

그날의 무게를 기억하며

 

대한민국은 1인당 소득 100달러 미만의 혹독한 시기에 민주주의를 쟁취해 낸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국가다. 가나나 필리핀을 부러워하던 변방의 빈국은 이제 세계 경제 10위권의 강국이 되었다.

 

4·19 당시의 문병은 한 지도자가 자신의 잘못된 정치로 상처받은 젊은 세대의 정의로움을 공인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함의를 지닌다. “장하다”는 그 한마디는 대통령 스스로 평생 강조했던 민주 교육의 결실이 바로 이 학생들이었음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번영은 쌀 한 가마의 무게를 견디며 민주주의를 부르짖었던 학생들의 용기와, 비록 과오(過誤)가 있었으나 학생들의 정의로움 앞에 스스로 내려올 줄 알았던 지도자의 결단이 교차하며 만들어낸 역사적 산물이다. 파사현정의 정신으로 무명을 깨치고 바른길을 열었던 그날의 횃불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화두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특정 정파에 치우친 편파성을 배제하고, 이승만 대통령의 확고한 신념과 지도력으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국가의 기틀로 선택한 것은 민족의 결정적인 행운으로 서술된다. 

 

특히 그가 단행한 토지개혁과 헌법적 가치들은 길 잃은 시대에 이정표 역할을 했던 ‘열하일기’와 같이 신생 대한민국의 나아갈 길을 제시했다.





◆ 응천 스님

 

대한불교호국종 총무원장 

호국승군단 초대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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