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외교전문지 “장동혁 방미, 외교보다 당내 생존”
미국의 외교전문지 ‘더 디플로맷(The Diplomat)’은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의 방미는 당내 생존(survival)에 더 무게가 실린 행보라고 꼬집었다. 이 전문지는 18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SNS)에서 “장동혁 국힘 대표의 워싱턴 방문은 진정한 외교 정책 의제보다 그의 내부 생존 전략에 관해 더 많은 것을 드러낸다(People Power Party leader Jang Dong-hyeok’s Washington trip reveals more about his internal survival strategy than any genuine foreign policy agenda)"고 직격했다.
4월18일 광화문에서 열린 ‘4·19혁명 정신 계승 광화문 대집회’. 최근 4·19와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사진=임요희 기자]
4·19를 곧장 ‘이승만에 대한 역사적 유죄판결’로 읽는다면 사건의 핵심부터 빗나간다. 1960년 3.15 선거의 초점은 ‘부통령 이기붕’이었다.
조병옥 후보가 사망하면서 대통령 선거는 이승만으로 굳어진 가운데, 자유당이 이기붕을 부통령에 앉히고자 무리수를 뒀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이승만은 4월26일 하야를 선언하고 이튿날 정식 사임했다.
공교육은 ‘건국’보다 ‘독재 타도’ 위주
교육 현장에선 수십 년 동안 이승만이 ‘건국 대통령’보다 ‘독재의 상징’으로 더 자주 호출됐다. 우리역사넷 학생용 서술은 “학생들과 시민들이 힘을 합쳐서 이승만 독재를 무너뜨린 것”, 다른 교과서 계열 자료도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해” 자유당이 부정선거를 자행했다고 정리한다.
이런 틀에선 건국, 전쟁기 호국, 한미동맹, 농지개혁, 반공·자유 체제 설계보다 사실상 그것을 위해 불가피했던 고독한 권위주의적 행보가 훨씬 크게 부각됐다. 20세기 중반 공산주의로 뒤덮인 유라시아 끝자락에 자유민주공화국의 토대를 깔고 한미동맹으로 국가를 지속 가능하게 한 공로를, 노령 등 인간적 한계와 신생국의 다사다난에 기인한 불완전함을 이유로 탄핵해 버린 꼴이다. 이는 역사해석도, 인간에 대한 기본적 예의도 아니다.
‘백년전쟁’의 반작용… ‘건국전쟁’ ‘새역사국민운동’
2012년 유튜브에 유포된 민족문제연구소의 ‘백년전쟁’은 수십년간 불공정하게 규정돼 온 이승만론을 오락적 방식으로 극대화한 콘텐츠였다. 2019년 대법원은 방송심의와 표현의 자유 범위를 넓게 본 판단을 내렸다.
악의적 인신공격과 희화화로 가득한 영상의 제작과 유포 자체가 지극히 정치적인 행위였으나, 관대한 판결은 결과적으로 ‘이승만·대한민국 정통성 부정’ 흐름에 힘을 실어준 셈이 됐다.
그 반작용 속에서 등장한 것이 김덕영 감독의 다큐 ‘건국전쟁’이다. 1편은 2024년 관객 117만 명을 기록하며 그해 전체 독립·예술영화 흥행 1위에 올랐다. 이승만 재평가가 학술 논쟁과 일부 진영 담론을 넘어 대중적 역사전쟁으로 번졌다는 신호였다.
작년 9월 개봉한 ‘건국전쟁2: 프리덤 파이터’는 1945~1950년 읽기를 전면에 내세웠다. 1편이 이승만 개인에게 덧씌워진 오해와 거짓된 낙인을 벗기는 작업이었다면, 2편에선 제주 4.3에 집중한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저지를 위헤 남로당이 촉발한 4·3의 진실, 지난 30여 년간 국가폭력이라고 설파돼 온 비극의 진짜 배후를 꼼꼼히 추적한다.
이승만학당에서 ‘새역사국민운동’을 내걸고 역사 서술 전선을 다시 연 것 역시 우연이 아니다. 이승만과 박정희를 오직 ‘독재 대 민주화’ 이분법적 문맥에서만 언급하는 관점으로 건국과 산업화의 거친 현실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게 기본 인식이다. 두 대통령은 평시 민주주의의 이상형이 아니라, 건국·전쟁·산업화라는 비상기를 통과하기 위한 거칠고 불완전한 통치였기에, ‘성취’ 측면에 더 주목할 것을 촉구하는 자세이기도 하다.
신격화되지 않은 국부
4·19의 핵심은 이승만을 신격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가 세운 나라가 김일성의 나라와 다르게 작동했다는 증거다. 4·19로 이승만의 생애가 통째로 폐기된다는 것은 역사도,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아니다. 책임을 통감했기에 물러났고, 물러날 수 있었기에 대한민국은 북한과 다른 나라가 됐다.
4·19 가치와 이승만의 업적이 결코 상충하지 않는다. 4·19는 이승만에게 실패의 낙인이 아니라 그가 세운 자유민주공화국이 작동했다는 점을 증명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훈장’이다. 이승만에 대한 ‘파묘’ 식 부정은 1948년 체제, 곧 자유공화국 대한민국 탄생의 문명사적 민족사적 의미를 파괴하는 일이다. 4·19를 기념하려면 이 지점부터 바로세워야 한다.
윤석열의 이승만 복권, 이재명의 이중적 활용
2024년 이승만 재평가 분위기가 뚜렷해진 것은 윤석열 대통령의 성향과 무관치 않다, 그해 1월 국가보훈부는 이승만을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으며, 몇 개월 후 대통령은 이승만에 대해 “이 땅에 자유의 가치를 심고 자유 대한민국을 건국하셨다”고 했다. 공적 언어가 바뀐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
반면 이재명 대통령은 이승만을 편리하게 활용한다. ‘2024년 12월3일 비상계엄’을 “영구집권 야욕”으로 몰아세울 때 3.15와 4·19를 끌어왔으며, 앞서 2월25일엔 농지 매각명령 논란을 방어하며 이승만의 농지개혁 논리를 써먹었다. 농민이 대다수였던 건국 초기 체제 건설 차원의 대사업을, 국민소득 3만5000 달러를 넘긴 시대의 단속행정에 비유한 것은 개념적 눈속임이다.
영농계획서를 낸 채 직접 경작하지 않는 농지의 매각명령을 더 엄격히 집행하겠다면서 건국기의 헌정적 결단을 끌어다 붙였다. ‘경자유전’ 네 글자의 논리를 빌어 평시 행정집행을 건국 서사로 부풀린 것이기도 하다. 3·1절 기념사에서 “북측의 체제를 존중”한다니, 정작 이승만의 '1948년 체제' 정통성엔 관심이 없어 보인다.

◆ 임명신 박사
중문학박사, 동북아 연구자
前 스카이데일리 국제 부국장